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이매진] 진안고원 운장산 고로쇠축제

입력 2018-04-08 08:01  

[연합이매진] 진안고원 운장산 고로쇠축제
신비의 생명수 마시고 청춘의 원기 되찾다

(진안=연합뉴스) 임형두 기자 = 세상 만물이 긴 겨울잠에서 깨어나 꿈틀거리기 시작한다는 경칩(驚蟄·양력 3월 6일). 해마다 이 절기 무렵이 되면 봄의 전령사인 고로쇠나무가 신비의 생명수를 선사하며 새봄의 도래를 알린다. 고로쇠를 앞세운 축제들이 전국 곳곳의 산언덕과 계곡에서 동시다발로 펼쳐짐은 당연지사다. 그중 옥수청산(玉水靑山)의 고장 전북 진안에서 열린 운장산 고로쇠축제를 찾아 그 원기와 활력 그리고 흥을 느껴봤다.



"덩더 덩더쿵! 덩더 덩더쿵!"
초봄의 은빛 햇살이 하얀 구름 사이로 눈부시게 쏟아지는 전북 진안군 주천면 운일암반일암의 삼거광장. 상쇠를 앞세운 12명의 풍물놀이패가 꽹과리, 북, 장구, 징을 두드리며 산골짜기를 쩌렁쩌렁 울려댔다. 이들의 신명 난 열림 길놀이에 축제장은 삽시간에 흥으로 넘쳐나고 모여든 주민과 방문객들도 "얼쑤!" "잘한다!"를 외치며 너나없이 어깨춤을 덩실덩실 췄다.
산천도 신바람이 절로 났을까. 광장 앞의 운일암반일암 주자천이 더욱 생동감 있게 흐르고, 저 멀리 능선 위로 살짝 고개를 내민 명도봉(해발 863m)도 흰 눈을 고깔처럼 머리에 인 채 슬겅슬겅 춤추는 듯했다.
이어지는 고로쇠약수 증산기원제. 전통 제복을 경건하게 차려입은 제관들은 운장산 산신령에게 감사와 소망의 기원문을 정성스레 바쳐 올렸다.
"천지신명이시여! 높은 곳에 오르기를 마다하지 않는 저희가 모여 운장산 아래 엎드린 작은 정성 거두옵고, 사시사철 날거나 들거나 오르거나 내리거나 저희 얼과 몸을 봄날의 햇살처럼 감싸 보살펴주옵소서! 천지신명이시여! 청정 진안의 최고 명산 운장산에 자생하는 고로쇠나무가 왕성하게 생장하여 최고 품질의 고로쇠 약수를 채취함으로써 농가가 모두 잘 살 수 있게 하여주시옵소서!"



◇ "고로쇠 먹고 이팔청춘 가즈아(가자)!"

대표적 고로쇠나무 자생지인 전북 진안에서는 해마다 3월 초 무렵이면 운장산 고로쇠축제가 열려 생명의 원기를 세상 가득 불어넣는다. 2018년의 숫자에 맞춰 '진안고원 고로쇠 먹고 28(이팔)청춘 가자!'를 주제로 내건 제14회 진안고원 운장산 고로쇠축제는 3월 10일과 11일 운일암반일암 삼거광장에서 흥겹고 풍성하게 진행됐다.
풍물놀이와 고로쇠 증산기원제로 시작한 이번 축제는 고로쇠 채취 체험, 고로쇠 수액·막걸리 빨리 마시기 대회, 소망기원 고로쇠 풍선 띄우기, 고로쇠 가수왕 선발대회 등 프로그램과 퍼포먼스가 다채롭게 이어졌다. 이와 함께 송어잡기 체험, 진안고원 하늘길 걷기 행사가 마련돼 방문객들에게 즐거움을 한껏 안겼다.
첫날 오후의 개막식은 특이한 차림과 진행으로 더욱 눈길을 끌었다. 관람객들이 광장을 가득 메운 가운데 주최 측 인사들은 고교 시절의 학생복과 모자 차림으로 무대에 올라 축제 주제어인 '청춘'을 추억과 함께 실감케 했다. 검은색 교복과 교모에 학생회장 완장을 어깨에 찬 남귀현 축제위원장이 "봄의 기운을 가득 담은 진안고원 고로쇠 수액을 드시고 올 한 해 건강하고 행복하시길 기원한다"는 환영사에 이어 "진안고로쇠 먹고 28청춘!"을 건배사로 외치자 방문객과 내외 귀빈들은 "가자!"라고 힘차게 화답해 축제장은 일순간 웃음과 활기로 넘쳐났다.
청춘과 추억을 내세운 코너는 축제장 곳곳에서 보고 즐길 수 있었다. 청춘다방, 추억의 놀이, 떡메치기, 추억의 도시락, 추억의 쫀드기 굽기, 청춘불판 등이 그것. 7080 음악이 울리는 가운데 모두가 함께 어울려 흔들흔들 춤추는 '추억의 DJ와 춤을' 이벤트는 감동의 한마당이었다. 교련복과 학생모자의 규율반장 차림으로 축제장을 오가며 개막식 사회까지 맡은 박명서 축제위원회 사무국장은 "교복을 입고 교모를 쓰니 1979년 졸업했던 고교 시절로 돌아간 느낌"이라며 "방문객들께서도 축제에서 젊음을 되찾아 가실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 예부터 건강음료로 사랑받아온 고로쇠

