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투 한 달] 한 검사의 외침이 들불처럼…터져 나오는 "나도 당했다"

입력 2018-02-28 06:00   수정 2018-02-28 07:34

[미투 한 달] 한 검사의 외침이 들불처럼…터져 나오는 "나도 당했다"
법조계 넘어 문화예술·연예계로…사회 전반 확산 움직임
수사당국, 철저 수사·엄벌 방침…"취지 잘 살려 사회 진일보 계기로"


(서울=연합뉴스) 임순현 기자 = 최근 한 달간 우리 사회 최대 화두 중 하나는 이른바 '미투'(#MeToo·나도당했다)였다.
각계에서 성범죄 피해 사실을 드러내 진상 규명과 처벌, 제도 개선을 요구하는 미투 운동이 들불처럼 퍼졌다. 남성 중심의 왜곡된 성문화, 피해자가 오히려 조직에서 소외되는 권력형 성범죄의 오랜 병폐가 드러나면서 이를 바로잡아야 한다는 여론이 들끓고 피해자들과 연대한다는 '위드유'(#With You)운동도 퍼져나갔다. 정부도부응하고 나섰다.
28일 법조계 등에 따르면 한국판 미투 운동은 한 달 전인 지난달 29일 창원지검 통영지청 소속 서지현(45) 검사의 용기 있는 폭로가 계기였다. 서 검사는 검찰 내부통신망 '이프로스'에 안태근(52) 전 검사장으로부터 성추행을 당했다는 글을 올렸다.
그의 글은 안 전 검사장의 비위를 드러내는 데 그치지 않았다. 서 검사는 해외의 미투 운동 사례를 언급하면서 "우리 스스로 침묵하지 않고, 미미한 발걸음일망정 한발씩 나아가야만 조직이 발전해 갈 수 있다는 생각을 한다"고 썼다.

파장은 법조계에서부터 커졌다. 검찰은 서 검사의 폭로 이틀 만에 조직 내 성범죄를 전수조사하는 '성추행 사건 진상규명 및 피해회복 조사단'을 꾸려 진상 규명에 나섰다. 이 과정에서 의정부지검 고양지청 현직 부장검사가 부하 여성을 강제추행한 혐의가 드러나 구속기소 됐다. 과거 검사 재직 시절 후배 여검사를 성추행한 의혹을 받는 대기업 임원도 검찰 수사 선상에 올랐다.
법원도 미투 운동에 동참했다. 의정부지법 고양지원 법원공무원 노동조합은 최근 실태조사를 벌여 4명의 여성 공무원이 판사에게 성희롱과 성추행을 당했다고 밝혔다. 응답자의 28%가 자신이 피해자이거나 피해 사례를 목격 내지 청취했다고 답변해 법원 내 성범죄 피해 사실 공개는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미투 운동은 법조계를 넘어 사회 전반으로 확대됐다.
특히 문화예술계에서는 권력이나 지위를 이용한 유명인의 성폭력 행태를 둘러싼 고발이 봇물 터지듯 이어졌다.
지난 14일 극단 미인의 김수희 대표는 페이스북을 통해 연극연출가 이윤택씨의 성추행 사실을 폭로했다. 연극계 대부로 알려진 이씨의 기행에 가까운 성범죄 사실이 낱낱이 드러나면서 연극계는 충격에 휩싸였다. 이어 원로극작가이자 연출가인 오태석씨의 성추행 의혹도 터져나왔다.
20일에는 배우 조민기씨가 청주대학교 연극학과 교수 시절 학생들을 성추행했다는 폭로가 나왔다. 조씨는 소속사를 통해 의혹을 부인했지만, 성 추문으로 정직 3개월의 징계를 받은 사실이 드러나고 학생들의 '미투'가 이어지면서 조씨는 27일 강제추행 혐의로 경찰에 입건됐고, 피해자는 10여명으로 늘어난 상황이다.
그에 앞서 최영미 시인이 원로 시인의 상습적인 후배 문인 성추행을 시를 통해 폭로하면서 노벨문학상 단골 후보로 거론돼온 고은 시인이 당사자로 지목됐고, 그의 시를 중·고교 교과서에서 삭제하는 방안까지 논의되고 있다.

