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대통령, '87체제' 대수술…5·18 넣고 기본권 업그레이드

입력 2018-03-20 12:05   수정 2018-03-20 17:25

문 대통령, '87체제' 대수술…5·18 넣고 기본권 업그레이드

'민주적 정통성' 바로세우기…부마항쟁·6·10항쟁도 헌법 전문에
기본권 시대변화상 맞춰 대폭 보완…기본권 주체를 '국민'→'사람'
"안전하게 살 권리" 천명…생명권·정보기본권·주거권·건강권
검사 영장청구권을 헌법서 삭제…검경 수사권 조정의 길 열어
국민발안제·국민소환제로 국민의 직접 정치참여 수단 확대

(서울=연합뉴스) 노효동 기자 = 청와대가 20일 공개한 문재인 대통령 개헌안은 한국 사회의 실질적 민주화를 이끈 '이정표적 사건'을 명기했다는 데 큰 의의가 있다.
헌법이 지향하는 정신과 가치를 담은 전문(前文)에 5·18 광주민주화 운동과 부마항쟁, 6·10 민주항쟁이 수록된 것이다.
이는 한국 현대사에 있어 부당한 국가권력에 대한 국민적 저항권을 가장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으로, 한국 민주주의 역사의 정통성과 정의를 바로세우겠다는 문 대통령의 강력한 의지가 반영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아직은 역사적 평가가 진행 중이지만 문재인 정부 탄생의 원동력이라고 할 수 있는 '촛불혁명'의 정신적 젖줄에 해당하는 사건들이라는 점에서 시민혁명에 기초한 민주화 운동의 정통적 계승이라는 의미도 크다.
물론 1987년 9차 개헌과정에서 손질된 기존 전문에도 '자연법적 권리'로서의 저항권은 담겨있다. "대한민국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민주이념을 계승한다"고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 민주주의 역사에 있어 보다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5·18, 부마항쟁, 6·10 항쟁이 반영되지 않은 상태였다. 문 대통령은 이를 단순히 '업데이트'하는 차원을 넘어 민주이념 계승이라는 의미를 분명히 했다.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은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짐은 물론 법적·제도적 공인이 이뤄진 4·19 혁명과 함께 부마항쟁과 5·18 민주화운동, 6·10항쟁의 민주이념을 명시했다"고 밝혔다.
다만 촛불혁명은 현재 역사적 평가가 진행 중이라는 이유로 포함시키지 않았다.
이날 공개된 개헌안의 또다른 특징은 기본권 강화다. 1987년 9차 개헌 당시의 '낡은 옷'을 입고있는 기본권 조항을 시대상황의 변화를 반영해 새롭게 단장한 것이다.
우선 주목되는 것은 기본권 주체를 '국민'에서 '사람'으로 확대한 것이다. 이는 외국인 200만 시대를 맞은 우리 사회의 변화에 부응해 국적에 관계없이 인간으로서의 존엄성과 천부인권적 권리를 누릴 수 있도록 하겠다는 문 대통령의 뜻이 반영된 것으로 볼 수 있다.
'근로'라는 용어를 '노동'으로 바꾼 것도 의미있는 대목이다. 근로는 일제와 군사독재시대 사용자의 관점에서 사용됐지만, 현재 전세계적으로 노동이 보편적으로 쓰이고 있는 점을 감안해 용어를 '정상화'했다고 할 수 있다.
공무원의 노동3권을 원칙적으로 인정한 것은 공무원이 갖는 '노동자로서의 권리'를 확인하는 의미를 갖는다. 현행 헌법 33조2항은 '공무원인 근로자는 법률이 정하는 자에 한하여 단결권·단체교섭권 및 단체행동권을 가진다'고 예외적으로만 노동3권을 허용하고 있다.

가장 주목되는 것은 생명권·안전권·정보기본권·주거권·건강권을 신설한 것이다. 먼저 생명권과 안전권을 헌법상 권리로서 보장한 것은 세월호와 참사와 묻지마 살인사건 등 각종 사고와 위험으로부터 우리 사회가 더이상 안전하지 않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볼 수 있다.
비록 선언적이지만 모든 국민이 안전하게 살 권리를 헌법에 천명하고 국가의 재해예방의무와 위험으로부터 보호의무를 규정함으로써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최우선 목표로 하는 정부의 역할을 강조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생명권 신설은 추후 사형제도 폐지 문제와도 연결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정보기본권의 등장은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 통신의 자유나 언론·출판의 자유와 같은 소극적 권리만으로는 제4차 산업혁명시대에 충분히 대처하기 어렵다는 상황인식에 터잡은 것으로, 알 권리와 자기정보통제권을 명시한 것이 핵심이다.
주거권과 건강권은 사회보장을 국가의 시혜적 의무에서 국민의 기본적 권리로 변경했다는 측면에서 의미가 크다.
이번 개헌안에서는 기소독점주의를 상징하는 검사의 영장청구권 조항이 삭제됐다. 이는 헌법에 영장 청구 주체 규정을 두지 않고 있는 주요 선진국들의 입법례에 따른 것으로, 비록 헌법에서 빠지더라도 검사의 독점적 영장청구권을 인정하고 있는 현행 형사소송법은 그대로 유효하다는게 청와대의 설명이다.
그러나 이는 영장청구를 검사 외의 다른 주체가 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뒀다는 점에서 향후 검경 수사권 조정과 맞물려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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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개헌안에서 정치권이 가장 예민하게 느끼는 대목은 국민발안제와 국민소환제를 신설한 것이다. 이는 현재의 대의 민주주의 체제를 보완하는 직접 민주주의적 요소로서, 국민들이 직접 정치에 참여하는 폭을 확대한다는 측면에서 큰 의미를 갖는다.
국회의원은 명백한 비리가 있어도 법원의 확정판결에 따라 국회의원직을 상실하기 전까지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는 치외법권적 '특권'을 더이상 허용하지 않겠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 실제로 세월호 특별법 입법청원에 600만 명의 국민이 참여했지만 입법 발의가 이뤄지지 않았음을 청와대는 지적했다.
이에 따라 헌법에 대해서만 국민발언제를 허용하는 기존 조항을 바꿔 국민이 '입법자'로서 직접 법률안을 발의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또 '권력의 감시자'로서 국민이 국회의원을 소환할 수 있도록 규정했다.
조국 수석은 "이번 개헌은 기본권과 국민의 권한을 강화하는 국민 중심의 개헌"이라고 강조하고 "'국민의 뜻'에 따라 국가가 운영되고 국민 모두가 '자유롭고' '안전하게' '인간다운 삶'을 누리는 대한민국을 상상해보라"고 강조했다.
rhd@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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