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무성, 문서조작 인정으로 사학스캔들 의혹 '비등'…野, '총리 사퇴' 요구
남북·북미 정상회담 추진과정 '일본 왕따'…압력 일변도 대북정책 '비판론'
(도쿄=연합뉴스) 김병규 특파원 = 높은 지지율로 올가을 자민당 총재선거에서 장기집권을 노리던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사학스캔들이 확산되고 북미정상회담과 관련한 '재팬 패싱(일본 배제)' 논란이 일면서 곤경에 몰렸다.
국내적으로는 재무성이 사학스캔들과 관련해 국회에 제출한 문서를 수정했다는 언론의 문제제기를 인정하며 총리에 대한 사퇴 요구까지 나오고 있으며, 대외적으로는 남북과 북미의 정상 회담이 추진되는 '악재'가 나오면서 일본이 대북 대응 논의에서 배제되고 있다는 비판이 거세다.
11일 일본 언론들에 따르면 재무성은 모리토모(森友)학원의 국유지 헐값매각 의혹과 관련해 국회에 제출한 내부 결제 문서가 조작된 것이라는 의혹에 대해 사실이라고 인정하기로 하기로 했다. 재무성은 12일 국회에 이런 내용의 내부 조사 결과를 보고할 계획이다.
아사히신문 등 일본 언론은 지난 2일 재무성이 국회에 국유지 매각과 관련한 내부 결제 문서를 제출할 때 원본에서 "특수성" 등 특혜임을 뜻하는 문구를 여러 곳에서 삭제했다고 보도한 바 있는데, 계속되는 의혹 추궁으로 궁지에 몰린 재무성이 보도 내용이 사실이 맞다고 인정한 것이다.
이런 사실이 알려지자 야권은 아소 다로(麻生太郞) 부총리 겸 재무상뿐 아니라 아베 총리의 퇴진까지 언급하며 공세에 나서고 있다.
민진당의 오쓰카 고헤이(大塚耕平) 대표는 전날 기자들에게 "삭제 혹은 조작된 부분의 내용에 따라 아베 총리의 퇴진에도 영향을 미칠 사안"이라고 말했으며 다마키 유이치로(玉木雄一郞) 희망의 당 대표도 트위터에 "아소 부총리는 물론, 총리 자신도 책임을 져야 한다"고 비판했다.
비판의 목소리는 공동여당인 공명당이나 여당 자민당 내에서도 나왔다.
야마구치 나쓰오(山口那津男) 공명당 대표 역시 같은 날 "아소 부총리가 정치적 책임을 져야 한다"고 비판했고, 포스트 아베 주자인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자민당 정조회장도 "의문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설명 책임을 다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가케(加計)학원 스캔들과 함께 아베 총리를 괴롭히는 2대 사학스캔들 중 하나인 모리토모(森友)학원 스캔들은 사학재단 모리토모학원이 국유지를 헐값으로 사들이는 과정에서 아베 총리가 직접 혹은 손타쿠(忖度·스스로 알아서 윗 사람이 원하는 대로 행동함)를 통해 간접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의혹이다.
모리토모학원은 초등학교 부지로 쓸 국유지를 감정가인 9억3천400만엔(약 94억5천만원)보다 8억엔이나 싼 1억3천400만엔(약 13억6천만원)에 사들였다.
이 스캔들에는 아베 총리의 부인 아키에(昭惠)여사도 깊숙이 개입돼 있다는 의혹이 있다. 스캔들이 불거지기 전 아베 총리의 부인 아키에 여사는 해당 초등학교의 명예교장을 맡았고, 가고이케 전 이사장은 아키에 여사로부터 아베 총리 명의로 100만엔(약 1천12만원)의 기부금을 받았다며 친분을 과시했다.
재무성의 문서조작 인정이 아베 총리의 퇴진에까지 직접적인 타격을 줄지는 미지수이지만, 적어도 올 9월 열리는 자민당 총재 선거에는 심각한 피해를 줄 것으로 보인다.
아베 총리는 자민당 총재 3연임을 달성해 장기 집권을 실현한 뒤 헌법을 개정해 일본을 전쟁가능한 국가로 변신시키려는 야욕을 가지고 있다.
아베 총리는 작년 모리토모학원 스캔들로 퇴진 위기에 처했을 때는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을 과장해 알리며 지지층을 결집하는 '북풍(北風)몰이'를 통해 위기를 극복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북미 정상회담이 가시화되는 등 대북 대화 분위기가 퍼지면서 북풍의 힘을 빌리기도 어렵게 됐다.
북한과의 대화 분위기는 아베 정권에 또다른 위기로 작용하고 있다.
그동안 대북 압력 노선을 국제사회에 줄기차게 호소해온 일본 정부의 생각과 정반대 쪽으로 한국과 미국이 북한과 정상회담을 열기로 하면서 일본이 논의 과정에서 배제됐다는 비판이 거세다.
한 전직 방위상은 지난 10일 아사히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완전히 일본의 머리 위에서 (일본을 배제한 채) 정해졌다"고 말했고 야부나카 미도시(藪中三十二) 리쓰메이칸(立命館)대 특별초빙교수는 "북미정상회담의 급격한 전개에 일본이 방관자로서 배제된 감이 있다"고 지적했다.
압력 일변도의 대북 정책에 대한 비판론도 거세다.
다나카 히토시(田中均) 일본종합연구소국제전략연구소 이사장은 마이니치신문에 "(북한에 대한) 압력만 강조해서는 한국과 중국이 허심탄회하게 일본에 협력하지 않을 것"이라며 정부에 대북정책을 수정할 것을 주문했다.
오코노기 마사오(72·小此木政夫) 게이오(慶應)대 명예교수는 최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일본 정부가 북한의 자세를 '미소외교'로 오해하며 북미 정상회담이 추진되는 상황을 전혀 예상을 못했다. 지금부터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큰일이다"라고 비판했다.
이런 목소리에도 불구하고 일본 정부는 대화 분위기를 깎아내리며 비판을 회피하는 데 열을 올리고 있다.
오노데라 이쓰노리(小野寺五典) 방위상은 전날 도쿄에서 한 강연에서 "북한은 지금 이 순간에도 핵·미사일 개발을 중단하지 않고 있다. 북한은 그동안 대화를 시간벌기의 구실로 활용해왔다"고 말했다.
bkkim@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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