신비의 생명수로 불리는 고로쇠의 정체는 무엇일까? 단풍나무과에 속하는 낙엽활엽교목인 고로쇠나무는 초봄이면 인간의 건강에 좋은 수액을 선사한다. 이 수액은 '풍당'(楓糖)이란 별칭처럼 달콤한 데다 마그네슘, 칼슘, 자당 등 미네랄 성분이 다량으로 함유돼 위장병과 신경통, 관절염 등의 증상에 좋은 것으로 알려졌다. 뼈에 이롭다고 해서 '골리수(骨利樹)' 또는 '골리목'(骨利木)이라고도 하는 고로쇠나무는 예부터 골다공증을 예방하고 숙취를 해소하는 데 효과가 있어 대표적 건강음료로 사랑받아왔다.
고로쇠나무는 전국 어디에서나 쉽게 만날 수 있다. 표고 100~1천800m의 산야에서 약 20m 높이까지 쑥쑥 자라난다. 잎은 물갈퀴가 달린 개구리의 발처럼 갈라져 있는데 5월이 되면 연한 황록색의 꽃을 피운다. 열매는 프로펠러를 닮은 날개가 서로 마주 보며 달리는 형상으로 잎과 열매 모양으로 볼 때 영락없는 단풍나무과 식물임을 알 수 있다. 산세 깊고 계곡물 맑은 진안의 고로쇠나무는 해발 500m가 넘는 운장산과 덕태산 자락의 고원지대에서 주로 자생한다.
고로쇠나무의 최고 가치는 역시 이른 봄에 뿜어내는 단맛 나는 수액이다. 보통 1월 말에서 3월 말까지가 채취 절정기인데 땅에서 1m 높이의 부분에 드릴로 1~3m 깊이의 구멍을 뚫은 뒤 플라스틱 파이프를 박아 수액을 뽑아낸다. 가장 많은 수액이 나올 때는 24절기 중 세 번째인 경칩 무렵. 2월 말에서 3월 중순까지가 그 절정기다. 이 시기에 고로쇠축제가 다투듯 열리는 것은 이와 관련이 있다.
올해의 경우 지난겨울 기상 여건이 좋지 않아 예년보다 고로쇠 채취 시기가 늦어지고 채취량 역시 많이 줄었다며 농가들은 아쉬워했다. 전에 없는 한파가 몰아친 데다 겨울 가뭄까지 겹쳐 곳에 따라서는 수액 생산량이 절반가량으로 줄었다는 것. 그런 만큼 올해 고로쇠는 한층 귀한 대접을 받고 있다.
운장산 고로쇠 작목반의 권영환(53) 씨는 "고로쇠 수액의 맛과 효능이 축제 무렵에 채취한 게 가장 높다"며 "우리 지역도 예년보다 채취 시기가 늦어지고 수확량이 줄었지만 가격은 종전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축제장에서 고로쇠 수액은 여섯 병 들이 1.5ℓ짜리 한 상자에 2만5천원에 판매됐다.
축제 방문객들은 대체로 만족스럽다는 반응을 보였다. 대구에서 온 남윤수(53)·오선주(47) 부부는 "고로쇠축제를 몇 군데 다녀봤지만 좋은 풍광 덕분인지 이곳 프로그램이 한결 다채롭고 알차게 느껴지는 것 같다"면서 "고로쇠 약수 또한 시원하면서 단맛이 더해 만족스럽다"고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 고로쇠 채취 체험 등 프로그램 다채

