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르시카 민족주의정부 들어서자 마크롱 '개헌' 당근 제시
남태평양 뉴칼레도니아 오랜 독립 추진 끝에 11월 주민투표 시행키로
마요트·기아나 등 인프라 열악, 치안 불안…"우리도 프랑스, 2등시민 취급말라"
(파리=연합뉴스) 김용래 특파원 = 프랑스가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 집권 후 해외영토와 자치지역 등 본토 외의 지방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쏟아지는 요구들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당장 이탈리아 반도에 가까운 자치영토 코르시카에 강한 민족주의 성향의 지방정부가 수립돼 정부가 긴장하고 있는 가운데, 남태평양의 뉴칼레도니아가 오는 11월 분리독립 찬반 주민투표를 시행하기로 확정했다.
인도양의 프랑스 해외령 마요트는 열악한 공공서비스와 치안의 확충을 본국 정부에 요구하는 주민 총파업이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80년대부터 독립 추진한 뉴칼레도니아 11월 주민투표로 결정키로
뉴칼레도니아(프랑스어 명칭 누벨칼레도니) 자치의회는 19일(현지시간) 프랑스로부터의 분리독립의 찬반을 묻는 주민투표를 11월 4일 시행하기로 했다.
독립 찬반 주민투표는 프랑스와 뉴칼레도니아가 1998년 협정에 명시된 사안이다. 이웃 스페인의 자치지방인 카탈루냐가 스페인 정부와 헌법재판소의 불허에도 주민투표를 강행해 독립공화국 선포 안의 법적인 실효성이 없었던 것과는 정반대의 상황이다.
남태평양의 섬 뉴칼레도니아는 1956년 프랑스에 편입됐다. 1985년부터 무장단체가 활동하기 시작했고, 1988년에는 유혈 인질극으로 70여 명이 숨지는 등 소요사태가 크게 번질뻔했으나, 프랑스가 그 해 마티뇽 협정으로 자치권을 대폭 확대해주면서 타협했다.
이후 10년 뒤인 1998년에는 누메아 협정을 통해 프랑스가 추가 자치권 이양을 단행했고, 뉴칼레도니아는 2014년 이후에는 독립을 포함한 정치적 문제를 언제든지 주민투표에 부칠 수 있게 됐다. 누메아 협정이 규정한 주민투표 기한은 올해 말까지다.
뉴칼레도니아는 작년 지방정부의 공백 사태를 초래한 정치적 교착을 극적으로 타결하면서 새 지방정부를 탄생시켰고, 이 과정에서 정치인들은 프랑스로부터의 독립을 전면에 내세웠다. 결국, 이날 의회 표결로 독립을 결정할 최종권한은 주민들에게 넘어갔다.
독립에 대한 여론은 분분하다. 유럽계 주민들은 프랑스 잔류를 선호하지만, 원주민들은 독립을 원하는 기류가 강하다. 원주민 가운데서도 시기상조라거나, 강대국인 프랑스의 일부로 남아 더 발전해야 한다는 등의 이유로 잔류를 희망하는 이가 적지 않다.
프랑스로서는 뉴칼레도니아가 아무리 본토와 멀리 떨어진 해외영토이고 과거에 약속을 해줬다고는 하지만, 주권을 넘겨주는 게 탐탁지는 않다.
뉴칼레도니아는 천혜의 자연환경을 갖춘 세계적 관광지인 데다, 전 세계 니켈 매장량의 4분의 1에 가까운 양이 매장된 자원의 보고(寶庫)다.
또한, 프랑스는 카리브 해의 과들루프, 마르티니크, 레위니옹, 남미의 기아나 등 과거 식민지 5곳을 해외령으로 두고 있어 다른 해외영토들로 독립이나 자치권 확대, 인프라 확충 등의 요구가 번질 가능성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다만, 예외적인 케이스인 뉴칼레도니아를 제외하면 다른 곳들을 프랑스에 대한 불만은 크지만, 자립의 기반이 크게 부족해 독립을 추진할 동력은 크지 않다.
◇"프랑스인 되려고 남았는데"…마요트 주민들, 본국 지원 요구 한달째 총파업
프랑스는 최근에는 인도양의 해외령 마요트의 총파업에 직면했다.
치안과 인프라 확충을 요구하는 주민 총파업이 3주 넘게 이어지자 프랑스 정부는 지난 12∼13일(현지시간) 아닉 지라댕 해외영토부 장관을 마요트로 급파했다.
본국 정부가 경찰과 헌병대 증원, 해군함정 순찰 강화 등을 주민들에게 약속했지만, 당분간 주민들의 불만은 수그러들지 않을 기세다.
인구 25만의 마요트는 아프리카대륙과 마다가스카르 사이 인도양의 코모로 제도에 속한 작은 섬이다. 1841년 프랑스령에 편입된 이후 1974년 프랑스의 101번째 도(道·데파르트망)가 됐다.
앞서 1974년 코모로제도의 다른 섬들이 프랑스로부터 독립을 택했을 때 마요트는 고심 끝에 프랑스령에 남기로 했다.
그러나 마요트는 프랑스 본토와 비교하면 공공 인프라가 턱없이 취약한 데다 다른 섬들에서 프랑스령인 이곳으로 유입되는 불법 이민자들이 폭증하면서 공공서비스 마비와 치안 불안에 시달려왔다.
