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니서 멸종위기 수마트라 호랑이 잔혹 사냥 '논란'

입력 2018-03-05 14:30   수정 2018-03-05 15:00

인니서 멸종위기 수마트라 호랑이 잔혹 사냥 '논란'
불법 벌목꾼들 "전설속 괴물" 소문 퍼뜨려…주민들 선동 '퇴치' 부추긴듯



(자카르타=연합뉴스) 황철환 특파원 = 인도네시아의 오지 마을 주민들이 미신적 공포에 사로잡혀 멸종위기종인 수마트라 호랑이를 참혹하게 사냥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5일 자카르타포스트 등 현지 언론에 따르면 현지시간으로 전날 오전 8시께 북수마트라 주 만다일링 나탈 리젠시(郡·군) 바탕 나탈 지역에서 수컷 수마트라 호랑이 한 마리가 주민들의 창에 찔려 사냥됐다.
이 호랑이는 내장이 제거된 뒤 대들보에 걸쳐졌다. 수마트라 민화에 등장하는 악한 영인 '실루만'(siluman)이 호랑이의 형상으로 변해 나타났다는 믿음 때문이다.
조사결과 이 지역에선 약 한 달 전부터 사람의 얼굴을 지닌 호랑이가 마을을 배회한다는 소문이 퍼졌던 것으로 확인됐다. 인도네시아는 인구의 90% 가량이 이슬람을 믿지만, 토속신앙에서 비롯된 미신이 상당한 영향력을 갖고 있다.
헛소문에서 시작된 공포가 갈수록 커지자 주변 4개 마을 주민들은 50명 규모의 사냥대를 결성해 '괴물 퇴치'에 나섰다.
집단적 광기에 사로잡힌 이들은 뒤늦게 소식을 듣고 찾아 온 북수마트라 천연자원보호국(BKSDA) 당국자 10명을 집단 폭행하고 호랑이를 죽여도 고발하지 않겠다는 내용의 각서에 서명하도록 하기도 했다.
결국, 주민들은 문제의 호랑이를 은신처인 동굴에서 몰아낸 뒤 추적 끝에 죽인 것으로 알려졌다.
호트마울리 시안투리 북수마트라 BKSDA 국장은 "주민들은 보통 호랑이를 쫓아주겠다고 하면 고마워하는데, 이 지역에선 그렇지 않았다"면서 이번 사건에 전문 선동꾼이 개입했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인도네시아에선 팜오일·고무 농장 개간과 제지를 위한 벌목이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다. 이번에 사냥된 호랑이가 살던 숲에서도 불법벌목의 흔적이 발견됐다.
당국은 누군가 벌목 작업에 방해되는 호랑이를 제거하려고 의도적으로 소문을 퍼뜨렸을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수마트라 호랑이는 현존하는 호랑이 중 가장 덩치가 작은 호랑이로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이 지정한 '심각한 위기종'(Critically Endangered)'이다.
심각한 위기종은 '야생 상태 절멸'(Extinct in the Wild)의 바로 앞 단계다. 수마트라 호랑이는 인도네시아 수마트라 섬에만 400여마리가 남은 것으로 알려졌다.
hwangch@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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