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소득층 흑인 소외·환경 파괴 논란 속 착공 무기한 연기
(시카고=연합뉴스) 김 현 통신원 =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이 기념관 건립 사업 계획에 대한 시민단체의 반발과 주민 불만을 달래기 위해 직접 나섰다.
28일(현지시간) 시카고 언론에 따르면 오바마 전 대통령은 전날 밤 시카고 매코믹플레이스에서 열린 시민 공청회에 참석, '오바마 센터' 건립 계획과 관련해 불거진 문제들에 대한 의견을 개진했다.
오바마는 시카고 시로부터 무상으로 받은, 도시 남부 미시간호변의 유서 깊은 시민공원 '잭슨파크' 내 약 8만㎡ 부지에 연면적 2만㎡ 규모의 현대식 석조 석물 3개 동을 짓고 "전세계 젊은이들이 모여 차세대 리더가 될 훈련을 받는 곳, 창의적인 작업 공간, 시카고 남부의 긍정적 발전 동력"으로 만들어가겠다는 구상이다.
시카고 남부는 오바마가 백악관 입성의 발판으로 삼은 저소득층 흑인 밀집지역이며, 잭슨파크는 1974년 미 국립사적지로 지정된 시카고 남부 주민들의 '오아시스'다.
오바마는 "대통령 기념관 건립사업이 시카고 남부에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하고 투자를 유치하는 등 주민들에게 더 많은 기회를 제공할 것"이라며 젠트리피케이션에 따른 원주민 퇴출 우려는 '기우'(杞憂)라고 강조했다.
그는 "시카고 남부에서 대규모 개발과 경제활동 증진이 문제될 수 없다"면서 "젠트리피케이션은 (내 딸) 말리아의 자녀 세대에 가서나 우려할 문제다. 지금 우리에겐 깨진 보도블록과 폐쇄된 채 방치된 건물들이 더 걱정"이라고 말했다.
이날 행사는 기념관 건립사업 주체인 '오바마 재단'이 마련한 2번째이자 마지막 공청회로, 높은 관심을 반영하는 듯 수백명의 주민들이 참석했다.
시카고 트리뷴은 "오바마 센터는 대도시에 세워지는 첫 대통령 기념관"이라며 이로 인해 '오바마 센터가 시카고 남부를 어떻게 변화시킬 것인가'에 전국적인 관심이 쏠려있다고 전했다.
오바마 재단은 "기념관 공사 기간, 청소년들이 뛰어놀만한 공간이 사라진다"는 우려를 해소하기 위해 공청회 당일 오전 "350만 달러(38억원)를 투입, 잭슨공원 내에 인조잔디 구장을 조성하겠다"고 발표하는 등 지지를 끌어내기 위해 안간힘 쓰고 있으나, 미 국립사적지 보존법 및 국가환경정책법 위배 논란과 함께 "주민들을 소외시키고 불필요한 세금만 떠안긴다"는 비난을 면치 못하고 있다.
공청회 참석자들은 시카고 시가 최근 오바마 센터 인근 도로 재정비에 주민 혈세 1억7천500만 달러(약 2천억원)를 투입하겠다고 발표한 데 대해 이의를 표명했다. 오바마 재단은 건립 사업 예산을 총 5억 달러로 책정했으며, 이 사업은 공식적으로 사적 기금 모금을 통해 추진된다.
시민단체 '잭슨파크 워치' 측은 "납세자들에게 과도하고 불필요한 부담을 지우는 것"이라며 시카고 시가 오바마 센터만을 위해 멀쩡한 간선도로들을 폐쇄하거나 확장하는 대신, 공사가 절실히 필요한 곳에 예산을 투입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외에도 시카고 시는 잭슨파크 내 2개의 대중 골프장을 미 프로골프(PGA) 챔피언십 대회 개최가 가능한 특급 골프장으로 재설계해 오바마 센터와 연계한다는 구상인데, 이 역시 주민 휴식처를 특정 부유층의 전유물화 한다는 평을 듣고 있다.
시카고 시 당국의 결정은 오바마 행정부 초대 백악관 비서실장을 지낸 람 이매뉴얼 시장이 주도하고 있다.
오바마 센터는 미국 대통령 기념관 전례를 깨고 미 국립문서기록관리청 시스템에 속하지 않은 개인시설로 건립돼 독자적으로 관리·운영될 예정이다.
오바마 재단은 건설 사업 관련 인력 채용에 다양성을 강조하면서 주로 흑인 개발업자들과 건설 계약을 맺고 있다고 강조했으나 저소득층 흑인들이 느끼는 상대적 박탈감과 불안감은 더 커졌다.
주민들은 "저소득층 흑인과 노인, 장애인들을 삶의 터전에서 내쫓지 않겠다고 약속해달라"며 '지역주민 일자리 보장', '저소득층 주택 및 주택소유주 보호' 등을 명시한 '지역혜택협약'(CBA) 서명을 요구했으나 오바마는 이를 거부하고 있다.
오바마는 "기념관 건립 계획이 모든 구성 요소들을 다 만족시킬 수는 없다"면서 "건립 사업이 진척될 수 있기만을 고대한다"고 말했다.
오바마 센터는 애초 작년 초 착공 예정이었으나 무기한 연기된 상태다. 오바마 측은 늦어도 금년내 착공해 2021년 개관할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다.
한편 일부 주민들은 이날 공청회에 앞서 집회를 열고 "소송을 통해서라도 지역혜택협약 서명을 꼭 받아내겠다"는 뜻을 확인했다.
집회에 참석한 핀리 캠벨 목사는 "오바마에게 기대를 걸었던 시카고 흑인사회의 노력과 헌신, 한표 한표가 불명예스럽게 되지 않기를 바란다"며 "시카고 남부 주민들이 오바마 기념관 건립 사업의 피해자로 남는 일이 없기를" 소망했다.
chicagorh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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