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시론] 북미 정상회담에 장애물 놓는 아베 총리 유감

입력 2018-03-26 17:14  

[연합시론] 북미 정상회담에 장애물 놓는 아베 총리 유감

(서울=연합뉴스) 일본이 5월 북미 정상회담 개최 조건의 추가를 미국에 요청했다가 퇴짜를 맞았다. 얼마 전 방미했던 고노 다로 외무상은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 내정자 등과 만나 북한의 중거리미사일 포기와 일본인 납치문제 해결, 화학무기 폐기 등의 약속을 개최 조건에 추가해달라고 부탁했으나 거절당한 것으로 드러났다. 그런데도 아베 신조 총리는 다음 달 방미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만나 이를 다시 거론한다고 한다. 대북 제재만 외치다가 남북, 북미 대화의 급진전에 당황하고 '일본 패싱'을 우려한 듯하다. 사정이 이해는 간다. 그러나 힘겹게 합의한 북미 정상회담이다. 지금도 과연 회담이 열릴지, 열린다 해도 성과는 있을지 모든 게 불투명하다. 북한이 비핵화 의지 표명과 핵·미사일 실험 동결, 한미 군사훈련 양해 등 3가지 약속만 지키면 예정대로 회담한다는 게 미국의 입장이다. 추가조건은 판 자체를 깰 수 있다.

한반도 화해 흐름에 찬물을 끼얹는 듯한 아베 총리의 행보는 이번만이 아니다. 평창 동계올림픽을 계기로 남북화해 무드가 본격화하자, 그는 "북한의 시간벌기에 이용당해선 안 된다"면서 '북한의 미소 외교론'을 폈다. 한국이 놀아나는 것 아니냐는 얘기였다. 지난달 마이크 펜스 미 부통령과 함께 올림픽 개회식 리셉션장에 고의로 지각 도착하고, 문재인 대통령과 만나선 올림픽 이후 예정대로 한미 군사훈련을 해야 한다는 내정 간섭성 발언도 서슴지 않았다. 또한 남북 정상회담 소식에도 대가를 제공해선 안 된다면서 쌀쌀한 반응을 보였다. 그런 태도는 트럼프 대통령의 북미 정상회담 수용 발표를 계기로 바뀌었다. 뒤늦게 남북, 북미 정상회담을 지지하고 나섰지만 체면은 깎였다. 며칠 전 일본을 철강·알루미늄 관세 유예 대상국에서 뺀 공식 발표 석상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한 말은 더 충격적이다. 아베 총리가 '미국을 그토록 오래 이용할 수 있었던 사실이 믿기지 않아'라면서 미소를 짓겠지만 "그런 시절은 끝났다"라고 한 것이다. 오로지 미국만을 추종한 결과가 아닐 수 없다.

전후 일본 민주주의의 요체인 평화헌법의 개헌 추진 강행 결정도 악수다. 일본 여당인 자민당은 25일 평화헌법 제9조의 기존조항을 수정하지 않고 자위대의 존재를 명기하는 개헌안을 공표했다. 제9조 1항(전쟁·무력행사 포기)과 2항(전력보유와 교전권 불인정)을 그대로 두고 개헌안에 '9조의 2'를 신설해 자위대 보유를 명기했다. 공격받을 때만 반격할 수 있다는 평화헌법의 전수방위 조항을 사문화하는 '자위대의 적(敵) 기지 공격능력 보유'까지 가진 않았지만, '전쟁 가능한 군사대국'을 향해 첫걸음을 뗐음은 물론이다. 아베 총리는 "자위대를 명기해 위헌논쟁에 종지부를 찍는 것은 지금을 사는 정치가의 책무"라고 주장했다. 자신을 궁지에 몬 사학 스캔들과 일본 국내외의 반발에도 아랑곳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일본 곳곳에선 반아베 시위가 벌어지고 있고, 전가의 보도였던 '북풍 카드'도 예전같이 못하다. 고립을 자초하는 모습이 안쓰럽다.

미 국무장관에 폼페이오 전 중앙정보국(CIA) 국장,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보좌관에 존 볼턴 전 유엔대사 등 핵심 외교·안보 진용을 대북 초강경파로 전격 교체한 것을 두고 북미 정상회담에 부정적 영향이 있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둘 다 군사옵션 사용과 북한 정권 교체까지 주장해온 대북 매파이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의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에게 완전한 비핵화에 대한 답을 들고 오도록 압박한 것이라는 해석도 있다. 볼턴 내정자는 25일 언론 인터뷰에서 핵 탑재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완성을 위한 북한의 시간벌기 의도를 경계하면서 "바로 본론에 들어갈수록 좋다"고 말했다. 북한 핵의 완전한 폐기를 향해 속도감 있게 밀어붙이겠다는 의미다. 북한은 이러한 미국의 메시지를 엄중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물론 이번 회담이 북미 정상의 결단에 의해 '톱다운'(상의하달) 방식으로 성사된 만큼, 북한도 협상이 속전속결로 진행될 것에 대비하고 있을 것이다. 잇단 대북 매파 인사의 중용을 놓고, 결국 북미 정상회담은 결렬되고 전쟁위험은 커질 것이라는 비관적 견해들도 있다. 낙관도 비관도 경계해야 할 때다. 관련 당사국들은 자국의 소리(小利)를 내세워 판을 흔들려 해선 안 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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