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오르는 권력 앞에 '닫은 입', 정권교체 후 열려…물증 확보도 큰 기여
2007∼2008년 검찰·특검 수사의지 놓고는 비판도 제기
(서울=연합뉴스) 방현덕 기자 = 제17대 대통령 선거를 앞둔 2007년 하반기 선거판의 최대 뇌관은 이명박 당시 한나라당 후보가 수많은 투자 피해자를 낸 BBK 투자사기 사건에 거액을 댄 자동차 부품사 다스의 진짜 주인이 아니냐는 의혹이었다.
당시 이 후보가 다스의 실소유주였다는 점이 확인됐다면 재산을 숨긴 비위 등으로 인해 대통령 당선마저 무효가 됐을 수 있던 사안이었다.
하지만 2007년 하반기 서울중앙지검의 수사와 이듬해 초 정호영 특별검사팀의 수사에서도 다스의 실소유주가 이명박 전 대통령이라고 볼 증거가 없다는 결론이 나왔다.
10년이 지난 2018년 서울중앙지검은 이 전 대통령이 다스의 실소유주라고 결론을 바꿨고, 이 전 대통령은 다스 경영비리 등의 혐의로 구속됐다. 법원 역시 "검찰 수사내용의 많은 부분이 소명된다"고 밝혔다.
수사 결론이 바뀐 이유에 대한 검찰의 설명은 이 전 대통령 구속영장에 나와 있다. 검찰은 "이 전 대통령 주변 인사들의 조직적 증거인멸과 말맞추기, 사실 왜곡 등으로 (2007∼2008년에는) 실체적 진실을 규명하지 못했다"고 기재했다.
이는 측근들이 2007∼2008년 당시 검찰과 특검에서 사실과 다른 진술을 일관되게 내놓으며 실체 규명에 협조하지 않았다는 의미다.
2007년 수사에서 검찰은 다스 설립의 자금원이 됐던 도곡동 땅의 지분 중 이 전 대통령의 형 이상은씨의 몫이 '제삼자의 것'으로 보인다는 수사 결과를 내놨다. 이 전 대통령의 것으로 볼 증거는 없지만 그렇다고 이상은씨의 것으로도 보이지 않는다는 취지다. 당시 수사는 이 전 대통령 재산을 관리한 이병모·이영배 씨를 소환하지 못하고 이 전 대통령을 서면 조사하는 데 그친 채 결론을 내렸다.
17대 대선에서 이명박 후보가 당선된 이후인 2008년 초 정호영 특검팀이 발족했지만 역시나 이 전 대통령이 실소유주라는 결정적 증거를 찾지 못했다.
특검팀은 실소유주 의혹을 수사하며 2008년 1월 다스 본사·서울사무소·아산공장, 홍은프레닝 등에 대한 압수수색을 시도했지만, 법원이 영장을 대부분 기각했다. 다스로부터 임의 제출 형식으로 '알맹이 빠진' 자료만 넘겨받을 수 있었다.
검찰과 달리 이병모·이영배씨 등 측근들을 소환하고 관련자를 다수 조사했지만, 이들은 이 전 대통령이 다스의 주인이 아니라고 부인했다.
특검팀은 이 전 대통령을 조사했지만, 음식점에서 '꼬리곰탕'을 함께 먹으며 의혹에 대한 사실관계를 확인하는 방식으로 조사를 진행했다. 이미 대통령 당선인의 신분이었던 이 전 대통령을 두고 특검의 수사 의지가 부족했다는 지적이 나왔다.
결국 2007∼2008년 검찰과 특검 모두 이 전 대통령의 다스 실소유주 의혹이 사실무근이라며 '면죄부'를 줬다.
올해 1월부터 본격화한 검찰 수사는 당시와 여건이 확연히 달랐다.
다스에서 조성된 거액의 비자금 등 경영비리 정황이 포착되면서 과거에 이 전 대통령의 실소유 의혹을 부인했던 다스 내부 인사들이 책임을 덜어내기 위해서라도 '경영을 좌지우지한 사람은 이 전 대통령'이라고 검찰에 털어놓기 시작했다.
이 전 대통령의 자금관리인인 이병모·이영배 씨가 2007∼2008년 당시 거짓 진술을 했다며 태도를 바꿨고 'MB 집사'로 불리던 김백준 전 청와대 총무기획관이나 이 전 대통령의 조카 이동형 다스 부사장 등도 결국 검찰 조사에 협조했다.
설득력 있는 진술이 검찰에 확보되자 법원은 압수수색 영장을 대부분 발부해 주면서 검찰의 실체 규명에 힘을 실어줬다.
과거에는 없었던 결정적 물증이 새로 확보된 점도 다스 실소유주가 이 전 대통령이라는 결론에 도달한 핵심 근거가 됐다. 서울 서초동 영포빌딩 내 다스 비밀창고에서 발견된 3천400건의 청와대 문건이 대표적인 물증이다.
이처럼 10년 전과 판이한 수사성과가 나온 배경을 두고 정치적 환경이 달라졌기 때문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구속기소 후 달라진 사회 분위기 속에서 문재인 정부의 '적폐청산' 기조를 이어가자 검찰 역시 과거에는 각종 난관 때문에 활로를 못 찾던 다스 실소유주 수사를 과감하게 진행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는 거꾸로 말하면 검찰이 2007∼2008년 당시 수사 의지만 투철했다면 일찌감치 진실을 밝힐 수 있었던 게 아니냐는 지적이 된다.
법조계의 한 관계자는 "검찰이 뒤늦게라도 실체적 진실을 찾아낸 것은 평가할 수 있지만 스스로 인정하듯이 당선무효까지 가능한 사안을 적시에 적발하지 못했다는 점은 아쉽다"라고 말했다.
banghd@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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