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주민 "충청인이라는 사실 부끄러울 정도"
(대전=연합뉴스) 한종구 기자 = 안희정 충남지사가 여비서를 성폭행했다는 폭로가 나온 지 하루도 안 돼 도지사직에서 물러남으로써 대전과 충남 모두 수장이 공석인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권선택 전 대전시장은 지난해 11월 공직선거법 위반이 확정돼 시장직을 잃었다.
대전과 충남 광역단체장이 잇따라 불미스러운 사건으로 중도 하차하는 것은 처음 있는 일로, 지역 정가와 경제계 등은 물론 주민들도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안 지사는 비서실 직원을 통해 6일 오전 충남도의회에 사임통지서를 제출했고, 도의회는 곧바로 사직서를 수리했다.
사유를 적는 항목에는 개인신상이라고 적었다.
안 지사는 앞서 공보비서 성폭행 의혹이 제기된 지 5시간여 만인 이날 오전 1시께 자신의 페이스북에 도지사직에서 사퇴하고 정치활동을 그만두겠다는 뜻을 밝혔다.
그는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모든 분들께 정말 죄송하다. 무엇보다 저로 인해 고통을 받았을 김지은씨에게 정말 죄송하다"고 공개 사과한 뒤 "오늘부로 도지사직을 내려놓는다. 일체의 정치 활동도 중단하겠다"고 밝혔다.
집권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의 유력한 차기 대권주자 중 한 명으로 분류됐던 안 지사는 이로써 한순간에 잠정적으로 정계 은퇴를 하는 처지에 놓인 셈이다.
폭로의 사실 여부는 수사기관을 통해 가려지겠지만, 추락한 도덕성을 회복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대전시의 수장이던 권선택 전 시장은 임기 내내 자신을 옥죄던 '정치자금법'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고 약 5개월 전인 지난해 11월 14일 물러났다.
선거운동 기간이 아닌 때에 선거운동기구 유사단체를 설립해 사전 선거운동을 하고 해당 단체 회원들에게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징역형이 확정됐기 때문이다.
대전시장 취임 직후인 2014년 7월 선거관리위원회가 권 시장 선거사무소 선거운동원을 고발하면서 수사가 시작된 지 3년 4개월 만이다.
대전시장과 충남지사가 이처럼 한꺼번에 공석인 경우는 1989년 대전시가 충남도에서 분리된 이후 처음이다.
2009년 12월 이완구 전 충남지사가 정부의 세종시 수정 추진에 반발해 지사직을 사퇴한 적은 있었지만, 두 광역단체장이 불명예 퇴진한 경우는 이번이 처음이다.
현재 대전은 이재관 행정부시장이, 충남은 남궁영 행정부시장이 각각 권한대행을 맡아 시정과 도정을 이끌고 있다.
지역 주민들은 대전시장과 충남지사의 잇단 '불명예 하차'에 큰 충격을 받은 모습이다.
특히 안 지사의 경우 충청 대망론과 맞물려 주목받던 상황에서 한순간에 성폭행이라는 파렴치한으로 추락해 주민들이 받은 충격은 더 커 보인다.
충남 보령에 사는 이모(37·여)씨는 "젊고 깨끗한 이미지를 가진 안희정 지사를 정말 좋아했는데 이런 일이 생길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며 "오늘로 안 지사에 대한 좋은 기억을 지우겠다"고 말했다.
대전시민 이모(42)씨도 "본래 한 자치단체였던 대전과 충남에서 잇따라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했다는 사실을 이해할 수 없다"며 "충청인이라는 점이 오늘은 정말 부끄럽다"고 고개를 숙였다.
jkhan@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