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총선] '추문 제조기' 베를루스코니, 좌절된 '화려한 복귀'(종합)

입력 2018-03-05 20:11  

[이탈리아총선] '추문 제조기' 베를루스코니, 좌절된 '화려한 복귀'(종합)
최다득표 우파연합 구심점 역할 했으나, 극우당 동맹에 주도권 내줘
'킹메이커' 계획 사실상 무산…현지 일간 "'베를루스코니 기적' 불발"

(로마=연합뉴스) 현윤경 특파원 = 4일 실시된 이탈리아 총선 과정에서 집중 조명을 받으며 정치 전면에 화려한 복귀를 노리던 실비오 베를루스코니(81) 전 총리가 예상치 못한 일격을 당했다.
개표가 75% 넘게 이뤄진 5일 오전(현지시간) 기준으로 베를루스코니 전 총리가 중심이 된 우파연합은 상원과 하원 모두에서 37%가 넘는 표를 얻고 있어 최다 의석 확보가 확실시 된다.



작년 초까지만 해도 각종 추문과 이에 따른 송사에 건강 이상까지 겹치며 정치적 생명이 끝난 것으로 여겨졌던 베를루스코니 전 총리는철학과 정책에서 간극이 큰 4개의 우파 정당들을 하나로 묶는 구심점 역할을 하며 선거전 내내 상당한 존재감을 과시했다.
하지만, 선거 결과가 드러나자 그는 웃을 수 없는 처지가 됐다.
그가 이끄는 중도우파 정당 전진이탈리아(FI)가 당초 예상과 달리 우파연합의 또 다른 축인 극우정당 동맹에 밀렸기 때문이다. FI는 약 14%를 얻는 데 그쳐 약 18%를 득표한 마테오 살비니(44) 대표의 동맹에게 상당한 격차로 뒤진 것으로 나타났다.
베를루스코니 전 총리와 살비니 대표는 총선에서 더 많은 표를 얻는 정당이 우파연합의 총리 후보로 나서기로 약정했기 때문에 향후 정부 구성 협의 과정에서 우파연합의 주도권은 살비니가 쥘 수밖에 없게 됐다.



이로써 오른팔 격인 안토니오 타이아니(63) 유럽의회 의장을 앞세워 '킹메이커' 역할을 노리던 베를루스코니의 계획은 사실상 좌절된 것으로 보인다.
베를루스코니는 2013년 탈세 혐의가 유죄로 확정된 여파로 2019년까지 공직 진출이 금지된 탓에 직접 총리로 나설 수 없는 상황이라, 측근 타이아니를 자신의 대리인으로 내세워 총선 후 정부 구성 협상 과정에서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구상이었다.
이번 총선을 앞두고, 스스로를 "포퓰리즘의 위협에 맞서 이탈리아와 유럽연합(EU)을 수호한 온건한 정치인"으로 포장한 그는 유럽 친화적인 타이아니 의장을 대리인으로 낙점했으나, EU와 유로존 탈퇴까지 부르짖는 아들 뻘의 극우 정치인 살비니에게 득표율에서 밀리며 체면을 구겼다.
일간 라 레푸블리카는 이번 선거 결과에 대해 "'베를루스코니의 기적'은 실패로 돌아갔다"고 지적했다.
오랜 경제침체로 인한 빈곤 확산, 지중해를 건너 끝없이 밀려드는 난민 행렬 속에 분노가 누적된 대중은 기득권과 기성 정당을 심판하는 방향으로 투표를 했고, 누가 봐도 명백히 과거의 정치적 유산에 속해 있는 베를루스코니 전 총리는 전통적 지지층의 향수를 자극하는 데 그쳤다는 평가다.
하지만, 작년 초까지만 해도 각종 추문과 이에 따른 송사에 건강 이상까지 겹치며 정치적 생명이 끝난 것으로 여겨졌던 그가 이번 총선 과정에서 건재를 과시, 아직 존재감이 사그러들지 않았음을 입증한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기도 하다.


고령의 그는 1년 반 전에 받은 심장 수술로 인해 과거처럼 대규모 유세에 나서지는 못했으나 TV와 라디오를 종횡무진 누비며 성형시술에 힘입은 팽팽한 피부와 녹슬지 않은 입담을 자랑했고, 이는 노년층, 중·하류 계층 등 그의 전통적 지지층을 결집하는 효과를 냈다.
"나는 좋은 와인과 같다. 나이가 들면서 전보다 더 발전해 지금 완벽한 상태"라고 자화자찬하며 변치 않는 자신감을 과시하기도 했다.
각종 성추문과 비리 의혹에도 불구하고, 이런 그에게 여전히 호응하는 지지자들을 보며 경쟁자들은 분통을 터뜨렸다.
우파연합과 이번 선거의 승부를 가른 남부를 놓고 혈투를 벌인 오성운동의 대표 정치인 알레산드로 디 바티스타는 "정상 국가라면 그는 감옥에 있어야 한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선거 당일인 4일에는 투표차 밀라노의 투표소를 방문한 그의 앞에서 "당신은 (유효기간이)끝났어"라는 문구를 몸통에 적은 반라의 여성이 돌발 시위를 벌이는 장면이 연출되기도 했다.
한편, 건설업과 미디어 사업을 통해 이탈리아 최고의 부를 일군 뒤 1993년 정계에 입문한 베를루스코니 전 총리는 자신의 3번째 총리직(2005년 이뤄진 개각을 감안하면 4번째 총리직)을 수행하던 2011년 이탈리아가 국가 부도 위기 직전까지 가는 벼랑 끝에 몰리자 국내외의 압력으로 자리에서 물러났었다.
그는 이후 미성년자 성매수, 탈세, 수뢰 등의 혐의로 계속 법정에 불려 다녀 체면을 구겼고, 2013년에는 탈세 재판에서 끝내 유죄를 선고받으며 상원의원직을 박탈당하고 정계를 떠나는 처지가 됐다.
2016년 여름 심장 판막 교체 수술을 받은 뒤로는 각별히 애정을 쏟은 이탈리아 프로축구단 AC밀란을 중국 자본에 매각하는 등 주변을 정리하는 듯한 모습을 보여 그의 은퇴는 기정사실로 여겨졌지만, 작년 11월 시칠리아 주지사 선거전에서 우파연합의 승리를 견인하며 정치 활동을 재개했다.
2010년 자신의 자택에서 벌인 일명 '붕가붕가' 파티에서 미성년자에게 돈을 주고 성관계를 한 혐의로 재판을 받는 등 다수의 떠들썩한 추문에 휩싸였던 그는 2차례 이혼을 거쳐 지금은 TV 쇼걸 출신인 49살 연하의 프란체스카 파스칼레와 동거 중이다.
ykhyun14@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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