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국회의원 선거에서 득표가 저조했던 정당의 등록을 취소하는 내용의 정당법 조항에 대해 국회 관련 소위가 개정안을 마련했다고 한다. 국회가 이 조항의 개정을 논의해온 것은 4년 전 헌법재판소가 위헌결정을 내렸기 때문이다. 그런데 국회 소위에서 여야가 합의한 내용이 헌재의 위헌결정 취지에 여전히 부합하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와 논란이 예상된다. 이 조항의 영향을 크게 받는 군소정당들은 벌써 반발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헌법개정 및 정치개혁특별위원회(헌정특위)의 정치개혁 소위가 개정안에 합의한 건 열흘 전인 지난 15일이다. 국회 속기록에 따르면 합의된 내용은 '임기만료에 따른 국회의원 선거에 두 번 참여해 두 번 모두 의석을 얻지 못하거나 100분의 1 이상의 유효 득표를 하지 못한 경우' 정당등록을 취소한다는 것이다. 2014년 1월 헌재가 위헌결정을 내린 정당법 조항에는 '임기만료에 따른 국회의원 선거에 참여해 의석을 얻지 못하고 득표율이 2% 미만일 때' 등록을 취소한다고 돼 있다. 결정의 근거로 할 국회의원 선거 횟수를 '한 차례'에서 '연속 두 차례'로 늘리고, 득표율 '2% 미만일 때'에서 '100분의 1 이상 유효 득표를 하지 못했을 때'로 바꿨으니 요건을 완화한 건 맞다. 하지만 국회의원 선거의 득표 부진을 정당등록 취소 사유로 남겨둔 것은 문제로 보인다. 이 개정안에 군소정당들이 반발하는 이유도 비슷하다. 녹색당 김주온 공동운영위원장은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정당등록 취소 기준을 둔다는 것 자체가 정당 민주주의를 지향하는 국가에선 있을 수 없는 후진적인 사고방식"이라며 "법 개정이 확정되면 문제를 제기할 것"이라고 했다. 국회가 이 문제를 어설프게 결론 내면 다시 위헌소송에 휘말릴 수도 있을 듯하다.
중앙선관위가 녹색당, 진보신당 등 소수정당들의 등록을 취소하고 다음 선거에서 당명 사용까지 금지한 것은 2012년 19대 총선 직후다. 근거 조항은 정당법 제41조 제4항과 제44조 제1항 제3호였다. 그러자 이들 소수정당은 소송과 함께 해당 정당법 조항에 대한 위헌법률심판제청을 재판부에 신청했다. 재판부도 위헌 소지가 있다고 보고 같은 해 11월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했다. 헌재는 2014년 전국동시 지방선거를 5개월가량 앞두고 재판관 전원 일치로 위헌결정을 내렸다. 헌재는 당시 "정당 설립의 자유를 법률로 제한하는 것은 대의민주주의에서 정당의 중요성을 고려할 때 최소한에 그쳐야 한다"고 밝혔다. 헌재는 특히 대통령선거나 지방선거 결과를 고려하지 않은 채 단지 '국회의원 선거의 부진한 결과'만을 근거로 정당등록을 취소하는 것은 불합리하다고 강조했다. 국회 정치개혁 소위의 개정안은 여야 간 등록취소 요건을 절충한 것이다. 헌재의 위헌결정 취지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지적을 받을 만한 것이다.
신생·군소정당들은 정당법의 이 등록취소 조항 때문에 국회의원 선거 참여를 스스로 포기하기도 했다고 한다. 이는 신생·군소 정당이 국민의 지지를 얻어 굳건한 정당으로 성장할 기회를 원천적으로 박탈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렇게 되면 소수의견의 정치적 결집이 봉쇄되고, 정치적 다양성과 개방성이 훼손될 가능성이 크다. 특히 국회의원 선거 득표율만 갖고 정당의 존립 여부를 결정하는 건 헌법상 결사의 자유를 침해하고 참여민주주의 가치를 해치는 것이라는 지적이 강하게 제기된다. 민주주의의 대원칙은 국민이 지향하는 다양한 가치를 최대한 폭넓게 정치에 반영하는 것이다. 그렇게 정치적 다원성을 중시하는 경향은 갈수록 강해지고 있다. 국회 정치개혁 소위의 이번 개정안은 무엇보다 이런 시대정신에 배치된다. 헌재의 위헌결정 취지나 관련 법리와 상충할 개연성도 있다. 국회가 이런 문제점을 더 충실히 살펴 개정안 내용을 재고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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