"달콤해요! 그리고 신기해요!"
축제장에서 북쪽으로 1km가량 떨어져 있는 고로쇠 수액 채취 체험장. 해발 845m의 명덕봉 자락에 있는 이곳에서는 축제 기간에 하루 한 차례씩 수액 채취체험이 진행됐다. 참가자들은 너나없이 달고 시원한 고로쇠 맛에 흠뻑 취해 있었다.
안내를 맡은 고로쇠 작목반 회원이 고로쇠나무에 드릴을 들이대고 구멍을 뚫자 투명하게 맑은 수액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이에 곧바로 호스를 연결해 하얀 집수통에 수액을 받아냈다. 채취 모습을 신기한 듯 바라보던 김한걸(9·세종시) 군은 맛이 어떠냐는 참가자들의 물음에 "달콤해요!" "신기해요!"를 연발했다. 엄마 김부민(38) 씨는 "채취체험은 물론 고로쇠 축제 참가 자체가 처음인데 오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며 "아이가 좋아하니 우리 가족의 건강이 절로 좋아지는 것 같다"고 미소 지었다.
안내를 맡은 작목반의 김경남(56) 씨는 "추위와 가뭄 때문에 수확량이 약간 준 데다 수확 시기도 예년보다 10여 일 늦어졌다"면서 "고로쇠 물맛은 양지냐 음지냐에 따라서도 미묘한 차이가 난다"고 들려줬다. 일교차가 큰 청정지역 진안에서는 그만큼 양질의 수액이 생산되는데 덕분에 매년 70여 농가가 6억원의 농외소득을 얻고 있다고 한다.
눈길을 끈 또 다른 프로그램은 삼거광장에서 하루 세 차례씩 진행된 맨손 송어잡기 체험이었다. 사각형의 에어풀장에 송어를 풀어놓고 참가자들에게 1인당 두 마리까지 잡아가게 한 것. 커다란 에어풀을 에워싼 채 기대감 속에 대기 중이던 참가자들은 "출발~" 하는 진행자의 외침과 동시에 물속에 풍덩 풍덩 뛰어들어 정신없이 물고기를 건져 올렸다.
리본 달린 송어를 잡아 1.5ℓ들이 고로쇠 수액까지 덤으로 얻어낸 김민서(14·전주) 군은 "송어 잡기가 처음인데 정말 재밌어요. 물고기를 만지는 느낌도 참 좋고요"라며 함박웃음을 지었다.
고로쇠를 넣은 별식도 방문객의 사랑을 듬뿍 받았다. 고로쇠 손두부, 고로쇠 인절미, 고로쇠 막걸리 등이 인기를 끌었다. 경기도 평택에서 아내와 함께 온 김영철(56) 씨는 "고로쇠 수액이 들어가서인지 손두부가 한결 맛깔스럽게 느껴진다"고 말했다. 이곳 주천면 주민인 안재순(70) 할머니는 "인절미도 고로쇠 물이 들어갔으니 다른 인절미와는 확실히 다르지 뭐. 떡메로 쳐서 만들어 더 그럴 거야"라며 흡족해했다.

◇ 전국 곳곳에서 줄 이은 고로쇠 축제

고로쇠의 계절을 맞아 진안군 외에 전국 곳곳에서 관련 축제가 3월 한 달 내내 줄을 이었다. 전북 남원의 지리산뱀사골 고로쇠약수제(3일), 경남 양산의 원동 배내골 고로쇠축제(3~4일), 경북 포항의 죽장 고로쇠축제(10일), 전북 무주 구천동의 덕유산 고로쇠 축제(17~18일), 경기도 양평의 단월 고로쇠축제(17~18일) 등이 동시다발로 열렸다. 이에 앞서 2월 27일에는 전남 광양의 옥룡면 동곡리 약수제단에서 제38회 백운산 고로쇠약수제가 진행됐다.
올해로 30회째를 맞은 뱀사골 고로쇠축제는 길놀이, 약수제례, 난타공연, 고로쇠 빨리 먹기, 고로쇠 먹고 고함 지르기, 고로쇠 인절미 만들기 등 다양한 이벤트가 뱀사골 일대에서 하루 동안 집중적으로 펼쳐졌다. 사시사철 맑은 물이 흐르는 양산시 원동면의 배내골에서는 제13회 고로쇠축제가 고로쇠 수액 시음회, 고로쇠 수액 빨리 마시기 등의 프로그램으로 이틀간 이어졌다.
포항의 죽장에서는 고로쇠 물 무료 시음과 사과 길게 깎기, 전통 떡메치기, 삶은 감자 나눠 먹기 등 체험행사가 풍물놀이, 지게 상여놀이, 죽장 청소년 오케스트라 공연 등과 함께 펼쳐져 주민과 관광객을 즐겁게 했다.
물패 길놀이, 산신제로 시작한 덕유산 고로쇠축제는 고로쇠 축배 들기, 인절미 떡메치기, 제기차기, 윷놀이 등 전통놀이를 즐길 수 있는 마당이었다. 올해로 19회째를 맞은 단월 고로쇠축제는 단월 레포츠공원과 괘일산 일대에서 산신제, 세상에서 제일 긴 고로쇠 김밥말이, 마당놀이극 '고로쇠 먹은 심봉사' 공연 등으로 진행됐다.
운장산 고로쇠축제위원회는 이번 축제에 1만3천여 명의 관광객이 찾아 진안고로쇠 인지도 향상과 지역경제 활성화에 기여했다고 평가했다. 남귀현 위원장은 "올해는 천우신조로 날씨까지 화창하게 도와줘 관광객들이 한결 다양해진 볼거리와 즐길거리를 만끽할 수 있었다"며 "내년엔 더 새롭고 풍성한 프로그램으로 알차게 꾸미겠다"고 말했다.



※ 연합뉴스가 발행하는 월간 '연합이매진' 2018년 4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ido@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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