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들, 영 제재 수준 예상보다 미흡 평가
(서울=연합뉴스) 유영준 기자 =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가 자국 내 러시아 출신 스파이 독살 시도 사건의 책임을 물어 런던 주재 러시아 대사관의 외교관 23명에 강제 출국령을 내렸지만 많은 전문가는 예상보다 약한 조치로 간주하고 있다고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가 15일 보도했다.
정보요원으로 추정되는 23명의 외교관 추방은 지난 30년간 최대 규모이고 여기에 러시아와 고위급 접촉을 중단시켰지만, 메이 총리가 제시한 사전 통첩성 경고에 비춰 제재 강도가 당초 예상에 못 미친다는 지적이다.
특히 러시아가 타격을 입을 수 있는 영국 내 러시아 자산에 대한 구체적인 제한이나 규제가 포함되지 않은 데 대해 영국 내 전문가들은 물론 러시아 내 반푸틴 세력들도 함께 실망감을 나타냈다.
메이 총리는 외교관 추방 조치와 함께 인권탄압 관련 러시아 관리들에 대한 비자 발급을 제한하고 그들의 해외 자산을 동결할 수 있는 '마그니츠키 인권법'을 채택할 것이라고 밝혔다.
미국을 비롯한 서방국들은 러시아 변호사 세르게이 마그니츠키가 러시아 관리들의 부패를 폭로한 후 오히려 탈세 방조 죄목으로 체포돼 감옥에서 옥사하자 비록 외국이지만 러시아 내 인권탄압에 연루된 관리들을 단죄하기 위해 마그니츠키 인권법을 채택했다.
FT에 따르면 메이 총리의 제재에 대해 러시아 내 반푸틴 비판세력들은 '알맹이가 없는' 유명무실한 조치로 아쉬움을 나타내고 있다.
정작 테러 공작 자금이 될 수 있는 영국 내 수십억 달러의 러시아 자금과 부동산에 대한 구체적인 규제 조치가 없어 러시아 측이 제재를 별로 아프게 받아들이지 않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러시아 출신 투자가로 반부패 캠페인을 주도하고 있는 로만 보리소비치는 FT에 이번 제재가 러시아 부패 엘리트들에 중대 사건이 일어나더라도 영국 당국이 그들에 아무런 제재도 취할 수 없다는 점을 확인시켜주고 있다는 점에서 오히려 큰 해를 끼치고 있다고 주장했다.
반면 영국 관리들은 이번 독살 사건에 이어 영국 정부가 영국 내 러시아 자산에 대한 감시를 한층 강화하는 조치를 마련 중이라고 밝혔다.
메이 총리는 외교관 추방조치와 함께 러시아 자산이 영국인의 생명과 자산을 위협하는 데 이용되고 있다는 증거가 있으면 이를 가차 없이 동결할 준비가 돼 있다고 강조했다.
영국 정부의 한 관리는 메이 총리의 성명이 모호하기는 하지만 영국 정부는 이미 각종 불법 자산의 영국 내 반입과 세탁 등을 차단하고 압류하기 위한 입법조치를 취하고 있으며 이번 조치는 이를 더욱 강화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투자운용사 블루베이 애셋의 신흥시장 전략가 팀 애시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측근 업체나 개인들에 대한 비자발급 제한이나 구체적 제재가 전혀 없고 러시아 업체나 개인들에 대한 경고 메시지도 전혀 보이지 않고 있다고 제재의 실효성에 의문을 나타냈다.
또 러시아 국영 기업이나 은행들의 활동을 제한하거나 상장을 통한 런던 증시에서의 자금 조달을 규제하는 조치들도 전혀 없다고 지적했다.
영국은 지난 1985년 망명한 소련 스파이 올레그 고르디에프스키의 제보에 따라 정보요원으로 판명된 소련 대사관 직원 25명을 추방한 바 있으며 이번 추방은 당시 이후 최대 추방 규모이다.
그러나 러시아 측이 상응하는 추방조치를 취할 것이 분명한 만큼 영국 정보당국은 러시아내 첩보활동이 크게 위축될 것으로 우려하고 있으며 이러한 우려를 반영하듯 메이 총리는 '신중하게 제재 범위를 결정했음'을 시사했다.
특히 미 대선 개입을 이유로 미정부가 미국 주재 러시아 외교관 35명의 추방을 결정하자 러시아는 자국 내 미 대사관 직원 수를 755명이나 감축하도록 명령하는 등 비대칭적 보복 조치를 취한 사실을 영국 정보당국은 주목하고 있다.
영국 정부는 만약 러시아가 대응 보복에 나설 경우 추가로 추방조치를 단행한다는 방침이다. 23명 외에 영국 측에 정식 신고된 정보관리들과 고위 외교관들을 추가 추방 대상에 포함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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