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얍 판 츠버던 & 경기필하모닉' 공연 리뷰
(서울=연합뉴스) 임수정 기자 = 뉴욕필하모닉의 새 수장 얍 판 즈베던(58)의 '악단 조련 능력'에 새삼 감탄할 수밖에 없는 공연이었다.
지난 22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지휘봉을 든 즈베던은 강력한 카리스마로 경기필하모닉을 쥐락펴락하며 이 악단의 잠재력을 최대치로 끌어냈다. 그가 2012년부터 이끈 홍콩필하모닉의 '압축 성장' 비결을 가늠해볼 수 있는 자리였다.
즈베던은 이틀에 불과했던 짧은 리허설 시간에도 불구, 악단을 시원시원하게 밀어붙이며 쾌감을 전했다.
사실 1부는 다소 삐걱거리며 시작됐다. 바게나르의 '시라노 드 베르주라크'로 힘있게 예열되는 듯했으나, 앙상블이 끊임없이 어긋난 브람스 바이올린 협주곡은 설익은 요리처럼 무대 위에 올랐다.
불안한 앙상블에 악장 사이마다 박수가 등장하는 등 객석도 통 집중하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메인 프로그램인 차이콥스키 교향곡 5번이 연주된 2부는 확 달랐다.
워낙 자주 연주돼 관객들에게 진부하리만치 친숙한 곡이었지만 즈베던과 경기필은 속주와 탄력 넘치는 선율, 명확한 강약 변화로 새로운 재미와 에너지를 선사했다.
1부 도입부의 클라리넷이 제시한 '운명의 테마' 멜로디는 악장마다 그 모습을 바꿔 등장하는데, 즈베던의 다채로운 표현력이 인상 깊었다.
세계적 교향악단 로열 콘세르트허바우 오케스트라(RCO)의 최연소 악장 출신 지휘자답게 그는 현악군 조련에 그 누구보다 능수능란해 보였다. 악구마다 강세와 굴곡을 줘서 입체감을 살렸으며 순간적인 변속과 빠른 템포로 공연 내내 긴장감을 연출했다.
왈츠풍의 3악장은 다채로운 음색과 부풀었다가 사그라지는 리듬감이 일품이었다.
내달리는 속도를 현이 따라잡지 못하기도, 늘 약점으로 꼽히는 관 파트가 시종 거친 소리를 내기도 했지만, 즈베던의 강력하고 시원한 드라이빙은 종결부까지 에너지를 쌓아올리며 청중의 갈채를 끌어냈다.
황장원 음악평론가는 "앙상블을 섬세하게 다듬기보다는 차이콥스키의 야성적인 느낌을 잘 살리는 데 집중한 것 같다"며 "호쾌하고 임팩트(impact·강력한 영향과 충격) 가득한 연주회였다"고 평했다.
박제성 음악평론가는 "즈베던과의 만남으로 악단의 음악 내용이 확실히 달라진 것을 체감했다"며 "지금까지 경기필에서 볼 수 없었던 에너지와 힘이 가득했다"고 말했다.
이어 "현악군을 다루는 발군의 능력과 스펙트럼 넓은 표현력, 급격한 템포 운영에도 근육질의 건강한 에너지가 돋보였다"고 평가했다.
sj9974@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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