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돌 A가 성폭행"…이니셜 '미투' 확산에 가요계 긴장

입력 2018-03-09 16:54   수정 2018-03-09 17:25

"아이돌 A가 성폭행"…이니셜 '미투' 확산에 가요계 긴장
가해자로 추측되자 반박…"아이돌 성추문, 해외 K팝 시장에도 영향"
기획사들 "소속 가수들 사생활 점검…미투 관련 교육도"



(서울=연합뉴스) 이은정 기자 = 전방위적으로 '미투'(metoo·나도 당했다)가 확산한 가운데 아이돌 가수에 대한 성폭력 고발이 잇따르자 가요계도 긴장하기 시작했다.
가요계의 중심축을 이루는 아이돌 가수는 10~20대 지지가 높아 성추문 파장이 크고, 나아가 해외 K팝 시장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진위를 떠나 피해자들의 고발이 나왔지만 아직 아이돌 중 미투 가해자로 공개된 가수는 없다.
대신 폭로가 익명으로 나오면서 불똥이 튄 가수들이 나왔다. 인터넷에 가해자 찾기가 과열되면서 몇몇 아이돌 가수들로 추측되자 기획사들이 적극 반박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이름이 떠도는 것만으로도 치명타라고 여기는 기획사들은 미투 확산을 예의주시하면서 소속 가수들의 사생활 점검에 나서기 시작했다.



◇ 산들·이창민 "미투 아이돌 아냐"…기획사들 "사생활 관리·교육"
9일 한 매체는 한 아이돌 가수로부터 6년 전 성폭행을 당했다는 여성의 주장을 보도했다. 누리꾼들은 이 여성과 동향 출신인 가수가 2010년대 초 데뷔해 가창력을 인정받은 아이돌 그룹 보컬이란 단서가 나오자 산들 등으로 추측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산들의 소속사 WM엔터테인먼트는 "우리 소속 아티스트가 전혀 아니다. 근거 없는 허위사실 유포에 강력하게 대응하겠다"며 "우리처럼 전혀 연관 없는 피해자가 발생하는 일이 다시는 없기를 바란다"고 진화했다.
앞서 2AM의 이창민도 미투 가해자로 오인되자 "연관이 없다"며 적극 부인했다. 피해 여성이 연인이던 '발라드 그룹 리드 보컬'이 동의 없이 몰래카메라를 촬영했다고 주장하자 이창민 등의 이름이 인터넷에 오르내리며 악성 댓글이 이어졌다.
또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초등학교 6학년에서 중학교 1학년으로 넘어가던 겨울날 당시 중학생이던 가수가 자신을 화장실에서 성추행하고 나체 사진을 보내달라는 협박을 했다는 여성의 폭로 글이 올라왔다. 삭제된 이 글에는 운동선수와 열애 후 결별했다는 대목이 있어 특정 가수가 지목되기도 했다.
하재근 문화평론가는 "아이돌 시장이 워낙 예민해서 이니셜 보도로 인해 여러 사람이 의심을 받는 피해가 생겨났다"며 "또 아이돌에 대한 팬들의 낭만적인 기대가 있는데, 자칫 이런 보도가 의혹에 그친다고 해도 K팝에 대한 실망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하 평론가는 "스타와 팬이 종속적인 입장일 때 부적절한 일이 생겨날 수 있는데 미투로 인해 모두 경각심을 갖고 조심하게 되는 영향도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스타 파워도 일종의 권력이지만 현재까지 아이돌 가수를 향한 미투는 정계, 법조계, 영화계, 문화계에서 폭로된 우월적인 지위를 이용한 권력형 성폭력으로 치닫지는 않았다. 피해자들은 가해자로 지목한 가수와 연인·동향의 지인이었거나, 가수가 데뷔하기 전 학창 시절에 벌어진 일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다 보니 기획사들은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소속 가수의 데뷔 전 상황까지 점검하면서 사생활 관리에 한층 주의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한 유명 기획사 이사는 "일찍이 연습생 생활을 했거나 가수로 데뷔한 친구들은 소속사가 나름 교육하고 관리했지만, 지금은 이전 생활까지 점검해봐야 하는 상황"이라며 "성교육 등 관련 교육을 메뉴얼화하고자 여러 기관에 자문을 구하고 있다. 가수들 스스로도 일상 생활에서 조심하는 분위기가 형성됐다"고 설명했다.
신인 그룹 기획사의 홍보실장은 "최근 가수들에게 미투 운동이 벌어진 계기부터 요즘 터지는 사례를 짚어가면서 교육을 실시했다"며 "특히 연예인 신분을 이용해 팬들과 불미스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주의를 주고, 학교생활 등 사생활 관리에 대한 조언도 했다"고 말했다.



◇ 미투 확산에 촉각…중견 작사가도 "제작자에 성폭행 당해"
아이돌 가수뿐 아니라 앞서 가요계에서는 인디 래퍼 던말릭, 드러머 남궁연, 재즈 1세대 뮤지션 류복성 등을 고발하는 미투가 있었다. 다른 분야보다는 비교적 미투 폭로가 적은 상황이지만 점차 확산하는 모양새다.
지난 8일 SBS에서는 한 중견 작사가가 트로트 가수 출신 제작자로부터 성폭력을 당했다는 주장이 나왔다. 피해 작사가는 몇 차례의 성추행 끝에 2014년 성폭행을 당했다면서 내주께 고소장을 접수할 것이라고 밝혔다.
지목된 제작자는 입장을 밝히지 않았으며 수차례 전화 연락을 시도했지만 받지 않다가 전화기를 껐다.
가요계에서는 미투 확산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모습이다.
30대의 한 남자 가수는 "가수들끼리 모이면 자연스레 미투 운동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며 "언론에 보도는 안 됐지만 '누가 그랬다더라', '이런 일이 있었다더라'란 얘기도 나온다. 스스로도 예전에 사귀었던 여자 친구와의 기억까지 떠올려 보게 되고, 사석에서 누가 호감을 보여도 거리를 두게 된다"고 말했다.
또 다른 기획사의 한 대표는 "가요계에서도 스타와 팬, 제작자와 가수·연습생, 공연 감독과 연주자·스태프 등 일종의 권력 구조가 있어 여느 분야처럼 피해자의 고발이 더 나올 수 있다"면서 "사회의 전반적인 목소리지만 진통을 겪더라도 그릇된 성 인식을 바로잡는 자정의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mimi@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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