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총선] 반난민 정서·경제침체로 극우·포퓰리즘 맹위

입력 2018-03-05 09:07  

[이탈리아총선] 반난민 정서·경제침체로 극우·포퓰리즘 맹위
출구조사서 반체제 포퓰리즘 성향 오성운동·극우당 동맹 약진

(로마=연합뉴스) 현윤경 특파원 = 4일 실시된 이탈리아 총선은 이탈리아 사회에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 반(反)난민 정서가 사실상 승부를 가른 것으로 평가된다.
지난 몇 년 간 대규모로 유입돼 사회, 경제적 부담을 가중시킨 난민에 대한 반감은 '이탈리아 우선'과 강경한 난민 정책을 공약한 극우와 포퓰리즘 세력이 맹위를 떨치는 자양분이 됐다.
이탈리아에는 2013년 이래 현재까지 약 70만 명의 아프리카·중동발 난민이 지중해를 건너 유입됐고, 유럽연합(EU) 다른 회원국들이 난민 분산 수용에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는 탓에 현재 약 50만 명의 불법 난민이 이탈리아에 발이 묶여 있다.
2016년 EU와 터키가 체결한 난민협정으로 난민들이 그리스를 거쳐 서유럽으로 향하는 '발칸 루트'가 차단됨에 따라 아프리카와 중동을 떠난 대부분의 난민이 이탈리아로 몰려들었다. 졸지에 2차 대전 이후 최악으로 꼽히는 지중해 난민 위기를 '나 홀로' 떠안게 된 이탈리아에선 난민으로 인한 부담이 지속적으로 커지며 반난민 정서가 증폭됐다.



지난 달 3일 중부 마체라타에서 신파시즘을 신봉하는 극우 청년이 난민 집단에 살해돼 토막 시신으로 발견된 이탈리아 소녀의 복수를 한다는 명목으로 흑인들만을 겨냥해 총격을 가해 충격을 줬다. 아프리카 난민 6명을 다치게 한 이 사건은 이탈리아 사회가 직면한 난민 위기와 이와 맞물려 급속히 퍼지는 인종주의, 외국인혐오 현상을 극명하게 드러내는 계기로 작용했다. 결국 반난민 감정을 부채질하는 우파와 극우정당에 반사이익으로 이어졌다는 분석이다.
극우정당 동맹, 이탈리아형제들 등과 손잡고 우파연합을 결성해 선거에 임한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전 총리는 이 사건 직후 "60만명의 난민은 폭발 위험을 안고 있는 사회적 폭탄"이라고 주장하며, 이들을 모두 본국으로 송환할 것이라고 천명했다.
"난민에 이탈리아가 침략당했다"는 선동적인 구호를 즐겨 사용하는 극우정당 동맹의 마테오 살비니 대표도 "통제되지 않은 난민 정책이 이번 사건의 직접적 원인"이라며 집권당에 화살을 돌렸다.
마체라타 총격 사건 이후 이탈리아 각지에서는 범행을 저지른 극우 청년에게 연대를 표명하는 위험한 목소리가 분출됐다. 반난민과 반이민을 외치는 파시즘 추종 세력의 집회와 이에 맞서는 반파시즘 운동가들의 시위, 양측의 무력 충돌이 어지럽게 이어졌다. 이로인해 이번 선거전은 유례 없는 갈등, 혼란 속에 진행됐다.



이탈리아 정부가 리비아 통합 정부와 작년 7월 맺은 협약 덕분에 작년 하반기부터 이탈리아 입국 난민 수는 전년 대비 70% 급감하는 등 난민 행렬이 눈에 띄게 주춤해졌으나, 이미 단단히 뿌리 내린 대중의 반난민 정서를 되돌리기엔 역부족이었다.
일본에 이어 세계 2위의 고령화 국가인 이탈리아에서 이민자들의 기여가 없으면 연금제도가 존속할 수 없는 현실이나, 실상 이탈리아인들의 범죄율이 난민이나 이민자가 저지르는 범죄율보다 높다는 사실 등은 선거 국면에서 대중에게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수년째 지속된 대량 난민 행렬에 이미 피로감이 깊어진 대중은 "난민 유입을 완전히 막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좀 더 효율적으로 난민을 통제하겠다"며 현실적인 대안을 내놓은 집권당에 주목하지 않았다. 오히려 선박을 통해 유입되는 난민을 완전히 차단하고, 불법 난민 60만 명을 완전히 본국으로 돌려보내겠다는 실현 불가능해 보이는 공약을 제시한 극우·포퓰리즘 정당에 표를 주는 쪽을 택했다.



