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지섭, 뭘 입혀도 멋져…빅사이즈 의상 특별 제작"
(서울=연합뉴스) 조재영 기자 = "사실 제 모습과 경험을 시나리오에 많이 녹였습니다."
최근 종로구 삼청동에서 마주한 영화 '지금 만나러 갑니다'의 이장훈(45) 감독은 극 중 주인공 우진(소지섭 분)과 닮은 듯했다. 외모는 다르지만, 진지한 말투와 수줍은 듯한 태도에서 우진의 이미지가 겹쳤다. 오랜 연애 끝에 결혼한 아내, 하나뿐인 아들이 있다는 점도 우진 가족과 비슷하다.
"극 중 엄마(손예진)가 아들과 쌀·보리 게임을 하면서 노는 장면 등은 제 아내와 아들이 놀던 기억에서 따왔어요. 프라이팬 위에 떡볶이 떡들이 기름에 튀어 오르는 장면도 제 경험에서 나온 것이죠."
'지금 만나러 갑니다'는 동명의 일본 소설과 영화가 원작이다. 세상을 떠난 아내 수아가 1년 뒤 기억을 잃은 채 우진(소지섭) 앞에 나타나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렸다. 웃기고 울리는 감동 스토리와 손예진·소지섭의 호연으로 지난 14일 개봉 후 박스오피스 1위를 달리고 있다. 국내 극장가에서 멜로영화가 흥행 1위를 차지한 것은 보기 드문 경우다.
원작의 감동은 전하되, 국내 관객의 취향에 맞게 변형한 점이 주효했다. 이 감독은 "원작을 뛰어넘지 못할 바에는 다르게 가보자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가장 큰 차이점은 캐릭터다. 일본판 수아는 여성스럽고 수동적이지만, 한국판 수아는 똑 부러지게 할 말은 다 하면서도 엉뚱한 면이 있다. 우진은 착하고 어리숙하면서 한 여자만을 사랑하는 지고지순한 캐릭터지만, 원작보다 한국판이 더 야무진 편이다.
이 감독은 두 배우와의 촬영 뒷이야기도 들려줬다.
"발코니에서 손예진과 소지섭이 대화를 나누는 장면을 찍을 때, 손예진의 신 하나만 찍는 데도 세 시간이 걸렸죠. 그때 제가 한 번 더 촬영하자고 했더니, 손예진이 위경련이 와서 주저앉았어요. 그만큼 힘들게 찍었죠. 소지섭도 자기 분량이 아니었는데도, 손예진의 대사를 받아주며 똑같이 선 채로 비를 맞으며 찍었어요. 그때 마음이 너무 짠했습니다."
영화에는 수아와 우진의 첫 데이트 장면이 나온다. 우진은 친구의 분홍색 재킷을 빌려 입고 보타이를 하고 등장해 웃음을 자아낸다. '너무 과한 설정이 아니냐'고 묻자 "그 장면에서 웃기고 싶었는데, 소지섭은 뭘 입혀도 멋있었다"고 떠올렸다.
"힙합 패션뿐만 아니라 (소지섭의 '흑역사'로 유명한) 마법사 옷도 입혀봤는데, 그 역시도 멋있더라고요. 또 덩치가 큰 친구 옷을 빌려 입는 설정이어서 옷이 커 보여야 하는데, 소지섭의 어깨는 어떤 옷을 입어도 다 맞았죠. 결국, 의상을 특별 제작해야 했습니다."
이 감독은 이 영화가 데뷔작이다. 서울대 컴퓨터공학과를 졸업하고, 29살 때 영화 공부를 다시 시작한 지 10여 년 만이다.
"대학에 들어간 순간 전공을 잘못 선택했구나 생각했어요. 방황하던 와중에서 고교·대학 선배가 방송국 PD 시험에 붙은 것을 보고, '저런 직업도 있구나' 하고 흥미로웠죠. 그 전까지는 영화를 안 봤고, 비디오도 대학교 때 처음 빌려봤어요." 공대 출신 이 감독의 인생 경로를 바꾸는 데 큰 영향을 끼친 고교·대학 선배는 바로 드라마 '키스 먼저 할까요?'를 연출 중인 SBS 손정현 PD다.
이 감독은 미국 캘리포니아에 있는 채프먼 대학으로 유학을 가 영화연출을 전공하고 30대 초반에 돌아왔다. "막상 한국에 돌아와 보니 인맥도 없어서 무척 힘들었어요. 강의도 하고, 아르바이트하면서 살았죠. 그런 나날들이 10여 년간 반복되면서 '나만 왜 이럴까?' 하는 생각이 들었죠. 하지만 누구나 겪는 일이잖아요. 그 기간이 조금 길었을 뿐…"
포기하지 않고 기다린 보람은 있었다. 이 감독은 "유명한 원작과 톱배우들을 데뷔작으로 만난 것은 하늘이 준 기회"라며 웃었다.
이 감독은 "이 영화를 통해 사랑하는 사람이 옆에 있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행복하고, 위로받을 수 있는지 관객들이 느꼈으면 좋겠다"면서 "앞으로도 재미있고, 따뜻하고, 사랑이 있는 영화를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fusionjc@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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