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콕=연합뉴스) 김상훈 특파원 = 마약과의 전쟁 과정에서 재판 없이 진행된 이른바 '초법적 처형'으로 국제소송에 휘말릴 공산이 커진 로드리고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이 결국 국제형사재판소(ICC) 탈퇴를 강행했다.
17일 현지 언론과 외신 보도에 따르면 필리핀 정부는 최근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에게 정식으로 ICC 탈퇴 의사를 전달했다.
필리핀은 정부 명의의 서한을 통해 "ICC 탈퇴 결정은 인권을 정치 이슈화하거나 무기화하는 자들에 맞서기 위한 원칙에 따른 저항"이라고 밝혔다.
서한은 이어 "우리는 로마 규정(국제형사재판소 설립을 위해 국제연합 외교회의가 1998년 로마에서 채택한 규정)이 없더라도 처벌받지 않는 잔혹 범죄에 맞서는 책무를 유지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번 조처는 두테르테 대통령이 취임 후 추진한 유혈 마약범죄 소탕과 이로 인한 막대한 인명 피해 등에 대해 ICC가 사법절차에 착수하는 것을 차단하려는 의도다.
앞서 필리핀의 한 변호사는 지난해 4월 두테르테 대통령과 비탈리아노 아기레 법무부 장관, 로널드 델라로사 경찰청장 등 마약과의 유혈전쟁과 관련이 있는 고위 공직자 11명을 ICC에 고발했다.
두테르테가 남부 다바오 시장 재직 때부터 암살단을 운영했고, 대통령 취임 후에는 마약 용의자 유혈 소탕으로 4천여 명이 초법적인 처형을 당했다는 것이 고발 취지다.
권오곤 ICC 당사국총회 의장은 필리핀의 탈퇴 의사 표명에 유감을 표명했다.
권 의장은 성명을 통해 "필리핀의 탈퇴는 전쟁 범죄와 반인도적 범죄 처벌에 대한 ICC의 노력을 훼손할 것"이라며 "ICC가 제대로 기능하려면 국제사회의 강력한 지지가 필요하다. 필리핀이 로마 규정의 일원으로 남기를 권한다"고 말했다
국제 법률전문가들도 필리핀의 ICC 탈퇴 결정이 이런 배경에서 나온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필리핀 정부 대변인인 해리 로크는 "마약 용의자 사살에 대한 ICC의 조사는 재판소 운영에 관한 원칙을 위반한 것"이라며 "ICC는 특정 국가가 범죄행위를 조사할 수 없거나 조사할 의사가 없는 경우에만 관할권을 행사할 수 있다"고 말했다.
meolakim@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