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보돈 명예교수 '김춘추와 그의 사람들' 출간
(서울=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김춘추(604∼661)는 신라 제25대 임금 진지왕(?∼579)의 손자이지만 왕위 계승에서 밀려났다가 뛰어난 능력을 발휘해 제29대 왕 무열왕이 된 인물이다.
그는 고구려에 접근했다가 실패한 뒤 당나라를 끌어들여 백제를 멸망시켰다는 이유로 사대주의자 혹은 민족을 배반한 자로 비판받기도 한다.
이러한 생각은 신라가 외세의 힘을 빌려 통일하지 않았다면, 넓은 영토를 다스렸던 고구려가 통일의 주인공이 됐을 것이라는 가정으로 이어진다.
신라사를 전공한 주보돈 경북대 명예교수는 신간 '김춘추와 그의 사람들'에서 이 같은 김춘추에 대한 혹평이 정당하지 않다고 반박한다. 무엇보다 민족에 대한 과거와 현재의 인식 차이를 고려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저자는 "당시 삼국 사이에는 서로 같은 뿌리에서 나온 동족(同族)이라는 인식이 전혀 자리를 잡지 못한 상황이었다"며 "삼국은 생존을 위해 철저히 대결할 수밖에 없었고, 다만 서로 비슷하다는 동류의식만 갖고 있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김춘추가 당나라 제도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인 것도 군사적으로 당을 이용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이 꿈꿨던 정치적 이상을 실현하고자 했던 목적이 바탕이 됐다고 지적한다.
김춘추가 마음속에 품은 이상적 정치사상은 유학이었다. 당시 신라는 불교가 매우 강한 지배 이데올로기였으나, 왕이 될 가능성이 작았던 김춘추는 어린 시절부터 유학에 관심을 두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즉 김춘추는 권력욕에 사로잡힌 인물이라기보다는 유학을 근본이념으로 삼아 신라사회를 개혁하고자 했던 선도자였다는 것이 저자의 생각이다.
아울러 저자는 김춘추의 정치적 동지로 가야계였던 김유신(595∼673)도 비슷한 입장에 있었다고 강조한다.
그는 "김춘추와 김유신은 단순히 정치적 불만을 지니고 권력 장악 자체에 목표를 두었다기보다는 신라사회의 근본 모순을 인지하고 이를 혁파하려는 데에 인식을 같이했다"며 "정치와 합치됐던 불교와 달리 유교는 정교(政敎)가 분리된 이데올로기였고, 이러한 측면에서 김춘추는 새로운 시대를 연 주역이었다"고 평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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