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김영현 김동현 기자 = 국내 통상 전문가들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8일(현지시각) 수입산 철강 '관세 폭탄' 결정에 대해 "중간 선거를 앞두고 지지층에게 보여주기 위한 카드"라고 입을 모았다.
하지만 EU, 중국 등이 이에 보복에 나서고 미국도 맞대응하게 되면 자칫 세계 무역전쟁이 시작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또 멕시코, 캐나다와 달리 우리나라가 이번 조치에서 빠지지 못한 점은 매우 아쉬운 대목이라고 지적했다.
▲ 안덕근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 조치를 나프타 협상을 몰아붙이는 레버리지로 활용했다고 할 수 있다. 캐나다와 멕시코를 완전히 빼주는 것도 아니고 협상하는 것을 보면서 결정하겠다고 했고, 그 외 나머지 국가에 대해서는 면제 가능성만 언급했다. 어떻게 보면 수출 자율규제 같은 형식을 조장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우리 입장에서 보면 '우리도 한미FTA 협상을 하는데 왜 안 빼주느냐'고 할 수는 있지만, 현시점에서는 트럼프 행정부의 나프타 연계 전략 때문에 우리가 중요성에서 밀려있는 것 같다.
또 우리는 앞으로 구조적 문제 때문에 협상이 쉽지 않아 보인다. 딜레마가 생겼기 때문이다.
원래 이런 조치가 부과되면 정부가 바로 제소하고 이의제기를 하려고 했고 청와대도 당당하게 대응하라고 했다. 그런데 지금 미국은 상대국 대응에 따라서 빼줄 수도 있다고 한다. 소송으로 가서 문제를 풀어야 할지 미국에 잘 보여서 풀어야 할지 상당히 난처해졌다. 미국을 달랠 수준으로 뭐든 해야 한다는 거니까.
앞으로 산업계 이야기를 많이 들어야 할 것이다.
산업계는 소송을 해서 이기고 법적대응하는 것에 대해서는 시간이 오래 걸리고 그동안 피해 구제도 못 받으니 미국을 달래서 우리가 빠지는 형태를 선호할 소지가 높다. 정부 입장과 산업계 입장이 달라질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정부가 원칙적으로 대응해야 할지 산업계 이야기 들어줘야 하는지 문제가 될 수 있다. 그래도 정부는 산업계 목소리를 최대한 많이 들어보고 판단해야 할 것이다.
이번 조치는 정치적으로 상징적이 있는 조치로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 내 지지를 올리려는 시도로 보인다. 이번 조치 자체가 '러스트벨트'(쇠락한 공업지대)의 노동자 표를 얻는 데 중요한 카드로 시도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미국은 트럼프 대통령만큼 공약에 충실한 대통령이 없다고 자랑하는데 지금 시점에서는 설득과 설명으로 한국을 빼는 것은 정치적으로 어려운 상황이다.
한국은 물론 EU, 일본까지 다 포함해서 매우 큰 통상전쟁을 시작하겠다는 이야기다. 그런 부담까지 주면서 중간선거용으로 극약처방을 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 박태호 서울대 명예교수·광장국제통상연구원장(전 통상교섭본부장) = 멕시코와 캐나다가 관세 부과에서 빠진 것은 나프타 안에 그런 규정이 있기 때문으로 봐야 한다. 최혜국대우(MFN) 이상으로 글로벌하게 추가 관세를 매길 때는 파트너를 의무적으로 빼줘야 한다는 내용이다. 나프타는 재협상 중이지만 아직 이와 관련한 법적 효력이 있는 상태다. 한미FTA에도 비슷한 규정이 포함됐지만, 이는 의무가 아니라 '할 수 있다'는 식의 임의 조항으로 들어가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지층을 대상으로 공약을 지켰다는 노력을 보여주려 했다고 볼 수 있다. 이번 조치는 완전히 정치적 카드로 해석할 수 있으면 '전시 효과를 노린 최대 작전'이라고 봐야 한다.
다만 이번 조치가 앞으로 세계 무역전쟁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은 우려된다. EU 등 상대국은 WTO 제소 등을 거쳐 관세 보복을 할 수 있는데 이에 맞서 미국이 다시 자동차 등에 관세를 부과하면 보복이 보복을 부르는 걷잡을 수 없는 상황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이렇게 되면 세계적으로 무역 규모도 줄어들 수 있다.