이탈리아 대중의 반난민 감정은 이탈리아가 겪고 있는 더딘 경제 회복, 빈곤층 확대 현상과 맞물리며 더 거세졌다는 분석이다.
경제 성장이 정체되고, 실업률과 청년 실업률이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 내에서 그리스 다음 정도의 수준으로 치솟은 상황에서, 가뜩이나 부족한 일자리를 난민들이나 이민자들이 빼앗아간다는 곱지 않은 시선까지 더해졌기 때문이다.
이탈리아는 2010년 유럽 재정 위기 이래 최악의 경기 후퇴를 겪으며 한동안 마이너스 성장을 이어간 탓에 실업률과 청년 실업률이 치솟고, 부실 대출 문제가 불거져 은행들이 줄도산하는가 하면, 국가부채도 국내총생산(GDP)의 132% 수준으로 상승해 유로존에서 그리스 다음으로 높은 상황이다.
2007년 5.7%이던 이탈리아의 실업률은 2014년 13%대로 올라서며 정점을 찍었고, 현재는 11%선에 머물고 있다. 이렇다 할 산업 기반이 없는 남부의 경우 실업률이 전국 평균보다 훨씬 높은 18.3%, 청년 실업률은 46.6%에 이른다.
작년에 이탈리아 경제는 예상을 뛰어넘는 1.5%가 성장하는 등 14분기 연속 성장세를 이어가며 오랜 경기 침체에서는 일단 벗어난 것으로 보이지만, 아직 성장률이 유로존 평균인 2.5%에는 훨씬 못 미친다. 침체가 워낙 길고 깊었던 까닭에 현재 경제 규모 역시 2008년 초에 비해 6%나 작은 형편이라 국민 대다수는 경기 회복을 체감하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이런 가운데, 생필품을 구입하기조차 힘든 절대 빈곤에 처한 이탈리아 인구는 2016년 기준으로 총 470만 명에 달해 10년 만에 3배 가까이 증가했다. 또, 전체 인구의 약 3분의 1에 해당하는 1천800만명이 빈곤층으로 전락한 것으로 집계됐다.
이런 빈곤층은 저소득층에게 기본소득 730 유로(약 100만원)를 지급하겠다고 공약한 반체제 정당 오성운동에 대거 표를 던지며 포퓰리즘의 득세에 힘을 보탠 것으로 보인다.
이탈리아 공영방송 RAI가 실시한 총선 출구조사에서 베를루스코니 전 총리가 이끄는 우파연합이 33∼36%를 득표해 하원에서 최다의석을 차지할 것으로 집계됐다. 오성운동은 약 30%의 표를 얻어 창당 9년 만에 이탈리아 최대 정당 자리를 꿰찰 것으로 전망됐다.
ykhyun14@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관련뉴스

    top
    • 마이핀
    • 와우캐시
    • 고객센터
    • 페이스 북
    • 유튜브
    • 카카오페이지

    마이핀

    와우캐시

    와우넷에서 실제 현금과
    동일하게 사용되는 사이버머니
    캐시충전
    서비스 상품
    월정액 서비스
    GOLD 한국경제 TV 실시간 방송
    GOLD PLUS 골드서비스 + VOD 주식강좌
    파트너 방송 파트너방송 + 녹화방송 + 회원전용게시판
    +SMS증권정보 + 골드플러스 서비스

    고객센터

    강연회·행사 더보기

    7일간 등록된 일정이 없습니다.

    이벤트

    7일간 등록된 일정이 없습니다.

    공지사항 더보기

    open
    핀(구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