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시론] 역사적인 북미 정상회담, 한반도 '평화의 길' 열기를

입력 2018-03-09 18:26   수정 2018-03-09 19:25

[연합시론] 역사적인 북미 정상회담, 한반도 '평화의 길' 열기를

(서울=연합뉴스) 북한과 미국이 5월 안에 정상회담을 하기로 했다. 대북 특별사절대표단의 방북 결과를 설명하기 위해 미국을 방문한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은 8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만난 뒤 기자회견을 열어 이렇게 발표했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비핵화를 약속하면서, 트럼프 대통령을 가능한 한 빨리 만나고 싶다는 뜻을 표명했다고 우리 특사단이 전달하자, 트럼프 대통령이 항구적 비핵화를 위해 김 위원장을 직접 만나겠다고 했다는 것이다. 정 실장이 방미 전 '미국에 전달할 북한 입장을 추가로 갖고 있다'고 한 것이 미북 정상회담 카드였던 셈이다. 북한과 미국의 역사적인 첫 정상회담이 이뤄질 시간과 장소는 추후 협의를 통해 확정될 예정이다. 기술적으로 '교전 상태'인 두 나라 정상이 만나면 북한의 비핵화를 통해 한반도 평화를 정착시키는 획기적인 기회가 될 수 있다. 이미 추진 중인 문재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의 4월 말 남북 정상회담에 이어 북미 정상회담이 열리는 것이어서 특히 긍정적인 결과를 기대할 만하다. 평창동계올림픽으로 시작된 남북 화해 모멘텀이 분단 이후 최대의 한반도 평화 증진 기회로 이어지는 듯한 분위기다.

정 실장은 김 위원장의 친서 없이 구두로 북한 입장을 전달했다. 어떤 핵 또는 미사일 실험도 자제할 것이라는 김 위원장의 약속도 포함됐다. 한미 양국의 연합군사훈련이 지속해야 한다는 점을 김 위원장이 이해하고 있다는 것도 설명했다고 한다. 특사단의 방북 결과 발표를 통해 알려진 내용이기는 하나 아무런 조건이 붙지 않았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미국 측 반응도 기대 이상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트위터에서 "김정은이 한국 특사들과 동결만이 아니라 비핵화를 논의했다. 큰 진전이 이뤄지고 있다"고 평가했다. 허버트 맥매스터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보좌관이 오는 12일 유엔안전보장이사회에서 북한 관련 브리핑을 하는 것도 고무적이다. 맥매스터 보좌관이 정 실장한테서 전달받은 북측 제안에 큰 의미를 두고 있음을 시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국은 기존의 제재·압박을 비핵화가 될 때까지 계속할 것이라는 점을 못 박았다. 북한의 제안을 긍정적으로 평가하지만, 완전히 신뢰하지는 않는다는 뜻일 것이다.

지난해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이 고조되면서 트럼프 대통령과 김 위원장은 상대방을 '리틀 로켓맨', '노망난 늙은이' 등으로 부르며 '말의 전쟁'을 벌였다. 그런 두 사람이 대화 테이블에 마주앉는다는 것 자체가 엄청난 급반전이다. 처음엔 다소 껄끄러울 수 있지만 '협상의 달인'으로 알려진 트럼프 대통령이고, 남북 정상회담 합의나 북미회담 제의 등에서 '통 큰' 면모를 보여준 김 위원장인 만큼 기대 이상의 합의 가능성도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백악관 웨스트윙에서 정 실장과의 만남을 즉흥적으로 결정했고 곧바로 정상회담 제안을 수락했다고 한다. 그러나 낙관만 하기는 이르다. 북미 정상회담 얘기가 처음 나온 것도 아니다. 2000년 10월 북한 조명록 국방위 제1부위원장과 매들린 올브라이트 국무장관이 워싱턴과 평양을 교차 방문하면서 성사 직전까지 간 적이 있다. 당시 빌 클린턴 대통령은 8년의 연임 임기를 마무리하면서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정상회담을 하고 탄도미사일협정을 타결지으려 했다. 하지만 후임인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당선이 확정된 상황에서 차기 행정부로 넘기라는 여론이 일어 결국 불발됐다. 그때 북미가 탄도미사일협정을 체결했으면 오늘날 한반도 안보지형은 완전히 달라졌을지 모른다. 현재 상황도 비슷하다. 지금부터 후속 협의를 면밀히 진행해 북미 정상회담을 꼭 성사시켜야 한다.

최근 북한의 태도 변화가 파격적인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그 이유를 놓고는 분석이 엇갈린다. 우선 미국을 중심으로 한 국제사회의 제재와 압박이 실질적인 효과를 내고 있을 수 있다. 일각에선 고조되는 미국의 군사옵션 가능성이 북한을 압박했을 거라는 분석이 나온다. 아니면 보수 진영의 주장처럼 완성단계에 접어든 핵미사일 개발을 마저 끝낼 시간을 벌려는 것일 수 있다. 북한의 진정한 의도가 무엇이든, 정 실장이 백악관 발표에서 밝혔듯이 구체적인 성과를 얻을 때까진 비핵화 원칙을 확고히 지키면서 긴장을 늦춰선 안 된다. 북미 정상회담까지 가는 과정이 생각만큼 순조롭지 않을 수도 있다. 정상회담의 구체적인 시기, 장소, 의제 등을 조율하는 과정에서도 팽팽한 줄다리기가 이어질 것이다. 그래서 북미 정상회담에 앞서 열리는 남북 정상회담의 비중이 더 커졌다. 문 대통령은 북미 정상회담을 계기로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가 본격적 궤도에 들어설 것"이라며 "훗날 한반도 평화를 일궈낸 역사적 이정표로 기록될 것"이라고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당초 북미 정상회담을 4월로 제안했다가 우리측의 역제안을 받아들여 '5월 내'로 바꿨다고 한다. 남북 정상회담의 정지 작업을 기대한다는 뜻으로 볼 수 있다. 임종석 청와대 비서실장이 위원장을 맡은 '정상회담 준비위원회'의 책임이 막중하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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