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칭 '국제질서 옹호자' 울타리 아닌 위협"
NYT "종신집권으로 희망 꺾고 일대일로로 분열 조장"
(서울=연합뉴스) 한상용 기자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대통령에 당선되자 유럽에서는 막연한 가능성이 공포로 돌변했다.
유럽 동맹국들과의 안보 공조를 비웃고 무역적자를 문제 삼아 보복하겠다던 국수주의 후보가 대권을 거머쥐면서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한 이후 그 미국 우선주의는 실제로 기존 국제합의를 깨는 쪽으로 나타나 유럽에서는 원성이 터져 나왔다.
그 혼란을 틈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미국이 더는 국제질서의 옹호자 역할을 못 한다면 중국이 하겠다'고 다짐하며 호기롭게 등장했다.
유럽 정부 관리들과 최고 경영자들은 시진핑 주석의 등장과 그의 국제 수호자 역할 가능성에 기대감을 나타냈다.
그러나 1년이 지난 뒤 유럽 지도자들은 다시 큰 실망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시 주석이 국제질서의 '위대한 수호자'가 아닌 '국제질서의 위협'이 될 수 있다는 현실에 유럽이 직면했다고 미국 뉴욕타임스(NYT)가 4일 보도했다.
중국 국가주석의 '2연임 철폐' 추진은 국제질서에서 '책임 있는 이해 당사국'이 될 것이라는 서방의 희망을 꺾어 버렸고 시 주석의 일대일로(一帶一路:육상·해상 실크로드) 정책 추진은 '유럽을 분열시킨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당장 다수의 유럽 국가 지도자들은 중국이 EU를 갈라놓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들 지도자는 또 중국이 독일을 포함한 유럽 내 해외 투자 전략과 함께 군사적 측면에서 더욱 공격적으로 변모하는 점을 우려했다.
비영리기구 아시아소사이어티의 중국 전문가인 오빌 셸은 "우리는 지금 변곡점에 와 있다"며 "서방 세계는 이제 우리가 과거에 했던 것보다 더욱 진지하게 중국의 압력을 세계로 가지고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유럽 정치 지도자들은 트럼프 행정부의 외교 정책 리더십 공백 상황에서 중국의 유럽 투자 의도와 영향력에 우려를 나타내기도 했다.
실제 지그마어 가브리엘 독일 외무장관은 지난달 중국이 세계 질서에서 그 자신의 자체 모델을 추진하고 있으며 "세계에 중국 도장을 찍고 중국 시스템을 부과하려 시도하고 있다"고 경고했다.
중국의 이러한 시도는 인권과 개인의 자유를 기반으로 하는 유럽의 시스템과는 다르다고 가브리엘 장관은 부연했다.
특히, 가브리엘 장관은 중국의 '일대일로' 정책을 비판하면서 "우리가 중국을 겨냥한 단일 전략을 발전시키지 못한다면 중국은 유럽을 분할시키는 데 성공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선 그의 발언이 불필요한 우려를 자아낸다는 시각이 있지만, 독일은 이미 중국의 최대 교역 파트너로서 지난해 양국 간 교역 규모는 2천300억 달러에 달한다고 NYT는 전했다.
중국 회사들은 2016년 독일의 핵심 로봇기업 쿠카를 이미 사들였고 이후 독일 반도체 칩 제조사인 아익스트론를 인수하려다 미국 당국의 반대로 무산된 일도 있다.
유럽외교관계이사회의 아시아 전문가 안젤라 슈탄첼은 이런 분위기 속에 "독일 내 중국의 영향력에 대한 공개 토론이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일대일로' 정책을 두고는 "주된 우려 사항은 중국의 분할 통치 정책"이라고 지적했다.
중국이 '일대일로' 투자를 빌미 삼아 유럽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얘기다.
이런 상황에서 독일과 프랑스 정부는 외국 기업의 인수·합병과 기술 유출 등에 관한 규제를 강화하기도 했다.
클레어몬트 매케나 컬리지의 중국 학자 민신 페이는 유럽 내 중국의 활동은 남중국해에서처럼 "어느 곳이 약한지 어느 곳이 저항하는지 테스트하는 일종의 특성 조사"라고 진단했다.
NYT는 시 주석을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울타리'로 간주하지 않는 지금 유럽 지도자들이 오히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러시아를 대하는 데 점차 익숙해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gogo213@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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