23일에는 유명 사진작가 배병우씨가 서울예대 교수 시절 학생들에게 성폭력을 가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작업실 등지에서 여학생들에게 성적인 발언을 하거나 신체 접촉을 했다는 증언이 잇따르자 배씨는 공식 사과했다.
대중의 관심이 집중되는 연예계 미투 운동도 심상치 않다. 23일 영화배우 조재현씨 등 유명 연예인의 성추문이 터져 나왔고, 26일에는 배우 최일화씨가 과거을 성추행을 스스로 밝히고 드라마를 비롯한 모든 활동을 중단하기로 했다.
여기에 23일 천주교 신부가 해외선교 봉사활동을 하다가 여성 신도를 성폭행하려했다는 폭로까지 이어지면서 미투 고백이 종교계까지 퍼진 양상이다. 대학가에서도 교수와 학생의 상하 관계에서 비롯된 성범죄 피해 사례가잇따라 폭로되고 있다.
유명 인사의 성 추문은 수사로 이어지고 있다. 이철성 경찰청장은 지난 26일 "인지도가 있는 사회 각계 인사 19명의 성폭력 혐의를 살펴보고 있다"며 "정식 수사 착수가 3건, 영장을 검토하는 사안이 1건"이라고 밝혔다. 같은 날 경남 김해의 극단 번작이 대표가 미투 운동 확산 후 가해자로 지목된 인물로는 처음으로 체포됐다.
미투 운동의 불씨는 쉽게 사그라지지 않을 전망이다.
피해자들의 움직임은 단순한 성범죄 고발에 그치지 않고 이번 계기에 사회 각 기관에 물들어 있는 왜곡된 성문화와 권력형 성범죄를 뿌리 뽑아야 한다는 요구로 번지면서 정부도 적극 대처에 나섰다.
문재인 대통령은 26일 청와대 수석·보좌관회의에서 "미투 운동을 무겁게 받아들이고, 피해 사실을 폭로한 피해자들의 용기에 경의를 표하며 미투 운동을 적극 지지한다"며 정부 차원의 대응을 주문했다.
정부는 공공부문에서 벌어지는 성폭력과 관련해 관계부처 합동으로 온라인 특별신고센터를 설치·운영하기로 했고, 교육부는 모든 대학을 대상으로 성폭력 신고센터 운영실태 조사에 나선다.
미투 운동은 그간 눈에 띄는 동향이 없던 곳까지 번질 것으로 관측된다.
관료주의와 서열주의가 팽배한 공무원 사회나 군대, 경찰은 물론 정치권과 재계에서도 조만간 미투 운동이 벌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선·후배 간 위계질서가 엄격한 의료계와 언론계, 체육계도 예외가 아닐 것으로 보인다.
검찰과 경찰 등 수사당국은 2013년 6월 성범죄 친고죄 폐지 후 발생한 성범죄에 대해서는 피해자의 고소 여부와 상관없이 단서가 수집되는 대로 적극적으로 수사해 엄벌할 예정이다.
다만 미투 운동의 부작용을 우려하는 의견도 있다. 자칫 사실관계를 제대로 파악하지 않은 채 무분별한 의혹을 제기하면 억울한 피해자를 낳을 수 있다는 것이다.
법조계의 한 관계자는 "피해자가 아니면서 허위 주장을 하는 것은 미투 운동의 본래 취지를 무색하게 하고 찬물을 끼얹는 것"이라며 "이런 우려를 최소화하면서 우리 사회를 진일보시킬 계기로 삼을 방안을 함께 고민할 필요도 있다"고 말했다.

hyun@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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