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청한 예슬아동상담센터 원장, 장애인이 장애인 돕는 '동료상담' 연구
(서울=연합뉴스) 김예나 기자 = "어느 날 갑자기 장애 판정을 받게 된다면 의사도, 그 어떤 전문가도 앞으로 어떻게 살지 말해줄 수 없어요. 먼저 경험한 '선배'의 조언이 더욱 절실한 이유입니다."
류청한(47) 경기 부천 예슬아동상담센터 원장은 4일 연합뉴스 통화에서 장애인에게 '동료상담'이 필요한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류 원장은 지난달 성공회대에서 '장애인 동료상담 구성요소와 상호작용 연구' 논문으로 사회복지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는 시각장애 1급이다. 그 역시 장애가 시작된 그 날을 잊지 못한다. 재활학을 공부하고서 병원에서 '작업치료사'로 일하던 2001년 갑자기 눈에 염증이 생겼다. 서른 살이던 그에게 모든 세상은 뿌옇게 변했다.
류 원장은 "시신경과 망막이 서서히 죽어가는 희귀 질환이라는데 병원에서도 근본 원인을 찾지 못했다"면서 "충격도 잠시, '이제 모든 걸 알아서 해야 한다'는 의사의 말이 너무 막막했다"고 떠올렸다.
그는 주저앉지 않았다. 장애인의 응용동작 능력이나 사회적응 능력 회복을 돕는 작업치료사로서 많은 장애인을 만났던 경험도 버팀목이 됐다.
"장애인이 되기 전에는 장애를 하나의 '현상'이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장애인이 되니 '현실'로 받아들이게 됐습니다. 선천적인 장애가 아니라 중도 실명을 한 터라 점자를 쓰는 게 참 어려웠습니다."
일을 그만둔 그는 언어치료사인 아내와 함께 아동 언어 치료·놀이 치료 전문 센터를 차렸다. 당시 센터에는 장애 아동이 여럿 있었는데 장애아를 둔 부모를 이해하기 위해 공부를 시작해 '가족상담'을 주제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류 원장은 "대학원에서 상담학을 공부하는 동안 장애인을 대상으로 한 상담에 대한 연구가 많지 않아 아쉬움이 많았다"며 "장애인이 장애인을 돕는 '동료상담'을 박사 논문 주제로 선택한 것은 그 때문"이라고 전했다.
복지 전문가의 상담은 경제적·제도적 지원 안내 역할에 그치는 경우가 많지만, 동료상담은 장애 경험을 바탕으로 실질적인 도움을 주고 자립 의지를 심어주는 등 긍정적 상호작용을 한다고 류 원장은 설명했다.
그는 "장애 경험을 가장 잘 아는 건 역시 장애인 당사자"라면서 "장애인이 서비스를 받는 객체가 아니라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는 주체가 되도록 힘을 합쳐 노력하자는 의미"라고 강조했다.
공부를 계속하면서 쉬운 일은 하나도 없었다. 모든 게 희뿌옇게 보이는 그의 시력으로는 원하는 논문을 읽을 수 없어 학습 도우미 2명의 도움을 받아야 했다.
류 원장은 "박사 과정을 수료하고 논문을 쓰기까지 5년 정도 걸렸는데 학교에서 학습 지원을 해주지 않았다면 어려웠을 것"이라면서도 "특수교육법이 바뀌고 장애 학생 지원이 생겼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고 지적했다.
자신이 장애인이면서도 재활학, 상담학, 사회복지학까지 섭렵한 전문가인 류 원장은 장애인과 장애복지 전문가 사이의 '연결 다리' 역할을 하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대학원에 출강하는 방안도 대학 측과 논의 중이다.
그는 "장애인이 이 사회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 장애인이 걱정 없이 살 수 있게 제도·서비스·문화 등은 어떻게 바뀌어 가야 할지 다른 이들과 함께 고민하면서 답을 찾아가고 싶다"고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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