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연합뉴스) 박철홍 기자 = "계속 부인하면 긴급체포하겠습니다. 당신이 죽였죠?"
경찰이 80대 할머니를 잔혹하게 살해한 혐의로 손모(67·여)씨를 구속했다.
손씨는 범행을 애써 부인하다, 수갑을 꺼내려 하는 강력계장의 손을 양손으로 잡으며 "내가 왜 그랬는지 모르겠습니다"고 털어놓으며 '악어의 눈물'을 쏟았다.
손씨가 피해자 A(81)할머니의 아파트 현관문을 두드린 것은 지난 10일 오전 9시 50분이었다.
할머니가 사는 광주 북구 한 아파트 9층으로 향하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손씨는 양손에 목장갑을 끼고 머리를 매만지는 등 태연한 모습이었다.
그러나 손씨의 손가방 안에는 미리 준비한 둔기가 들어있었다.
집에 들어간 손씨는 A할머니와 한참을 말다툼했다.
급전인 필요해 A할머니에게 5차례에 걸쳐 10만 원씩 총 50만 원을 빌린 것이 화근이었다.
10일에 5만원씩 이자 독촉을 받던 손씨는 A할머니에게 비싼 이자에 대해 항의하다 "나를 험담하고 다닌다"고 화를 내며 무참히 둔기와 흉기를 수차례 휘둘러 살해했다.
그리고 시신을 훼손하기까지 했다.
손씨는 약 7시간 동안 범행을 저지르고, 다음 날 새벽 4시 40분께 할머니 아파트 현관문을 잠그고 조심스레 도망갔다.
그의 손가방에는 범행에 사용한 둔기와 함께 할머니가 서랍 밑에 몰래 숨겨놓은 금장 시계, 팔찌, 목걸이 등 귀금속이 들어있었다.
범행을 저지르고 잇따라 지인들에게 현금을 보낸 것으로 볼 때 손씨는 할머니의 현금도 들고나온 것으로 추정된다.
할머니는 결국 손씨에게 살해당한 지 약 엿새 뒤인 지난 16일 연락이 닿지 않아 찾아 나선 사회복지사의 신고로 싸늘한 시신으로 발견됐다.
손씨는 노령에도 불구하고 나름 치밀하게 범행을 은폐하려 했다.
할머니의 집에 찾아갈 때부터 지문을 남기지 않기 위해 장갑을 꼈고, 나오면서도 홀로 사는 할머니를 찾아오는 사람이 없다는 점을 의식해 현관문을 잠그고 나왔다.
도주할 때는 자신의 신원을 들키지 않기 위해 할머니의 보라색 모자를 훔쳐 쓰고 나왔고, 엘리베이터도 2층에서 내려서 계단으로 걸어 내려왔다.
그러나 손씨의 범행은 '매의 눈'으로 증거를 찾아내고 압박한 경찰의 수사로 들통이 났다.
경찰은 A할머니에게 최근 연락한 30여명의 지인을 대상으로 탐문 수사를 벌이며 손씨를 임의동행해 조사했다.
경찰서에 출석한 손씨는 태연하게 A할머니 집 근처도 간 적이 없다고 발뺌했다.
그러나 6일 치 CCTV를 뒤지는 과정에서 용의자 옷에 그려진 분홍색 꽃무늬를 발견하고 손씨를 용의자로 특정했다.
증거를 수집하고 경찰이 검거하기 위해 집에 찾아오자 손씨의 표정은 사색이 돼 있었다.
뻔뻔하게 거짓말을 이어가다 집안 옷걸이에 걸린 꽃무늬 상의를 가리키며 증거를 하나씩 제시하는 경찰의 추궁에 손씨는 눈물을 쏟으며 경찰의 손을 양손으로 잡고 "내가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며 죄를 털어놨다.
경찰은 손씨가 A 할머니를 살해한 후 금품까지 훔쳐간 것으로 보고 강도살인을 적용할 예정이다.
경찰은 "사건 발생 후 오랜 시간이 지난 뒤 시신이 발견돼 자칫 사건해결이 어려울 수 있었으나, 강력팀 형사들의 헌신으로 비교적 이른 시일 안에 범인을 검거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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