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지' 문턱까지 갔던 출판기념회 편법 모금 여전했다

입력 2018-03-19 08:50   수정 2018-03-19 13:06

'폐지' 문턱까지 갔던 출판기념회 편법 모금 여전했다
경남서만 40여차례…유권자·업체 울며 겨자먹기 식 책값 내
4년전 폐지 검토 유야무야…"회계보고 의무화해 정치자금법으로 흡수해야"


(창원=연합뉴스) 황봉규 기자 =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선거일 전 90일인 지난 15일부터 6·13 지방선거 출마 예정자들의 출판기념회가 금지됐다.
공직선거법상 선거운동 기회균등을 보장하고 공정한 선거가 침해되는 것을 막기 위해 누구든지 후보가 되려는 사람을 포함해 후보와 관련 있는 저서의 출판기념일을 선거일 90일 전부터 못하도록 했다.
이 때문에 경남에서도 출판기념회 금지 하루 전인 지난 14일까지 지방선거 출마 예정자들의 출판기념회 또는 북콘서트가 잇따라 열렸다.
◇ 출판기념회 얼마나 열리나… 개최 속셈은
19일 경남도선거관리위원회와 지역정가에 따르면 이번 지방선거와 관련해 도내에서만 최소 35차례에서 40차례 정도의 출판기념회가 열린 것으로 파악된다.
4년 전과 전체 횟수는 비슷한 것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전체적으로 출마예정자가 늘어나 출판기념회도 많아진 것 같다는 지적도 있다.
도지사 출마자 3차례, 교육감 출마자 4차례, 시장·군수 출마자 25차례를 포함해 비교적 작은 규모의 지방의원 출마예정자들 출판기념회까지 지난 몇 달간 출판기념회가 계속됐다.
많은 경우 한 주에 2∼3건의 출판기념회가 잇따라 열리기도 해 '겹치기 출연'을 해야하는 일부 유권자들의 경우 시간 내기가 힘든 것은 고사하고 '책값'에 따른 경제적 부담을 호소하기도 하는 실정이다.
출판기념회는 선관위에 신고할 의무가 없으므로 선관위도 도지사, 시장·군수, 광역의원, 기초의원별 출판기념회를 정확하게 알기 힘들지만, 올해 지방선거를 앞둔 출판기념회도 여전했던 것으로 보인다.
지방선거 입후보 예정자들의 출판기념회가 이처럼 계속 열린 것은 정치인들에게 출판기념회는 여러 측면에서 매력이 많기 때문이다.
2004년 정치자금법 개정 이후 기업 후원이 금지되고 후원금 액수가 제한되면서 정치자금을 모금하기 위한 편법으로 출판기념회 또는 북콘서트가 유행처럼 번졌다는 것이 정가의 분석이다.
실제 정치인들이 얼굴을 알리고 지지세를 모을 수 있는 좋은 기회인데다 실제 선거를 치를 '실탄'을 마련하는데 그만한 이벤트가 없기 때문이다.
최근 도내에서 열린 주요 후보들의 출판기념회에는 많은 경우 수천 명이 참석, 지지세를 과시했다. 또 행사장 입구에선 참석자들이 줄지어 책을 사면서 얼마가 들었는지 알 수 없는 '봉투'를 전달하는 모습을 예외없이 볼 수 있었다.
봉투 속에 든 정확한 금액은 낸 사람과 후보측만 알 수 있는 구조이며, 대체로 책 정가보단 훨씬 많은 돈이 들어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봉투를 전달하면서 거스름돈을 받는 경우는 아예 찾기 어렵고, 신용카드도 거의 받지 않는다.
후보와 연관있는 동문회, 산악회 등 각종 모임은 물론 관급사업 의존도가 높은 지역건설업체 등도 '보험' 성격으로 책값보다 훨씬 많은 돈을 넣은 봉투를 주고 간다는 것이 공공연한 비밀이다.
책 내용 역시 후보 예정자의 인생행로와 철학, 정견 등을 충실하게 수록한 경우도 없지 않지만 짜깁기에 의존하거나 출판사가 짧은 시간에 후보 예정자를 대신해서 급조된 경우가 적지 않다는 지적이 많다.
◇ 적잖은 부담에 이어지는 원성…'폐지' 거론 되다 여전히 흥행
총선에 비해 후보자 숫자가 많은 지방선거의 경우 출판기념회 횟수도 덩달아 더 많아지고 SNS나 휴대전화 문자 등으로 행사를 통보받으면 참석하지 않을 수도 없어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봉투를 갖고 가 '눈도장'을 찍어야한다는 호소도 여기저기서 터져나온다.
출판기념회에서 만난 공무원 A 씨는 "지방선거에는 공직 출신이나 서로 아는 사이인 후보자가 많아 연락 오는 출판기념회를 모두 참석해 책값을 내자니 부담이 적지 않다"며 "여기에다 경조사까지 합치면 매주 2∼3건, 많게는 4건이상 되는 경우도 있다"고 털어놓았다.
