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앞둔 푸틴은 '두려움없는 국가 수호자 이미지' 부각
브렉시트협상으로 신뢰도 추락한 메이는 만회할 기회로
(서울=연합뉴스) 황정우 기자 = 전직 러시아 '이중 스파이' 암살 시도를 둘러싸고 영국과 러시아가 초강경 대응으로 맞서면서 일촉즉발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여기엔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각각 자국내정치 일정과 입지를 배경으로 한 계산이 깔린 전술이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NYT)는 15일(현지시간) 푸틴 대통령이 지난 1일 국정연설에서 소개한 신형 미사일과 마찬가지로 (세르게이) 스크리팔에 대한 암살 시도는 어떤 위험이든 뭐든 할 준비가 돼 있다는 두려움 없는 국가의 방어자로서 푸틴의 위상을 강화할 뿐"이라고 분석했다.
신문은 "적어도 푸틴의 지지기반 사이에는 그렇다"고 덧붙였다.
또 "대통령선거를 불과 며칠 앞둔 푸틴을 악화하기는커녕 러시아는 국내외 적들로부터 끊임없는 위협에 직면한 포위된 국가라는 푸틴의 입장만 굳힐 뿐"이라고 지적했다.
푸틴 대통령은 이 국정연설에서 45분가량을 러시아가 새로 개발한 각종 전략 무기들을 소개하는데 할애했다.
이후 푸틴 대통령은 지난 11일 자국 언론인이자 정치분석가 안드레이 콘드라쇼프가 제작해 공개된 다큐멘터리 영화 '푸틴'에서 다루기 힘든 대상에 의한 악행을 용서할 수 있다면서도 "배반"은 예외라고 단호히 강조했다.
나라에 대한 배반은 용서불가라는 푸틴의 단호한 발언은 영국 정부가 비난하는 러시아의 행동에 대한 정서적, 정치적 배경을 제공한다고 신문은 풀이했다.
메이 총리는 러시아 출신 이중 스파이 스크리팔 암살 시도에 사용된 신경작용제가 러시아가 1970'~1980년대 러시아에서 군사용으로 개발된 노비촉'(Novichok)'으로 밝혀졌다며 러시아에 해명을 요구하는 최후통첩을 보낸 뒤 러시아가 이를 거부하자 자국 주재 외교관 23명을 추방하는 등의 제재를 발표했다.
러시아 국영 매체들은 영국의 주장을 반박하는 보도들을 꾸준히 내보내는 한편 푸틴이 국정연설에서 소개한 신형 무기들을 소개하면서 어떤 적들에도 반격할 준비가 돼 있다는 푸틴의 의지를 선전하는 데 매진하고 있다.
한편 메이 총리가 러시아를 배후로 지목한 데에는 국내에서 실추된 위상을 만회하려는 대목도 있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러시아 상원 의장인 발렌티나 마트비옌코는 "테리사 메이가 영국민의 관심을 그가 풀어야 하는 국내 문제, 브렉시트(Brexit·영국의 EU 탈퇴) 문제들에서 돌리려고 한다는 점을 배제하지 않는다"고 추정했다.
그러면서 "그가 이런 식으로 심각하게 추락한 자신의 위상을 만회하려고 할 가능성이 꽤 크다"고 덧붙였다.
영국 야당인 노동당 일각에서도 메이 총리가 직접적인 증거 없이 러시아를 공격하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가 나왔다.
평소 신중한 태도를 보여온 메이 총리가 이번의 경우 사건 발생 8일 만에 러시아에 최후통첩을 보내며 매우 이례적으로 신속한 대응에 나섰기 때문이다.
지난 2006년 내무장관 재임 시절 발생한 알렉산더 리트비넨코 독살 사건 당시자국 주재 러시아 외교관 4명이 추방됐지만, 미온적인 대응에 그쳤다는 비판이 제기된 바 있다.
여기에 유럽연합(EU)과 벌이는 브렉시트협상을 둘러싸고 야권은 물론 집권 보수당에서도 하드 브렉시트 세력과 소프트 브렉시트 세력 간 파열음이 잇따라 터져 나오면서 총리의 지도력에 심각한 의문을 제기하는 언론 보도들이 쏟아져 나온 와중에 이번 사건이 불거졌다.
보수당 하드 브렉시트 세력 일각에서 메이 실각을 목표로 하는 '반란'을 모의하고 실행을 준비하고 있다는 언론 보도들이 끊이지 않고 나왔다.
NYT는 영국 정부가 이번 사건을 두고 러시아를 공격했지만, 러시아로부터 사과나 심지어 진지한 대화조차 기대하지 않고 있다고 관측했다.
미국과 유럽 등 서구 세계가 가세해 서구-러시아 대립 국면을 심화한 이번 암살 시도 사건을 놓고 푸틴은 오는 17일 예정된 대선 유세의 재료로, 메이는 악재의 연속인 브렉시트협상에 대한 국민의 관심을 돌리는 재료로 삼는다는 분석이다.
jungwo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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