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투 비하·성추행' 논란 하일지 "비이성적 고발…강단 떠난다"(종합)

입력 2018-03-19 20:21   수정 2018-03-19 20:26

'미투 비하·성추행' 논란 하일지 "비이성적 고발…강단 떠난다"(종합)

동덕여대서 회견 "인격살해 당해…미투 폭로 의도 점검해야"
학생들에 사과 거부…문창과 학생들 "당신의 제자는 없다" 파면 요구


(서울=연합뉴스) 이효석 기자 = 소설 '경마장 가는 길'의 저자이자 동덕여대 문예창작과 교수인 하일지(본명 임종주·62)씨가 미투 운동 비하 논란에 이어서 2년 전 제자를 성추행했다는 의혹이 불거진 가운데 강단을 떠나겠다고 밝혔다.
19일 동덕여대 학내 커뮤니티 등에 따르면 동덕여대 재학생 A씨는 2016년 2월 하일지씨와 가까운 스승과 제자 사이로 지내다가 성추행을 당했다고 폭로했다.
이에 앞서 하씨는 14일 '소설이란 무엇인가' 수업을 진행하는 도중 안 전 지사 성폭력 피해자 김지은씨에 관해 2차 가해에 해당하는 발언을 하고, 김유정의 소설 '동백꽃'을 두고 "처녀가 순진한 총각을 성폭행한 내용이다. 얘(남자 주인공)도 미투해야겠네"라고 말한 사실이 알려져 논란을 빚었다.
이에 관해 하씨는 이날 오후 서울 성북구 동덕여대 백주년기념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무례하고 비이성적인 고발"이라면서도 "강단을 떠나겠다"고 입장을 밝혔다.
하씨는 준비해온 입장문을 읽으면서 "이론과 실기를 겸비한 문학 교수라는 자부심을 갖고 조용히 살았는데, 최근 느닷없는 봉변을 당했다"면서 "'미투'라는 이름으로 자행되는 무례하고 비이성적인 고발을 받았다"고 말했다.
그는 "대중 앞에 인격살해를 당해 문학 교수로서 자존심 깊이 상처를 입었고 학생 신뢰를 회복하기 어렵게 됐다"면서 "제가 지켜야 할 것은 제 소신이라 판단, 마지막으로 모범을 보이기 위해 강단을 떠나 작가의 길로 되돌아가기로 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하씨는 A씨의 폭로에 관한 입장을 묻자 "보도자료를 참고해 달라"고 대답을 피했다. 그가 배포한 보도자료에는 A씨가 과거 '존경한다'며 보낸 안부 메일 내용 일부가 담겨 있었다.
하씨는 취재진이 설명을 거듭 요구하자 "미투 운동에서 우리는 고백에 관해 세 가지 점검이 필요하다"면서 "사실관계, 고백자의 진실한 감정, 고백자의 의도 등을 점검해야 한다"며 거꾸로 의혹을 제기했다.
그는 "오늘 사직서를 제출할 생각이지만, 학교 윤리위원회에서 출석하라고 하면 하겠다"면서 "그러나 거듭 말하지만, (성추행 폭로 학생이나 다른 학생들에게) 사과할 뜻은 없다"고 선을 그었다.

이날 하씨가 기자회견을 한 백주년기념관 로비에는 동덕여대 학생 100여명이 찾아와 '하일지 교수는 공개 사과하라', '하일지 교수를 즉각 파면하라', '하일지 OUT' 등이 적힌 종이를 들고 시위했다.
학생들은 하씨가 회견장에 나오자 "사과하라"고 외쳤고, 성추행 의혹에 관해 명확한 답변을 피하거나 사과할 생각이 없다고 말할 때마다 비난의 목소리를 높였다.
동덕여대 측은 이날 오후 5시께 하씨 사건에 대한 윤리위원회를 소집했다.
이날 윤리위에 하씨는 출석하지는 않았으며, 윤리위원들은 향후 윤리위 진행 절차 등을 논의했다.

학교 측은 하씨가 이날 오전 제출한 사직서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문예창작과 재학생·졸업생 100여명은 이날 성명을 내고 "더 이상 당신의 제자는 없다"면서 "학생 외모평가를 일삼고 고압적인 태도로 학생 인권을 침해해온 하씨는 변명을 멈추고 학생들에게 공개 사과하라"고 촉구했다.
이들은 학교 측에 하씨의 사직서를 수리하지 말고 사건을 철저히 진상조사해 파면하고 성윤리위원회와 징계위원회 구성에 학생들을 포함하라고 요구했다.
총학생회도 오후 6시께 본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학교는 교원의 성희롱·폭언·갑질을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라"면서 "가해자를 적극적으로 처벌하고 학생 인권을 실질적으로 보호할 상설 '인권센터'를 만들라"고 요구했다.
한편 하씨가 성폭력 가해 의혹을 받는 상황에서 학교 측이 기자회견 자리를 마련해준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비판도 나온다.
기자회견을 본 학생 박모(24)씨는 "하일지 교수는 평소 수업 중에 총장과의 친분을 과시했다"면서 "학교 차원에서 해명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준 것을 보고 징계는 제대로 이뤄질지 의구심이 들었다"고 주장했다.
hyo@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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