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김계연 기자 = 지금은 만성질환 정도로 인식되는 에이즈(AIDS)는 별다른 치료약이 없던 1990년대만 해도 전세계적으로 공포의 대상이었다. HIV 바이러스에 노출 위험이 상대적으로 큰 동성애자에 대한 사회적 편견도 극에 달했다.
'120BPM'은 1987년 출범한 에이즈 운동단체 '액트 업'(Act Up) 소속 프랑스 활동가들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다. 이들은 에이즈 감염자의 인권보호 활동을 펼치면서, 감염자가 급격히 늘어나는데도 별다른 치료제를 내놓지 않는 정부와 제약회사를 상대로 싸웠다.
휴대전화도 SNS도 없던 때, 활동가들이 한자리에 모여 토론을 벌이는 장면으로 영화는 시작한다. '액트 업 파리'는 비폭력을 지향한다. 그러나 정부와 제약회사를 상대로 의견을 표출하는 이들의 전술은 합법과 불법의 경계를 넘나든다. 에이즈 감염자에 대한 차별과 편견 탓에 웬만한 자극으로는 목소리가 전달되지 못해서다.
활동가들은 제약회사 사무실에 난입해 가짜 피를 뿌리고 드러누워 구호를 외친다. 경찰서 신세를 지긴 했지만 표정은 밝다. 결국 제약회사로부터 소량이나마 치료제를 공급하겠다는 답변을 받아낸다.
정부는 마약 중독자들의 주사기 반복 사용이 에이즈 감염의 주요 경로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방치한다. 자칫 마약 합법화로 이어질까 우려해서다. 그러나 생사가 달린 감염자들에게는 정부의 겉핥기식 에이즈 퇴치 캠페인이 위선으로 보인다. 고등학교에 찾아가 학생들에게 에이즈 예방법을 가르치고, 교장에게 콘돔 자동판매기를 왜 설치하지 않느냐며 따진다. 물론 '호모'라는 고교생들의 조롱도 감수한다.
토론·거리집회와 함께 활동가들의 사랑이 영화의 한 축을 이룬다. 단체에 새로 들어온 나톤(아르노 발노아 분)은 션(나우엘 페레즈 비스키야트)과 사랑에 빠진다. 션은 누구보다 열정적인 활동가지만, 면역력을 담당하는 T4세포가 계속 줄어들고 있다. 살아갈 날이 얼마 남지 않은 션을 향한 나톤의 사랑은 거침없고 헌신적이다.
나톤과 션이 나누는 사랑, 활동가들의 토론과 거리집회가 영화 내내 깊이 있고 실감 나게 반복된다. 활동가 각자의 현실에서 출발한 문제의식은 소수자 인권과 허술한 의료·복지체계, 권력층의 위선에 대한 비판까지 아우른다. 지극히 개인적이면서 동시에 고도로 정치적인 운동으로 발전하는 셈이다. 열띤 토론을 마치고 나서 BPM(분당 박자수) 120의 하우스 리듬에 몸을 맡기는 활동가들에게 사랑과 투쟁은 분리되지 않는다.
영화에는 젊은 시절 게이로서 에이즈 공포에 사로잡혔고, '액트 업'에 가담했던 로빈 캉필로 감독의 경험이 반영됐다. 지난해 칸국제영화제 심사위원 대상에 이어 이달 초 세자르영화제에서 작품상 등 6관왕에 오르는 등 평단의 폭넓은 지지를 받았다. 청소년관람불가. 15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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