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네시아-호주, '발리테러 배후' 선처놓고 갈등 조짐

입력 2018-03-04 00:08  

인도네시아-호주, '발리테러 배후' 선처놓고 갈등 조짐
호주 "테러 배후 이슬람 성직자, 형기 다 채워야"



(자카르타=연합뉴스) 황철환 특파원 = 202명의 목숨을 앗아간 2002년 발리 폭탄 테러의 배후로 알려진 인도네시아 이슬람 성직자가 조기 석방될 가능성이 제기되자 최대 피해국인 호주가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3일 일간 콤파스 등 현지 언론에 따르면 인도네시아 정부는 알카에다 연계 테러조직인 제마 이슬라미야(JI)의 정신적 지도자 아부 바카르 바시르(80)를 조기 석방하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
다리에 피가 고이는 하지부종 증세를 보이는 등 고령으로 건강 상태가 악화했다는 이유에서다.
위란토 인도네시아 정치·치안·법률 조정장관은 2일 기자들을 만나 "사면과 가택연금, 입원 등으로 선처하는 방안이 조만간 논의돼 대통령에게 보고될 것"이라고 밝혔다.
인도네시아 이슬람 최고의결기구인 울레마협의회(MUI)는 이미 이와 관련해 조코 위도도(일명 조코위) 대통령에게 바시르에 대한 선처를 요청했다.
이러한 움직임은 사회적 낙인을 극복하지 못한 테러 전과자들이 끊임없이 문제를 일으키는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인도네시아 정부가 범사회적 통합을 추구하는 가운데 나왔다.



이와 관련해 인도네시아 대테러청(BNPT)은 지난달 28일 극단주의 테러 전과자 124명과 발리 테러 등을 겪고 살아남은 피해자 51명이 모여 화해를 선언하는 행사를 열기도 했다.
하지만 국내외에선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당장 BNPT의 테러범-피해자 화해 행사는 피해자 상당수가 불참한 채 반쪽으로 치러졌다.
바시르 역시 현행 민주주의 체제를 전면 부정하는 확신범인 까닭에 선처 대상으로 부적절하다는 지적을 받는다.
그는 2002년 발리 테러를 사실상 주도하고도 끈질긴 법정 투쟁을 벌여 2006년 무죄로 풀려났다. 하지만 2010년 인도네시아 대통령 암살을 준비하는 테러 훈련소에 자금을 댄 혐의로 재차 입건돼 이듬해 15년 형을 선고받고 복역했다.
이슬람 국가 건설을 추구해 온 바시르는 인도네시아 현행법이 '이단자의 법'이라면서 법원의 유죄 판결을 인정하지 않는 행태를 보인다.



그런 그의 선처 가능성에 가장 격렬히 반응한 것은 발리 폭탄 테러로 자국민 88명이 목숨을 잃은 호주다.
줄리 비숍 호주 외무장관은 3일 성명을 통해 바시르를 2002년 발리 테러의 배후로 규정하고 "그는 인도네시아법이 허용하는 최대한의 형량을 채워야 한다. 무고한 민간인을 겨냥한 공격을 벌이도록 다른 이를 선동할 기회를 줘선 안 된다"고 촉구했다.
그러나 인도네시아 정부가 호주 측의 요구를 받아들일지는 미지수다.
내년 총·대선을 앞두고 외세의 압력에 굴한 것으로 보일 위험을 감수하기 힘든 데다, 바시르가 옥중에서 사망할 경우 일종의 순교자로 포장될 가능성도 우려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바시르의 변호사인 파흐미 바흐미드는 "선처를 요청하는 것은 죄를 인정하는 모습이 되기에 그렇게 하지는 않을 것"이라면서도 "(바시르는) 늙고 병들었다. 그의 인권을 존중해 징역을 가택연금으로 전환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hwangch@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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