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사인 한국문학번역원장, 취임 기념 기자간담회서 포부 밝혀
(서울=연합뉴스) 임미나 기자 = "문학을 한다는 이들이 대개 '한국문학' 하면 고은, 황석영, 한강, 신경숙, 이승우, 이문열 식으로 한반도 이남 지역의 서울 중심 엘리트 문단 문학의 범위에 무의식적으로 오래 길들어온 측면이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엘리트 문단 문학이 이룩한 성취는 매우 중요하지만, 한국문학번역원이 장차 더 넓은 범위의 한국어문학을 반영해야 합니다."
김사인(62) 한국문학번역원장은 20일 광화문 인근에서 열린 취임 기자간담회에서 향후 한국문학번역원(이하 번역원)의 운영 방향을 이렇게 밝혔다.
그는 또 "공간적으로는 한반도 강역 내에서 이뤄지는 모든 문학, 북한문학까지도 아우르고 해외 동포들에 의해 이뤄지는 범한국어문학까지 번역원의 시야 안에 있어야 한다. 이것이 국가와 민족의 통합 수준을 높여가야 할 시대 상황에 부합하는 것"이라며 "그럼으로써 그간 제약돼 있던 한국문학 콘텐츠의 다양성과 다층성을 넓힐 수 있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시간적으로는 서구식 현대문학이 이 땅에 유입된 이래 통용되고 있는 시·소설, 희곡, 비평 식의 삼분법 문학을 넘어 100여년 전 한국문학의 총체, 전통시대 한국문학의 유산 전체로 심화시켜야 한다. 판소리나 시조, 훈민정음 이전 구비문학의 전통 같은 것까지 깊이 다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세계문학 무대 속에서 한국문학이 깊은 울림을 갖는 것으로 자리잡기 어렵다"고 말했다.
김 원장은 "오늘날 노벨상 수상자 후보로 한국 작가가 거명되고 맨부커(인터내셔널)상 수상 등 성취를 이뤄냈다고 할 수 있지만, '한국문학이 무엇인가' 하는 근본 물음에 우리 자신을 다시 비춰볼 때가 됐다. 이 질문을 깊은 수준에서 병행해나가지 않으면 우리 문학의 해외 번역·출판이 양적으로 늘어도 단발성의 문학상품으로 소비되고 한국문학 총체에 대한 이미지나 개념을 형성하는 데는 성공하지 못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런 포부와 계획을 실현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안으로 번역원 내에 '한국어문학' 연구를 전담하는 부서를 신설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번역원의 임무를 한국문학의 해외 번역·출판을 돕는 기능적이고 소극적인 단위가 아니라 한국문학 총체의 진로를 세계문학이라는 지평 속에 고민하고 모색하는 정책 단위, 국가적 전략 단위로 재규정해보고자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번역원의 올해 사업으로 하반기 미국 코넬대학교 동아시아 시리즈 출판부(Cornell East Asia Program)에서 출간할 예정인 '한국문학 영문판 앤솔로지 사업'을 소개했다. 이는 지난 100여년간의 한국문학 성과를 집약적으로 소개할 목적으로 시대별 주요 단편소설 30편을 3권의 책으로 나눠 영문판으로 출간하는 사업이다.
월북작가 홍명희의 '임꺽정'을 비롯해 김동리의 '황토기', 배수아의 '푸른 국도가 있는 사과', 최인훈의 '그레이구락부전말기', 은희경의 '빈처', 황순원의 '소나기', 박민규의 '그렇습니까? 기린입니다.', 편혜영의 '시체들', 이문열의 '금시조' 등이 포함됐다.
번역원은 "10년 전부터 준비해온 사업인데, 최근 해외에서 한국문학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생각보다 빨리 성과를 보게 됐다. 미국 측과 의견을 교환하고 좋은 번역자를 섭외하는 데 시간이 많이 걸렸다. 애초 100여 종의 작품을 보냈고, 코넬 측에서 그중 30종을 선정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번역원은 올해 또다른 사업으로 가을에 열리는 '서울국제작가축제'를 소개했다. 김 원장은 "이 축제를 영화로 비유하자면 부산국제영화제 같은 세계적인 수준의 문학축제로 규모와 위상을 키우려 한다. 작가들만의 자리가 아니라 독자들, 국민과 함께할 수 있는 축제로 확대하고자 한다. 부족한 예산 문제는 관계 부처를 설득해 차차 풀어갈 것"이라고 했다.
중장기 사업으로는 해외에서 우리 문학작품을 소개할 전문 에이전시 육성, 현재 운영 중인 번역아카데미에 대한 지속적 지원·육성, 번역가들의 작업 공간을 위한 레지던시 프로그램 마련, 한국어문학 정보를 집대성한 온라인 플랫폼 구축 등을 추진한다.
김 원장은 서울대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계간 '실천문학' 편집위원, 계간 '창작과비평' 편집위원, 한국작가회의 사무국장·부이사장 등으로 활동했다. 1981년 시인으로 등단해 '밤에 쓰는 편지' 등 시집을 냈으며, 2003년부터는 동덕여대 문예창작과에서 교수로 일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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