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보호법, 지자체에 위임 규정…숭례문은 화재 후 문화재청이 직접 챙겨
서울시 "문화재 26곳 통합 관리 시스템 개발 내부 논의 중"
(서울=연합뉴스) 이태수 기자 = 2008년 설 연휴 마지막 날이던 2월 10일 밤 '국보 1호' 숭례문이 방화로 전소돼 온국민이 충격을 받았다. 그로부터 10년 만에 '보물 1호' 흥인지문에서 9일 새벽 방화 사건이 벌어지자 중요 문화재 관리가 제대로 되고 있는지 다시 관심이 쏠린다.
숭례문 참사 이후 정부와 지자체는 주요 문화재에 대한 관리 감독을 강화했지만, 문화재마다 관리주체가 달라 일관성이 없는데다 실제 관리가 잘될 수 있도록 인적·물적인 지원이 충분한지 점검해야봐야 할 시점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로 지난해 8월 대학생들이 한밤에 경북 경주의 국보 31호 첨성대에 올라가 기념사진을 찍다가 문화재보호법 위반혐의로 붙잡히는 등 문화재 관리 부실 사례가 심심치않게 발생하고 있다.
서울 시내 중요 문화재 가운데 숭례문은 중앙정부(문화재청)가 직접 상주 인력을 두고 24시간 관리하지만, 보물 포함 나머지 26개 문화재는 서울시나 여러 자치구에 경비 배치 등 관리가 맡겨진 상태여서 일관성이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서울시와 자치구에 따르면 현재 흥인지문, 동묘, 창의문, 탑골, 경교장, 박정희 가옥 등 총 26곳은 각 자치구나 서울시가 경비를 두는 식으로 관리하고 있다.
시 관계자는 "이들 문화재에는 적게는 2명에서 많게는 16명까지 2∼4교대로 경비 인력을 두고 24시간 내내 혹시 모를 사고에 대비한다"며 "이를 위해 올해 국비와 시비를 합쳐 총 34억7천700만원이 투입된다"고 설명했다.
특히 흥인지문에는 보물 1호라는 중요성 때문에 12명에 달하는 경비 인력이 3인 1조 3교대로 24시간 근무하고 있다. 이번 방화 사건 당시 범행 현장을 본 행인이 112에 신고하자, 연락을 받은 현장 관리인이 119 소방대가 오기 전에 신속하게 진화한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제2의 숭례문 참사'가 일어날 뻔한 것을 자치구 소속 현장 관리인이 막았다는 것이다.
이번 일에서 현장 관리인의 기민한 대처는 귀감이 돼야 마땅하겠지만, 삼척동자도 아는 우리나라 '간판급 문화재'를 중앙정부도, 서울시도 아닌 한 자치구의 역량에 맡겨두는 것이 충분하지 않다는 우려도 나온다.
서울시와 자치구가 인력을 두고 관리하는 문화재를 자치구별로 살펴보면 종로구가 9곳으로 가장 많다. 중구·성북구·은평구·송파구가 각 2곳씩 관리 중이다. 중구는 광희문과 환구단, 송파구는 풍납토성과 석촌동 고분군, 강동구는 암사동 유적을 각각 맡고 있다.
중구 관계자는 "광희문과 환구단에는 총 11명의 인력이 배치돼 24시간 감시한다. 일년에 두 차례 화재대비훈련도 한다"며 "현장에는 CCTV와 불꽃감지기도 설치돼 있다"고 말했다.
서울역사박물관은 백범 김구 선생이 광복 후인 1945년 11월부터 1949년 6월 26일 암살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살던 곳인 '경교장'을 관리한다. 서울시 역사문화재과가 직접 관리하는 곳도 최규하·이상범·박정희 가옥 등 5곳이 있다.
이들 26곳 가운데 종로구가 관리하는 흥인지문, 동묘, 창의문, 문묘 등 4곳은 보물로 지정돼 있다. 서울시와 자치구가 맡은 문화재 가운데 국보는 없다.
이처럼 문화재 관리가 문화재청→서울시→자치구로 이어지는 '하청' 구조가 된 것은 위임을 가능케 한 문화재보호법 때문이다.
문화재보호법은 국가지정문화재의 소유자가 분명하지 않거나, 소유자 또는 관리자에 의한 관리가 곤란하다고 인정되면 지방자치단체나 그 문화재를 관리하기에 적당한 법인·단체를 관리단체로 지정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시 관계자는 "왕실 유산은 기본적으로 문화재청이 직접 관리하고, 나머지는 중앙정부가 일일이 다 관리할 수 없어 지자체에 맡기고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2008년 화재 '악몽'을 겪은 국보 1호 숭례문은 예외다. 문화재청이 전담 팀을 두고 직접 관리한다.
10년 전 화재 당시 문화재 관리의 적정성을 두고 국민적 관심이 불거지자 서울시와 자치구의 요청에 따라 중앙정부가 직접 맡게 된 것이다.
일각에서는 이처럼 중앙정부와 자치구로 관리가 이원화돼 있음에도 담당 주체를 정하는 특별한 기준이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시 관계자는 "현재는 26개 문화재마다 경비초소를 두고 CCTV로 실시간 감시하고 있다"며 "앞으로 2년 내에 서울시 관리 문화재 26개를 한 곳에서 통합 관리하는 시스템을 개발하고자 내부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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