관급공사 의존도가 높은 건설업체를 비롯해 지방자치단체에 각종 기기나 소모품을 납품하는 업체들도 당선 가능성이 높은 후보의 경우 출판기념회란 공간을 이용해 '인사'를 하지 않을 수 없다며 고충을 호소했다.
출판기념회를 치르고 난 뒤 책값과 행사 경비 등을 빼고 남는 돈은 출마 예정자들의 편법적인 정치자금이 된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현행 공직선거법에는 출판기념회에서 책값을 전달하는 것은 명시적 기부행위가 아니고 책값과 함께 사회상규상 어느 정도의 축하금도 허용된다.
이러한 출판기념회 성격 때문에 이번 지방선거와 관련한 선거사범이 경남도내에서 30여 건에 이르지만, 출판기념회와 관련해 고발이나 수사의뢰, 경고, 주의 등의 조처를 한 사례는 없다.
출판기념회에서 낸 책값은 부정청탁금지법(일명 김영란법)으로도 규제하기가 어렵다.
지난 5일 국민권익위원회는 "책값 정가를 지불했다면 100권을 사도 제재대상이 안 된다"면서 "직무 관련이 있는 사람으로부터 정가가 아닌 '의례적인 범위'를 넘는 책값을 수수하는 경우 청탁금지법에 어긋난다"는 입장을 내놨다.
직무 관련이 없으면 의례적 범위를 넘어도 가능하다는 해석이어서 의례적 범위의 정도가 어디까지인지 가늠하기가 쉽지 않다.
더욱이 대부분 봉투로 책값을 전달하는 출판기념회 성격상 정가보다 얼마나 더 넣었는지를 알 수도 없어 사실상 청탁금지법으로 제재하기 어렵다.
이러한 출판기념회의 폐단이 부각되자 지난해 12월 당시 박주원 국민의당 최고위원은 "공직선거에 출마하는 자는 출판의 자유는 보장하되 어떠한 경우에도 출판기념회는 할 수 없다는 금지규정을 만들자"는 제안을 하기도 했다.
사실 출판기념회를 둘러싼 폐해는 비단 이번만이 아니라 선거가 다가올 때마다 문제가 됐고 4년 전엔 아예 폐지가 거론되기고 했다.
2014년 검찰이 국회의원 출판기념회를 통한 `입법로비' 수사에 나서면서 출판기념회를 빙자한 편법 정치자금 모금 행위를 없애야한다는 여론이 높았다. 당시 국회의원 출판기념회가 열리면 국정감사를 받는 기관이나 관련 기업들은 앞다퉈 돈봉투를 들고 찾아갔고 일부 의원들은 아예 피감기관에 전화를 걸어 참석을 강요하는 경우도 있다는 지적을 받았다.
이에따라 당시 여당인 새누리당 보수혁신위원회가 정치인의 출판기념회를 일절 금지하는 방안을 추진했다. 책의 정가 판매만 허용토록 하는 내용의 중앙선거관리위원회 개정 의견보다 한층 강도높은 제재를 담았다.
혁신위 간사인 안형환 전 의원은 회의 직후 브리핑에서 "오늘 회의에서 국회의원, 지방의회 의원 및 지방자치단체장, 공직선거 후보자가 되려는 사람은 출판기념회를 일절 금지하기로 했다"고 밝힌 바 있다.
이에 앞서 당시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는 같은 해 8월 관훈클럽 초청토론회에서 "출판기념회는 분명히 정치자금법 위반이고 탈세이다. 이것이 법의 사각지대"라며 "선출직 의원이나 로비를 받는 대상에 있는 고위공직자들은 출판기념회를 하지 않아야 한다"고 밝히기도했다.
이 같은 분위기에 힘입어 일부 총선 출마예정자들은 입법이 되기 전인데도 예정했던 출판기념회를 취소하는 등 몸을 사리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지만 그 뒤로 다시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경남도선관위 관계자는 "출판기념회 책값은 상한금액이 정해져 있거나 봉투를 일일이 열어볼 수도 없어 얼마가 들었는지 파악할 수 없다"며 "이 때문에 출판기념회 수익이 투명하지 않은 정치자금으로 충당되는 부작용이 있는 것 같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정치인들이 정치자금법 규제를 받지 않는 실체적 정치자금 모금창구로 활용하는 출판기념회를 개선해야 한다"며 "정치를 하려는 자는 출판기념회를 아예 못하게 하거나 정가로만 판매하도록 하고 출판기념회 끝나면 그 회계내역을 선관위에 제출하게 하는 등의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고 제안했다.
bong@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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