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핵화 검증이 최대 난제, 모라토리엄이 현실적 방안"
(서울=연합뉴스) 유영준 기자 =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항구적인 비핵화를 목표로 북한 지도자 김정은과 파격적인 정상회담을 추진하고 있는 가운데 윌리엄 페리 전 국방장관이 "트럼프 대통령은 기대치를 낮추는 게 좋을 것"이라고 다소 유보적인 전망을 나타냈다.
빌 클린턴 민주당 정부에서 국방장관을 지낸 페리 전 장관은 1994년 북핵 개발 저지를 위해 북핵시설에 대한 이른바 외과수술식 타격이라는 강경책을 고안했고 1999년에는 미정부의 북핵조정관으로 이른바 '페리 구상(이니셔티브)'을 성안하기도 했다.
이에 따라 매들린 올브라이트 국무장관이 평양을 방문해 김정일을 만났으며 북한군 고위 간부(조명록)가 백악관을 방문하기도 했다. 그리고 빌 클린턴 대통령이 평양을 방문해 북한과 관계 정상화를 타결하는 방안까지 거론됐다 결국에는 성사되지 못했다.
이처럼 북핵 해결 일보 전까지 갔던 경험을 가진 페리 전 장관은 시사지 애틀랜틱과 인터뷰(9일 자)를 통해 자신의 대북 협상 경험을 바탕으로 협상 전망에 신중론을 나타냈다.
페리 전 장관은 북한의 현재 핵 억지력이 상당 수준에 올라있다는 자신감이 김정은을 협상 테이블로 이끈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이제는 외부 침략을 충분히 저지하고 국제적으로 (핵보유국으로서) 인정을 받을만한 수준에 도달한 것으로 자체 평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페리 전 장관은 북한이 비록 트럼프 행정부로부터 전방위 제재에 시달리고 있지만 (자신이 관여했던 1990년대보다) 훨씬 강화된 입장에서 협상에 들어서고 있다면서 자신은 북한이 모든 핵무기를 포기하는 협상에 나설 것으로는 생각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또 "설사 그렇게 하더라도 이를 검증할 방법이 없다"고 덧붙였다.
페리 전 장관은 그동안 북한과 여러 차례에 걸쳐 핵 합의가 있었지만 결국 핵 개발을 저지하지 못한 것은 북한이 모든 핵시설 개방과 핵 개발 중지를 검증할 외부 사찰단의 활동을 거부한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1999년에는 (북한의) 비핵화를 실현할 기회가 있었으나 지금은 이것이 가능할 것으로 믿지 않는다"면서 "지난 25년에 걸쳐 우리는 북한이 정말 믿을 수 없는 상대라는 점을 깨달았으며 따라서 나는 검증을 가장 중시한다"고 강조했다.
"만약 검증할 수 없다면 합의에 너무 높은 평가를 부여할 수 없다"고 그는 덧붙였다.
페리 전 장관은 무엇보다 북한이 현재 몇 개의 핵무기를 가졌는지 정확히 파악할 수 없으므로 북한 측이 만약 15~20개의 핵무기가 전부라고 내놓을 경우 이것이 전부인지 아니면 몇 개가 아직 남아있는지를 확신할 수가 없다고 지적했다.
또 핵물질을 생산하는 원심분리기의 경우 은폐가 용이하기 때문에 영변 핵시설을 공개한다 해도 다른 곳에서 고농축 우라늄을 생산할 수가 있다고 덧붙였다.
페리 전 장관은 그러나 탐지가 비교적 용이한 핵실험이나 미사일 발사 같은 것의 중단을 끌어낼 경우 미 본토를 타격할 수 있는 핵탄두 장착 장거리 탄도미사일(ICBM)의 최종 마무리 작업을 중단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가치가 있다고 지적했다.
페리 전 장관은 따라서 핵실험이나 미사일 발사 유예(모라토리엄)를 조건으로 북한에 대해 남북한 경제협력이나 평화협정 체결, 그리고 점진적인 미-북 관계 정상화 같은 인센티브를 제공할 것을 제의했다.
그는 북한을 외교적으로 인정하는 것과 전쟁상태 종결은 미국으로서 크게 부담 없는 조치이며 특히 만약 북한이 막판에 협상을 깰 경우 번복이 가능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페리 전 장관은 자신의 구상이 비록 비핵화와는 거리가 있지만 '가능하고 바람직하며 검증 가능한' 현실적 방안임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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