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무일 총장, 박종철 열사 부친 병문안 "고생시켜드려서 죄송"(종합)

입력 2018-03-20 16:22   수정 2018-03-20 21:47

문무일 총장, 박종철 열사 부친 병문안 "고생시켜드려서 죄송"(종합)

이명박 전 대통령 수사 관련 언급은 없어

(부산=연합뉴스) 김재홍 기자 = 문무일 검찰총장이 20일 박종철 열사의 부친 박정기(90) 씨가 입원한 병원에 찾아가 과거사에 대해 사과했다.
현직 검찰총장이 과거사 관련 피해자를 직접 만나 사과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문 총장은 이날 오후 공식 일정으로 부산 수영구 '남천 사랑의 요양병원'을 방문해 박 씨를 만났다.
문 총장은 상체를 숙여 병상에 누운 박 씨와 눈을 맞추며 "그동안 너무 고생을 많이 시켜드려서 죄송하다"며 "저희가 너무 늦게 찾아뵙고 사과 말씀을 드리게 돼 정말 죄송하고 송구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그동안 긴 세월 고생 많았다. (검사) 후배들이 잘 가꾸어서 제대로 된 나라가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약속했다.
문 총장의 사과에 박 씨는 "어차피 벌어진 일이니까 (괜찮다)"고 답했다.
척추 골절로 수술을 받고 지난해 2월 요양차 입원한 박 씨는 거동이 불편해 온종일 누워 지내는 상태다.

두 사람의 대화를 옆에서 지켜보던 박 열사의 대학 1년 후배이자 민주열사박종철기념사업회 사무국장인 이현주(52·여) 씨는 눈물을 쏟았다.
문 총장은 20여 분간의 병문안 뒤에 병원 1층으로 내려와 미리 준비한 원고를 읽었다.
문 총장은 "저희는 1987년의 시대정신을 잘 기억하고 있다. 당시는 민주주의냐 독재냐를 놓고 사회적 격론이 이뤄졌고 대학생의 결집된 에너지가 사회 에너지가 됐다"며 "그 시발점이자 한가운데 박종철 열사가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그 후 (박 열사의) 부친께서 아들이 꿈꾸던 세상을 만들기 위해 지금까지 평생 노력을 다 해왔다"고 덧붙였다.
문 총장은 "오늘 저희는 새로운 다짐을 하기 위해 이 자리 왔다"며 "과거의 잘못을 다시 되풀이하지 않고 이 시대 우리에게 주어진 시대 사명을 다 하겠다"고 말했다.
이날 현장에는 대검찰청 관계자를 비롯해 박 열사의 형인 종부(59) 씨와 누나인 은숙(55·여) 씨를 비롯해 민주열사박종철기념사업회 김세균 회장과 변종준·이강원 이사, 김치하 박종철 30주년 기념행사 추진위원회 기획팀장 등이 함께했다.


문 총장은 '시대 사명을 다하겠다는 발언이 전 대통령 수사와 관련한 것이냐'는 질문에 "그분을 염두에 둔 건 아니다"고 말했다.

병문안은 종부씨가 영화 '1987' 개봉 이후 보도된 인터뷰에서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원회)의 보고서 내용을 언급한 게 계기가 됐다.
진실화해위원회는 2009년 보고서에서 검찰도 박 열사의 고문치사 축소 은폐 조작에 깊이 관여했다는 것을 밝혔고 검찰은 유족에게 사과하라고 권고했다.
문 총장은 이 보고서를 읽어보고 민주열사박종철기념사업회에 박 씨와의 만남을 요청했다.
이 과정에서 박 열사의 친구이자 사법연수원 부원장인 김기동 검사장이 징검다리 역할을 했고 종부 씨는 문 총장의 방문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이날 방문에 앞서 문 총장은 지난달 초에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과 개인적으로 박씨를 병문안하고 공식 일정을 잡았다.
문 총장은 "진실화해위원회 보고서에 검찰이 해야 할 구체적 조치가 있었는데, 그 보고서에도 불구하고 저희가 좀 소홀히 한 게 아닌가 생각이 들어서 여기 오게 됐다"고 말했다.
김세균 회장은 "우리 박 열사 아버님께서 평소 갖고 계시던 피맺힌 울분을 풀고 앞으로 편안한 마음으로 돌아가실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주셔서 대단히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pitbull@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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