마요트의 실업률은 25.9%에 이르며, 인구 10만 명 당 의사 수는 18명으로 프랑스 전체 평균의 10분의 1에도 못 미친다. 이곳 주민들은 '다른 곳들이 독립할 때 우리는 프랑스를 택했는데 배신당했다'며 분통을 터트리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한 달 전 학교에서 갱단이 충돌한 것을 기폭제로 주민들은 총파업을 선언하기에 이르렀다.
마요트의 총파업이 소요사태로 발전할 조짐이 보이자 프랑스는 부랴부랴 해외영토부 장관을 급파해 민심 달래기에 나섰다. 프랑스가 제시한 대책들이 성에 차지 않은 주민들은 총파업을 이어가고 있다.
총파업 집회의 지도급 인사인 사이드 하킴은 르몽드 인터뷰에서 "우리는 프랑스인이 되려고, 자유를 위해 싸웠을 뿐, 우리는 거지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프랑스는 작년 4월에도 비슷한 일을 겪었다. 남미에 있는 해외영토인 기아나의 주민들이 인프라 확대와 치안 강화 등을 요구하는 총파업을 벌여 프랑스는 애를 먹었다.
특히 기아나에는 프랑스의 쿠루 우주기지가 있어 전략적으로도 중요한 해외영토다. 이 우주기지가 총파업과 바리케이드 집회로 운영에 차질이 빚어졌고, 한국의 통신위성 코리아샛(KOREASAT) 7호의 발사도 지연됐다.
프랑스는 기아나 주민이 요구한 공공 인프라에 대한 투자와 경제 활성화와 관련해 몇 개의 '당근'을 제시해 겨우 파업사태를 진정시켰지만, 여전히 불씨는 곳곳에 남아있다.
◇프랑스, 나폴레옹 고향 코르시카 특별지위 헌법 명시 추진…민족주의 달래기
과거 프랑스를 상대로 무장투쟁까지 벌였던 코르시카의 뿌리 깊은 민족주의 역시 마크롱 대통령에게는 난제다.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의 고향인 코르시카는 이탈리아 반도 옆 지중해에 있는 섬으로, 14세기부터 이탈리아 해양도시국가 제노바의 지배를 받다가 18세기에 프랑스로 편입됐다.
지리·문화적으로 프랑스보다 이탈리아 쪽에 더 가깝고, 고유어인 코르시카어 역시 이탈리아어와 유사성이 더 크다. 역사적으로 민족주의 진영의 목소리가 강해 무장단체가 프랑스 정부 요인을 상대로 암살과 테러를 벌이기도 했다.
최근에는 강한 민족주의 성향의 자치정부가 새로 들어선 뒤 자치권 확대, 코르시카민족해방전선(FNLC) 등 과거 무장투쟁 조직원의 사면 등을 요구하며 프랑스 정부를 압박했고, 마크롱 대통령으로부터 일정 정도 양보를 끌어냈다.
마크롱 대통령은 지난달 7일 코르시카를 방문해 코르시카의 특별한 지위를 헌법에 명시해달라는 이곳 민족주의 진영의 요구에 긍정적으로 검토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비록 코르시카어와 코르시카 지방경제에 대한 특별한 지위 보장 등의 요구는 거부했지만, 프랑스 대통령이 코르시카를 위해 개헌까지 검토하겠다고 약속한 것은 역사상 유례가 없는 일이다. 전통적으로 강력한 중앙집권체제를 지켜온 프랑스는 일체의 분리주의적인 요구를 거부해왔다.
◇"본국 시민들과 같은 대우 원할 뿐"…독립 움직임은 크지 않아
이처럼 전 세계의 프랑스 해외·자치령에서 분리주의 움직임이 꿈틀대고 있지만, 주민투표를 시행하기로 한 뉴칼레도니아를 제외하면 프랑스로부터 독립하자는 목소리는 크지 않다. 다만, 본국보다 턱없이 부족한 경제 인프라의 확충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훨씬 강한 편이다.
하루하루 생존의 문제가 당면과제인 이들에게 프랑스로부터의 독립(뉴칼레도니아)이나 자치권 확대(코르시카)는 같은 프랑스 영토임에도 먼 나라 얘기처럼 요원할 뿐이다.
마요트의 사례를 보면 이는 더욱 명확해진다.
1970년대에 프랑스로부터 독립한 인도양의 코모로제도의 다른 섬들은 이후 쿠데타 등 정치불안으로 점철돼 훨씬 낙후한 지역으로 전락했다.
이들 섬에서 '프랑스 땅'인 마요트로 끊임없이 넘어오는 난민들로 인해 마요트의 인프라와 치안은 붕괴 직전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프랑스가 과거 제국주의 시대에 무분별하게 점령했던 식민지들을 오랫동안 방치해 뒀다가 곪고 곪은 문제가 한꺼번에 터지고 있는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공교롭게도 이런 요구들의 분출은 프랑스가 전후(戰後) '영광의 30년'을 뒤로 한 채 경제가 침체일로를 걸어오다 마크롱 대통령의 집권 후 부흥을 꾀하는 것과 시기적으로 맞물리면서 프랑스를 더욱 곤혹스럽게 만들고 있다.
프랑스 인구통계연구소의 클로드 발랑탱 마리 박사는 AFP통신 인터뷰에서 "그들의 요구는 교육·경제·보건·치안 등의 분야에서 다른 프랑스 지방들과 같은 기준을 적용해 달라는 것"이라며 "본토 시민이 당연히 누리는 것들을 누리고자 하는 것으로, 이는 더는 예외적인 취급을 바라지 않는다"고 말했다.
yongla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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