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개 회원국 비준·발효 지연 가능성…가입 저울질 한국엔 '시간벌기'
(서울=연합뉴스) 김문성 기자 = 미국의 탈퇴로 폐기 위기에 몰렸다가 가까스로 살아난 '메가 다자간 자유무역협정(FTA)'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에 새로운 암초가 등장했다.
'TPP 전도사'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사학 스캔들에 휩싸여 3연임 가도에 적신호가 켜졌고, TPP 참여국인 말레이시아와 멕시코에서는 이 협정에 부정적인 인물이 차기 국가지도자 자리를 다투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 국가의 향후 정계 구도에 따라 지난 8일 공식 서명이 이뤄진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의 운명이 또 한 번 시험대에 오르게 됐다.
기존 TPP를 일부 수정한 이 협정에는 미국을 제외한 일본과 호주, 뉴질랜드, 캐나다, 멕시코, 칠레, 페루, 싱가포르, 베트남, 말레이시아, 브루나이 등 11개국이 참여했다.
CPTPP 조기 발효가 아베 총리가 연루된 사학 스캔들은 물론 말레이시아 총선과 멕시코 대선 결과의 영향을 받을 수 있다고 홍콩 영자지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가 19일 분석했다.
CPTPP 참여국들의 총 인구는 5억 명으로 국내총생산(GDP)이 전 세계의 13.5%를 차지한다. CPTPP는 최소 6개국이 국내 비준절차를 완료한 시점으로부터 60일 이후에 발효된다. 이르면 연내, 늦어도 내년 초 공식 발효가 목표다.
그러나 TPP 회생을 주도한 아베 총리가 사학 스캔들로 인한 지지율 급락 탓에 오는 9월 3연임 여부를 결정하는 자민당 총재선거에서 패배할 경우 CPTPP 조기 발효 동력이 약해질 수 있다.
데보라 엘름스 아시아무역센터 이사는 "일본이 이 협정의 비준에 실패하면 다른 어느 나라도 비준하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자민당이 의회 다수당인 가운데 아베 총리가 연임에 실패하더라도 이시바 시게루(石破茂) 전 자민당 간사장 등 후임자로 거론되는 인물이 친자유무역주의자이어서 CPTPP 비준은 문제가 안 되겠지만 비준 시기는 늦어질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CPTPP 참가국 가운데 경제 규모가 가장 큰 일본의 비준이 정계 격변으로 지연될 경우 다른 회원국들이 눈치를 볼 수 밖에 없어 연쇄 비준 지연이 예상된다.
오는 4월 말이나 5월 초 총선이 치러지는 말레이시아 총선도 변수다.
나집 라작 말레이시아 총리가 이번 총선에서 승리, 집권 연장을 이루면 CPTPP 비준에 큰 어려움이 없겠지만, 야권의 총리 후보로 나선 마하티르 모하마드 전 총리가 집권하면 상황이 달라진다.
과거 마하티르 전 총리는 CPTPP가 말레이시아의 일반인에게 경제적 이득을 주지 못한다고 주장하며 이 협정에 회의적인 태도를 보였다.
마하티르 전 총리는 2015년 나집 총리가 국영투자기업 1MDB에서 수조 원의 나랏돈을 빼돌려 비자금을 조성했다는 의혹이 제기되자 총리 퇴진 운동을 벌이며 정권 교체를 꾀하고 있다.
멕시코의 오는 7월 대선 결과도 CPTPP의 향방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엔리케 페냐 니에토 멕시코 대통령은 열렬한 무역협정 지지자이지만 여론조사에서 선두를 달리는 좌파 대선 후보자 안드레스 마누엘 로페스 오브라도르는 투자자들에 의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같은 보호무역주의자로 비친다고 SCMP는 전했다.
CPTPP의 출범이 늦어질수록 이 협정 가입을 저울질하는 한국은 의사 결정에 필요한 시간을 더 벌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최근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올해 상반기 중으로 CPTPP 가입 여부에 대한 관계부처 간의 합의를 도출하고 필요하다면 바로 통상절차법상 국내 절차를 개시하겠다"고 밝혔다.
또 "일본, 호주, 멕시코 등의 국내 비준 동향을 예의주시하겠다"며 "CPTPP 가입을 적기에 결정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kms1234@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