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범·인명피해 없다" 벌금 500만원 약식명령…솜방망이 처벌 지적
음주 측정 거부한 지자체 공무원은 정식 재판 회부…형평성 논란도
(청주=연합뉴스) 전창해 기자 = 음주 운전을 하다 주차된 차량 2대를 들이받고 달아나던 중 신호등을 재차 충돌한 끝에 붙잡힌 30대 법원 공무원에게 법원이 벌금 500만원의 약식명령이라는 가벼운 처분을 내려 '제 식구 감싸기'라는 빈축을 사고 있다.
27일 청주지법에 따르면 이 법원은 도로교통법상 사고 후 미조치 등의 혐의로 약식기소된 법원 공무원 A(38)씨에게 최근 벌금 500만원의 약식명령을 결정했다.
청주지법 소속 행정직 공무원인 A씨는 지난해 12월 7일 오후 11시 41분께 서원구 청주지법 앞 도로에서 자신의 승용차를 몰다가 길가에 주차된 그랜저와 K5 승용차를 잇달아 들이받았다.
사고를 낸 뒤에도 운전을 멈추지 않고 달리던 A씨는 800m가량 떨어진 신호등을 들이받고서야 멈춰섰다.
사고가 난 차량과 신호등 인근에는 지나던 사람이 없어 다행히 인명 피해는 없었다.
행인의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음주 감지기로 A씨의 음주 사실을 확인, 그의 혈액을 채취해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정밀 분석을 의뢰했다.
그 결과 A씨의 혈중 알코올농도는 면허 취소 수준에 해당하는 0.18%가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A씨에 대한 법원의 약식명령 결정에 솜방망이 처벌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약식명령은 혐의가 무겁지 않은 사건에서 공판 없이 벌금·과료 등을 내리는 절차다.
법원은 A씨가 초범인 점, 인명 피해가 발생하지 않은 점 등을 고려해 약식명령을 내린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누구보다 법을 잘 아는 법원 공무원이 이런 죄를 저질렀는데도 일반사건처럼 약식명령을 내린 것은 '제 식구 감싸기'로 보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최근 음주측정 거부 혐의로 약식기소됐다가 정식 재판에 회부된 청주시청 간부 공무원의 사례와 비교해 형평성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청주시청 소속 4급 공무원 B(58)씨는 지난해 10월 20일 오후 10시 50분께 청주시 흥덕구의 한 도로에서 승용차를 운전하고 가던 중 경찰의 음주측정 요구를 4차례에 걸쳐 거부한 혐의(도로교통법 위반)로 재판에 넘겨졌다.
당시 B씨는 비틀거리는 걸음걸이에 술 냄새도 났지만 혈중 알코올농도는 끝내 확인되지 않았다.
이 사건을 경찰에서 송치받은 검찰은 B씨를 벌금 500만원에 약식 기소했다.
음주측정 거부죄는 형량이 가장 센 혈중 알코올농도 0.2% 이상일 때와 같은 1년 이상 3년 이하의 징역형이나 500만원 이상 1천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진다.
검찰이 B씨에게 최저 벌금 형량을 적용한 것이다.
그러자 이 사건을 맡은 재판부는 B씨를 직권으로 정식재판에 회부했다.
공무원이 술에 취해 운전하다가 경찰에 붙잡힌 뒤 음주측정 요구에 응하지 않는 등 공권력을 무시했다는 점에서 당연한 결과라는 해석이 지배적이었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A씨의 사건은 과실 범죄이고, B씨의 사건은 고의 범죄에 해당해 절대 비교가 어렵고 재량의 범위를 벗어났다고도 볼 수는 없겠으나 일반인보다 높은 도덕성을 요구하는 공무원이 죄를 저질렀다는 점에서 동일하게 엄한 잣대를 들이댔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법원이 일관된 잣대로 판결을 내리지 않는다면 결국 사법부에 대한 국민 불신이 커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법원은 이번 주중 A씨에 대한 자체 징계 수위를 결정할 예정인 것으로 전해졌다.
jeonch@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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