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여성의 날…이스라엘·터키·인도서도 꿈틀대는 '미투'

입력 2018-03-08 16:42  

세계여성의 날…이스라엘·터키·인도서도 꿈틀대는 '미투'
WP, 무관심과 저항 속 '미투운동' 고군분투하는 5인 소개

(서울=연합뉴스) 권혜진 기자 = 8일 '세계 여성의 날'을 맞아 미 일간 워싱턴포스트(WP)가 세계 곳곳에서 '미투'와 '타임즈업' 운동을 통해 여성의 권익을 강화하고 사회를 변혁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여성 5인을 조명했다.
20년 전 받은 '외설적 제안'을 폭로해 '쓰나미'를 일으킨 방송인 오슈랏 코틀러(52)와 소셜미디어에 해시태그를 다는 행위를 넘어 행동에 나서라고 주문하는 스텔라 크리시(40) 영국 노동당 의원, 성범죄 신고에 소극적인 일본에서 관련법 개정을 이끈 준 야마모토(44), 가부장적인 터키에서 여성의 권익 향상을 위해 평생을 바친 여성운동가 겸 변호사인 캐넌 아린(75), 동남아시아 대학 내 교수들의 성추행 사실을 페이스북을 통해 폭로한 인도계 싱가포르인 라야 사르카(24)가 이들이다.



이스라엘 채널10 뉴스의 선임 편집장이자 앵커인 코틀러는 지난해 11월 한 생방송 프로그램에서 할리우드에서 시작된 '미투' 캠페인에 관해 이야기하던 중 20년 전 받은 "부적절한 제안"을 폭로해 큰 파문을 일으켰다.
그가 방송 중 이스라엘 언론 재벌이자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인 알렉스 길라디가 당시 구직 면접을 본 자신에게 연락해 저녁을 함께하자고 제안한 뒤 "이후 시간을 모두 비워라"라고 지시한 일이 있다고 폭로했다.
또 이를 거절하자 "할리우드에선 여성들이 이렇게 성공하는 거 모르느냐"며 종용했다고 밝혔다.
코틀러의 폭로는 이스라엘 사회에서 권력을 쥔 남성들에 맞서 여성들이 목소리를 내는 도화선이 됐다. 이후 길라디로부터 같은 피해를 경험했다는 여성만 4명이 더 나왔다.
그러나 "자리에서 물러나겠다"고 한 길라디는 지난 1월 코틀러를 상대로 60만 달러의 손해배상을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하며 압박을 가하고 있다.


영국 의회를 뒤흔든 성 추문 스캔들과 BBC의 남녀 임금 차별, 영국 내 미투 운동 등으로 영국에서도 남녀 불평등이 이슈화되고 있다.
10파운드 지폐에 작가 제인 오스틴의 초상을 넣기 위한 활동을 후원하는 등 여성권익을 위해 목소리를 내는 크리시 의원의 최근 관심사는 미투 운동으로 커진 관심사를 어떻게 행동으로 이어지도록 하느냐는 것이다.
크리시 의원은 "해시태그는 줄이고 행동에 나서라"라고 주문한다.
크리시 의원이 학교에서 성적 동의에 대해 의무적으로 교육하고, 성추행 피해자들이 법률적인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데 앞장서는 것도 이런 맥락이다.
자신이 어릴 때 세상이 공평하지 않다고 불평하면 부모님은 "그래, 그렇다면 이제 넌 무엇을 할 거니"라는 질문을 던졌다는 크리시 의원은 "마치 황소 앞에 붉은 천을 흔드는 것 같은 행위지만 평등은 모두를 위해 좋은 일"이라고 강조했다.


야마모토는 성폭력 피해자들이 목소리를 거의 내지 않는 일본에서 드물게 자신의 피해를 공개해 성폭력 문제를 공론화함으로써 성범죄에 대한 형법 개정을 이끌어냈다.
일본 형법의 성범죄 관련 내용은 자그마치 100여년 전인 1907년 제정된 이후 큰 변화가 없어 기소도 어려웠지만, 형량도 낮았다.
13살 때 아버지로부터 성폭행을 당한 야마모토는 2010년까지도 이를 비밀로 숨겼다. 그러나 2010년 다른 여성들이 이를 공개하는 것을 보고 자신의 피해 사실도 꺼내놓기 시작한 그는 이후 자신의 경험을 담은 책을 내는가 하면 성폭력 피해자를 나 조직을 설립했다.
야마모토 같은 지지자들에 힘입어 일본 중의회는 강간죄를 '강제성교죄'로 이름을 바꾸고 최저 형량도 징역 3년에서 5년으로 상향하는 내용의 형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가부장적 관습이 있는 터키는 아직 전 세계적으로 번져나가는 '미투 운동'이 도달하지 않았다. 그러나 성폭력과 가정폭력 피해 여성을 대변하기 위해 일평생을 바친 아린은 "이런 이슈가 국제무대에 등장한 자체가 좋다"며 반가워했다.
아린은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은 "국제적으로 누가 무슨 말을 하든 신경 쓰지 않는 사람"이라며 에르도안 집권 이후 여성 문제는 가장 먼저 무시되기 일쑤라고 지적했다.
그는 1990년 터키에서 가장 먼저 여성을 위한 보호시설을 설립하고 여성에 대해 봉건적으로 접근한 형법 개정에 기여했다.
여성운동을 하면서 예언자 무함마드와 공무원에 대한 명예훼손죄로 기소당하기도 한 아린은 그러나 "죽을 때까지" 여성권익 보호를 위해 투쟁하겠다고 밝혔다.



사르카는 지난해 10월 세계를 휩쓴 '미투 운동'에 대한 기사를 읽고 성추행 혐의를 받는 대학 교수 명단을 정리해보기로 결심했다.
인도에서 공부할 때 대학 친구가 성추행 사실을 신고하자 오히려 "거짓말했다고 인정하라"며 압박받는 모습을 목격했기 때문이다.
사르카는 페이스북에 교수로부터 성추행을 당한 경험을 공유해달라는 메시지를 올렸고, 100여명 이상의 여성이 그녀의 메시지에 호응하며 자신의 경험을 털어놨다.
사르카는 주장이 구체적으로 보이는 교수 70명의 이름을 정리해 페이스북에 올렸으며 이 명단은 곧바로 퍼져 나갔다. 교수 가운데는 저명한 학자도 다수 포함됐다.
사르카는 "법원이나 배상 체계가 실패했다고 느끼는 성폭력 피해자들의 시민 불복종이라고들 말한다"면서 관심이 빠르게 사그라졌지만 대학 내 성폭력에 대한 논의를 촉발했다는 점에서 "기쁘다"고 말했다.
lucid@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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