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고형규 기자 = "인간의 존엄은 침해될 수 없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21일(현지시간) 연방하원에 나와 신정부 총리로서 첫 국정연설을 하면서 극단주의와 포퓰리즘이 확산하고 이념적으로 더 갈라진 독일사회를 향해 연방 기본법(헌법) 1장, 1조, 1항의 이 문구를 옮겼다.
1장 1조 1항은 이 언명에 이어 "인간 존엄을 존중하고 보호하는 것은 모든 국가권력의 의무"라고 못 박고 있다.
이번 연설은 유럽연합(EU) 정상회의를 앞두고 의원들에게 현안을 보고하고 그간 밝혀온 자기 정견을 재확인하는 의례적인 것이었다.
그러나 '자유세계의 지도자'라는 영예로운 별칭도 따랐던 4연임 장수 총리 메르켈의 기독민주주의에 기반을 둔 중도우파 정치철학과 수사를 일별할 좋은 기회를 제공했다.
그는 연설에서 인간 존엄성 불가침을 상기한 뒤 "폭력, 인종주의, 반유대주의는 우리 법치국가에서 설 자리가 없다"고 단언했다. 그러곤 "연방정부로서 이 분열을 극복하고 새로운 (독일사회의) 결속을 일궈내고 싶다"고 했다.
그는 "무엇이 옳은 길이냐를 두고 논쟁하면서 독일은 분열되고 이념적으로 양극화했으며 더 거칠어졌다"고 짚고 2015, 2106년 내전 중인 시리아 난민을 대거 수용한 것을 방어하며 "당시 이 문제는 인도주의적 예외상황이었고 우린 그들을 긴급한 처지에 빠진 '사람들'로서 받아들인 것"이라고 말해 박수를 받았다.
그는 "그건 독일에 믿기 어려운 시험대였지만 우린 구조적으로 준비되지 않은 상황에서도 대체로 그 과제를 극복했다"고 평한 뒤 "우리나라는 그걸 자랑스러워 할 수 있다"면서 "그러나 더는 유사한 상황이 재발하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메르켈 총리는 "유럽과 독일은 너무 오랫동안, 너무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시리아 위기 문제에 대응했으면서도 위기가 해결되기를 손쉽게 희망했다"면서 "그건 돌이켜보건대 순진무구한 것이었다"고도 했다.
메르켈 총리는 이어 연간 난민 수용 상한선 18만∼22만 명 적용 등 이미 알려진 모두 다섯 가지의 난민 대응 기본원칙을 재정리하는 것으로 난민 위기로 이반된 민심을 달랬다.
메르켈 총리는 호르스트 제호퍼 내무장관의 '이슬람은 독일에 속하지 않는다' 발언 논란에 대해선 앞서 한차례 밝힌 것과 똑같이 "우리와 함께 사는 450만 이슬람교도는 그사이 독일의 일부가 됐다"고 재차 언급하며 논란 확산을 차단하려 했다.그는 다만, "전혀 의문의 여지 없이 우리나라의 역사적 각인은 기독교적이며 유대교적이다"라고 덧붙여 이슬람풍 확산을 경계하는 독일 '주도(중심)문화' 옹호론자들을 역시 헤아렸다.
그는 "우리의 미래는 유럽의 결속에 있다"면서 "소국(小國) 분립주의도, 국가 이기주의도 (대안이) 아니다"라고 했다.
또 미국 등과의 대서양 파트너십과 중국, 러시아에 대한 관계를 고려할 때 외교정책에서 훨씬 더 많은 공통점을 추구해야 하리라 EU 파트너 국가들에 촉구한 뒤 "EU는 함께할 때만 주권, 이해관계, 가치를 방어하고 안녕을 안전하게 확보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메르켈 총리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주도하는 보호무역주의에 대해선 "독일 연방정부는 차단(구획 치기)은 결국 모두에 해를 끼친다고 확신한다"면서 "그래서 미국에 대해 유사시 필요하면 명백한 보복조처를 하겠다고 통상 이야기되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끝으로 "이번 19대 의회 임기가 끝났을 때 우리 사회가 더 인간적이 되고 분열과 양극화가 극복돼 새롭게 결속했으면 하고 바란다"면서 "독일은 우리 모두이다"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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