독립국가연합(EUN)으로 출전한 1992년 알베르빌 대회 이후 첫 우승
(강릉=연합뉴스) 신창용 기자 = '러시아 출신 올림픽 선수'(OAR)가 독일의 거센 돌풍을 잠재우고 올림픽 정상에 올랐다.
OAR는 25일 강원도 강릉의 강릉하키센터에서 열린 2018 평창동계올림픽 남자 아이스하키 결승에서 세계 8위 독일을 연장 승부 끝에 4-3(1-0 0-1 2-2 1-0)으로 눌렀다.
OAR는 2-3으로 뒤져 패색이 짙던 3피리어드 종료 56초를 남겨두고 니키타 구세프가 극적인 동점 골을 넣어 승부를 연장전으로 끌고 갔다.
연장전에서 독일 파트리크 라이머의 하이스틱 페널티로 4명 대 3명으로 맞서는 결정적인 기회를 얻은 OAR는 결국 9분 40초에 키릴 카프리조프가 서든 데스 골을 터트렸다.
카프리조프의 샷이 골망을 흔드는 순간, OAR 선수들은 모두 헬멧을 집어 던지고 빙판으로 뛰쳐나와 뜨겁게 부둥켜안으며 우승을 자축했다.
1만석 규모의 강릉하키센터를 붉게 물들인 러시아 팬들은 '러시아, 러시아'를 힘껏 연호했다. 관중석은 러시아의 깃발로 출렁였다.
이로써 OAR는 이번 대회 2번째 금메달을 수확했다.
OAR는 동계올림픽의 꽃으로 꼽히는 피겨스케이팅 여자 싱글(알리나 자기토바)과 남자 아이스하키에서 금메달 1개씩을 챙겼다.
러시아는 도핑 조작에 따른 국제올림픽위원회(IOC)의 징계로 러시아란 자국 이름 대신 OAR로 출전했다.
러시아가 올림픽 남자 아이스하키에서 금메달을 딴 것은 구소련 해체 후 독립국가연합(EUN)으로 출전한 1992년 알베르빌 대회 이후 처음이다.
이후 러시아로 올림픽에 참가한 뒤로는 금메달과 인연을 맺지 못했다.
1998년 나가노 대회 은메달, 2002년 솔트레이크시티 대회 동메달을 차지한 것이 전부였다. 최근 두 대회에선 메달권에 들지 못했다.
OAR는 북미아이스하키리그(NHL)가 불참한 이번 대회에서 가장 강력한 우승후보로 주목받았다.
세계 2위 리그인 러시아대륙간하키리그(KHL)에서 활약 중인 선수로만 25명 전원을 선발한 OAR는 파벨 댓숙, 일리야 코발축 등 쟁쟁한 스타들을 앞세워 독일에 손쉬운 승리를 거둘 것으로 보였으나 경기 양상은 전망과는 사뭇 달랐다.
8강 진출 플레이오프에서 스위스(7위), 8강에서 스웨덴(3위), 4강에서 캐나다(1위)를 모두 1점 차로 꺾는 파란을 일으킨 독일은 정규시간 종료 직전까지 3-2로 앞서 이번 대회 최대 이변을 일으키는 듯 보였다.
하지만 마지막 56초를 지키지 못했다. 현란한 개인 기량을 자랑하는 OAR에 비해 독일은 비록 투박하지만, 투지와 근성을 앞세워 맞섰다.
그런데 연장전에서는 4명 대 4명으로 맞서면서 불리한 상황에 몰렸고, 라이머가 페널티로 2분간 퇴장하면서 결국 그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고 무너졌다.
독일은 거의 다 잡은 것이나 마찬가지였던 금메달을 놓쳤으나 은메달로 역대 최고 성적을 올렸다.
독일은 1932년과 1976년에 각각 동메달을 딴 것이 지금까지 역대 최고 성적이었다.
독일과 OAR, 두 팀의 스타일은 극히 대조적이었다.
OAR는 현란한 개인기를 앞세워 패스를 통해 공격 지역으로 넘어가는 데 반해 독일은 덤프한 뒤 포어 체킹으로 퍽을 따내는 데 주력했다.
독일 골리 다니 아우스 덴 브리켄의 선방에 가로막혔던 OAR는 1피리어드 종료 직전 선제골을 뽑아냈다.
1피리어드 19분 59초에 문전 앞 혼전 상황에서 구세프가 뒤로 빼준 패스를 대기하고 있던 바체슬라프 보이노프가 강력한 슬랩샷으로 골망을 흔들었다.
독일은 2피리어드에서도 계속 수세에 몰렸으나 드문 역습 기회에서 동점 골을 뽑아냈다.
9분 32초에 상대 문전 오른쪽에서 펠릭스 슐츠가 반대편으로 내준 패스가 골리 바실리 코세츠킨의 몸에 굴절되면서 골문으로 빨려 들어갔다.
OAR는 3피리어드 13분 21초에 구세프의 골로 다시 앞서갔다. 구세프는 골문 왼쪽 코너에서 패스를 내주는 척하다가 그대로 샷을 날렸다. 퍽은 골리 어깨를 스치고 골문에 들어갔다.
경기장은 러시아 팬들의 함성으로 떠나갈 듯했다. 하지만 환호는 오래 지속하지 않았다. 독일은 불과 10초 만에 도미니크 카훈이 상대의 방심을 틈타 골을 넣고 승부를 원점으로 돌렸다.
기세를 이어간 독일은 16분 44초에 요나스 물러가 골문 코너를 찌르는 강력한 리스트샷으로 역전에 성공했다.
하지만 OAR는 경기 종료 직전 동점 골을 뽑아내는 저력을 보였고, 연장전에서 서든 데스 골로 우승을 쟁취했다.
changyo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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