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하직원 추행했다 대법원서 유죄 확정…이후에도 인권침해 조사업무 맡아
(서울=연합뉴스) 안홍석 기자 = 인권전담 독립 기관인 국가인권위원회에서 부하 직원을 성추행했다가 유죄 판결을 받은 직원이 버젓이 인권침해 사건 조사 업무를 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8일 인권위 등에 따르면 직원 A씨는 부하 직원 B씨를 추행한 혐의가 인정돼 지난해 5월 대법원에서 유죄 판결이 확정됐으나 현재까지 인권위 조사국에서 근무하고 있다.
B씨는 인권위 기획재정담당관실에서 일하던 2014년 2∼9월 당시 직속상관이었던 팀장 A씨가 회식 장소와 사무실에서 수차례에 걸쳐 성추행·성희롱을 했다며 업무상 위력에 의한 추행 혐의로 고소했다.
이중 회식 장소에서의 추행 혐의가 법원에서 인정돼 A씨는 벌금 300만원에 40시간의 성폭력 치료 프로그램을 이수하라는 확정 판결을 받았다.
법원에 따르면 A씨는 2014년 2월 한 음식점에서 옆자리에 앉은 B씨에게 '당신에게 취하면 평생을 간다', '사랑한다' 등 내용의 귓속말을 했다. 또 B씨 손목과 손을 잡고는 한동안 놔주지 않았다.
하지만 인권위는 A씨에게 감봉 1개월 징계만 한 차례 내렸을 뿐 그가 피의자 신분이던 때는 물론, 전과자가 된 지난해 5월 이후에도 다른 조치 없이 계속 근무하도록 뒀다.
특히, A씨는 인권침해 피해자와 밀접하게 소통해야 하는 조사관 업무를 현재까지 수년간 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조사관은 성폭력이나 성희롱을 포함한 인권침해 사건을 조사하는 자리다. 피해자를 직접 만나 진술을 듣고, 위원회가 열리면 피해자 입장에서 의견을 제시한다.
인권 옹호 기관인 인권위가 인권침해 피해자를 구제하는 핵심 업무를 성범죄자에게 맡겨둔 셈이다. 반면, B씨는 2014년 11월 직장을 옮겨야 했다.
B씨는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피해를 당했을 당시 인권위 내부에 문제제기를 했으나 당시 사무총장이 가해자에 대한 내부감사에 착수하지 말도록 지시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재판이 진행된 2년 반 넘게 정신적 고통을 겪었다"면서 "이후에도 A씨가 인권위를 대표해 브리핑이나 토론회에 나서는 모습을 언론 보도 등을 통해 접할 때마다 극심한 분노를 느낀다"고 말했다.
국가공무원법은 A씨처럼 '성폭력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으로 벌금 300만원 이상을 선고받은 공무원은 당연퇴직하도록 규정한다. 그러나 해당 규정이 마련된 것은 2015년이어서 2014년에 범죄를 저지른 A씨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다.
인권위 관계자는 "현행 규정상 A씨에게 줄 수 있는 불이익은 다 준 상태"라면서 "A씨를 성과 관련한 사건 조사 업무에서는 배제해왔고, 승진 대상에서도 제외했다"고 말했다.
인권위는 전날 위원장 성명을 통해 "성희롱, 성폭력을 당해도 피해자가 안심하고 말할 수 있고 보호받는 사회와 제도를 만들기 위해 피해자와 함께하는 '#위드유(#With You)' 운동을 본격적으로 전개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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