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루뭉술 금주 구역 지정 갈등 소지…샛길 출입 등 부작용도 우려
음주산행 금지 6일째 곳곳서 마찰, 모호한 경계 놓고 시비 이어져
(전국종합=연합뉴스) 박병기 기자 = 속리산 국립공원 문장대 주변에는 최근 음주 금지를 알리는 현수막이 내걸렸다.
음주산행을 막으려는 자연공원법 시행령 개정안이 지난 13일부터 시행된 데 따른 조치다.
더는 이곳에서 탁 트인 풍광에 취해 '건배'를 외치는 게 불가능하다. 들뜬 기분에 함부로 '정상주(酒)'를 마시다가는 범법자가 되기 십상이다.
이번 조치로 전국의 국립공원 22곳, 도립공원 29곳, 군립공원 27곳에 음주 금지 구역이 새로 만들어졌다. 음주로 인한 안전사고를 막고 쾌적한 탐방문화를 조성하려는 시도다.
국립공원은 대피소(20곳), 탐방로·산 정상(81곳), 암장·빙장(57곳) 등 158곳이 술을 마실 수 없는 장소가 됐다. 도립·군립공원을 합치면 음주 금지 장소는 400곳이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들 장소에서 음주하다 걸리면 5만원의 과태료를 물게 된다. 2회 적발부터는 10만원으로 과태료가 높아진다. 다만 실제 부과까지는 6개월의 계도 기간을 거치도록 했다.
환경부에 따르면 2012∼2017년 국립공원에서 음주로 인해 발생한 안전사고는 64건으로 이 기간 전체 안전사고(1천328건)의 4.8%를 차지했다. 추락사·심장마비 등 음주 사망사고도 10건으로 전체 사망사고(90건)의 11.1%에 달했다.
환경부 관계자는 "자연공원에서 아예 술을 마시지 못하게 하는 게 가장 확실한 방법이지만, 탐방로나 산 정상의 음주를 금지하는 것만으로도 사고 예방 효과가 클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러나 음주산행 금지 엿새째를 맞은 현장에서는 혼란이 여전하다.
전국에서 가장 많은 탐방객이 찾는 북한산의 경우 매일 20여명의 단속반이 산 정상, 탐방로, 대피소, 암장 등 음주 금지 장소 25곳을 오가면서 계도활동을 편다.
북한산 사무소 관계자는 "탐방객이 몰리는 백운대·사모바위·대동문 등에서는 요즘도 거의 매일 술판이 벌어진다"며 "바뀐 규정을 몰라 단속반과 마찰을 빚는 경우도 허다하다"고 설명했다.
이 사무소는 음주 금지 장소에 현수막과 깃발 등을 내걸어 탐방객에게 알리는 중이다.
공원마다 두루뭉술하게 지정된 음주 금지 장소도 시비를 부추긴다.
속리산의 경우 문장대·천왕봉·도명산·칠보산 정상과 산수유암릉 일원이 술을 마실 수 없는 곳으로 지정됐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금지구역이 정확히 어디인지 판단하는 게 쉽지 않다.
문장대만 하더라도 불쑥 솟은 바위 봉우리 아래 평평하게 펼쳐진 공간을 어림잡아 정상부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이곳에서 조금 내려가면 10여명씩 둘러앉아 휴식할 수 있는 장소도 여러 곳 있다. 어디까지 단속구역인지 논란이 생긴다.
속리산 사무소 관계자는 "문장대 주변이라도 평평한 공간에서 벗어난 곳에서 술을 마시는 걸 제재하기가 애매하다"며 "단속에 앞서 경계를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런 문제는 다른 공원도 마찬가지다. 넓은 산속에서 금지구역 위치가 명확지 않고, 경계도 불분명해 단속이 시작될 경우 갈등을 부를 소지가 많다.
음주자들이 사람의 눈을 피해 숲 속으로 숨어들 우려도 있다. 따라서 밀어붙이기식 단속이 이뤄지면 샛길 등반을 부추기는 등 풍선효과가 나타날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국립공원 관리공단도 비슷한 걱정을 한다. 다만 1990년대 초 국립공원 내 취사·야영이 금지됐을 때처럼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탐방문화가 바로 잡힐 것으로 보고 있다.
공단 관계자는 "시행 초기 현장에서 나타나는 문제들은 그때그때 보완하겠다"며 "사고 위험을 줄이기 위한 조치인 만큼 탐방객 스스로 안전을 위해 협조해 달라"고 당부했다.
그는 "연간 4천500만명이 찾고, 면적도 3천972㎢에 이르는 국립공원의 음주를 단속만으로 통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탐방객 스스로 자발적 파수꾼이 돼 안전한 산행문화를 만들어 가자"고 덧붙였다.
bgipark@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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