우리로서는 단기적으로 어느 정도 미국이 만족할만한 결과를 만들어 내야 하는 게 과제다. FTA 이행과 관련한 미국의 불만 사항을 과감하게 해결하고, 삼성전자나 LG전자[066570] 등 대기업의 미국 투자와 일자리 창출, 미국산 셰일가스 구매 등을 잘 엮어서 패키지로 우리의 노력을 미국에 설득할 필요가 있다.
통상과 외교·정치 등을 묶어서 미국에 대응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있지만 분리하는 게 맞는다고 생각한다.
다만, 우리 정부 통상 조직이 박근혜 정부 때 사실상 와해한 뒤 이제 다시 만들어지고 있어서 취약한 면이 있다. 특히 통상교섭본부장은 지금 같은 차관급이 아닌 장관급으로 격상해야 한다. 그래야 외국과 협상 대응력이 높아지고 국내 각 부처 간 이견 조율에도 유리하다.
▲ 최병일 이화여대 국제대학원 교수 = 미국의 철강 관세 부과는 퇴행적인 조치다. 선거를 앞두고 국내 정치 기반을 위한 보여주기식 쇼다. 국가 안보와 연계했다면 동맹에 관세폭탄을 매길 이유가 없다. 중국을 압박한다고 하지만 중국은 이미 다양한 제재를 받고 있기 때문에 이번 조치와 관련해 큰 영향을 받지 않을 것 같다.
이와 관련해 우리 외교 역량이 역부족이었다고 본다. 우리도 어느 정도 면제 조치를 받았어야 했는데 멕시코와 캐나다만 잠정 유예 조치를 받았다. 막판까지 우리가 노력했다고는 하지만 부족했던 것 같다.
트럼프 대통령이 중간선거를 앞두고 더욱 통상 공세를 펼칠 것으로 보이는데 이런 트럼프의 행동을 부정하지만 말고 이제는 '뉴노멀'로 받아들여야 한다. 이에 맞춰 장기 비전을 세워야 하는데 지금 정부는 통상 분야 장기 전략이 부재하고 판세도 분석하지 못하고 있다.
장기적으로는 서비스 수출 비전화 같은 계획을 세울 필요가 있다. 정보와 아이디어가 한국으로 모이면 일자리와 복지 증진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단기적으로는 '상대가 우리의 핵심 이익을 건드리면 우리도 그만큼 맞대응한다'는 원칙에 따라 보복 관세를 때려야 한다. 미국이 민감해 하는 소고기 등에 관세를 매길 필요도 있다.
그렇게 하면 우리가 더 큰 보복을 당할 수 있다는 지적도 있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면 계속 흔들릴 수밖에 없다.
▲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 = 미국이 통상 압박을 본격화하겠다고 선언한 것이라고 봐야 한다. 이제 시작이며 앞으로 이런 분위기가 더욱 확산할 가능성이 있다.
미국과는 전방위에 걸친 경제 협력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WTO 제소도 단독으로 하지 말고 여러 나라와 함께해야 효과가 더 크다.
미국 내 여론을 우호적으로 만들기 위한 노력도 병행해야 한다. '관세 폭탄' 결정에 반대 목소리를 낸 게리 콘 백악관 국가경제보좌관마저 사임하면서 백악관에는 이제 보호무역 강경론자 위주로 남게 됐다.
이런 점을 충분히 고려해서 대응해나가야 하는 점이 중요하다.
▲ 제현정 한국무역협회 통상지원단 박사 = 미국이 철강 관세 조치를 확정하기는 했지만 동시에 협상의 여지도 드러냈다고 볼 수 있다. 일단 각국 정부에 미국이 만족할만한 안을 갖고 오라고 했기 때문이다.
일률적으로 25%의 관세를 매기겠다고 한 대목에서 한발 뒤로 물러났다고 평가하기에는 조심스럽지만, 트럼프 대통령으로서는 매우 전략적 선택을 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각국의 엄청난 반대 속에서 일률 관세를 결정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 결정을 통해 철강 분야 목소리도 일정 부분 커버할 수 있게 됐다. 각국이 갖고 올 해결 방책을 토대로 국내 철강업계를 회유할 수도 있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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