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 요구에 "술 취해 기억 안 난다" 발뺌…대학 교내 통신망에 게재
(포항=연합뉴스) 임상현 기자 = 경북 포항 포스텍(포항공과대)에서도 모 교수가 교내 통신망에 '미투'(Me too·나도 당했다)를 폭로한 글을 올려 파문이 일고 있다.
이 교수는 26일 포스텍 교내 통신망에 '저는 당신의 접대부가 아닌 직장 동료입니다'라는 제목으로 "교내에서 소수자인 여성 교직원과 여학생에 대한 인식 전환과 사회 약자인 비정규직 교직원 인권을 신장하는 계기를 마련하기를 바라며 이 글을 올립니다"라고 적었다.
게시판 글에 따르면 "2015년 봄 A 교수에게서 정말 만나기 어려운 정치적 권력을 가진 분이 포항에 왔으니 '예쁘게' 하고 저녁 식사 자리에 오라는 전화를 받았다. 그날따라 정말 쉬고 싶었지만 네트워킹을 게을리하면 안 되는 처지라 지친 몸을 이끌고 모 식당에 갔다"고 밝혔다.
그는 "A 교수 지인이라는 C씨는 고위 공무원이었다"며 "인사를 나누고 얼마 되지 않아 C씨가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알만한 한 정치인에게 전화를 걸어 저를 바꿔줬고 전화를 끊고 폭탄주를 몇 잔 돌려 마신 뒤 A 교수가 저에게 '예쁘게 하고 오라니까 왜 이러고 왔어?', '평소에는 안 그러더니 치마가 이게 뭐야 촌스럽게…'라며 핀잔을 줬지만 분위기를 깨면 예의가 아닌 것 같아 불쾌한 내색을 하지 않으려고 애썼다"고 설명했다.
또 "식당을 나와 택시를 타고 국제관으로 오는데 C씨가 갑자기 제 손을 잡더니 주물럭거리기 시작했고 그동안 사회생활 하며 남자들 이 정도 추행이 별 놀라운 일도 아니어서 '또 시작이구나!' 싶었고 손을 빼려고 하니 C씨 손이 제 허벅지 부위로 제 손을 따라 왔는데 마침 목적지에 도착해 황급히 택시에서 내려 더 이상추행은 피할 수 있었다"고 했다.
이어 "정색을 하고 화를 내려는데 A 교수는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로 취해 있었고 C씨는 그 정도는 아니었어도 술에 취한 상태였다"고 강조했다.
그는 "다음날 C씨가 카톡으로 주말에 서울에 오면 단둘이 만나서 저녁 식사를 하자고 했지만 또 무슨 짓을 당할지 몰라 거절한 뒤 A 교수에게 전화로 사실을 말하고 화를 냈다"며 "A 교수는 자기가 대신 사과한다며 알아서 책임지고 처리하겠다고 말했다"고 강조했다.
이와 함께 "얼마 전에는 A 교수가 미래융합포럼이라는 것을 만든다며 간사를 맡으라고 제안했지만 거절했다"며 "나중에 확인해 보니 A 교수가 운영위원장을 맡은 미래융합포럼 운영위원에 최근 성폭력 가해자로 지목된 조재현 등이 있었다"며 "그때 간사를 맡지 않은 것이 천만다행이다"고 덧붙였다.
그는 "요즘 미투 운동이 언론에 나오는 것을 보며 그때 일이 떠올라 수면장애와 만성 위장병에 시달리고 있다"며 "내가 우습게 보이게 잘못 행동했는지 반문하면서 수치스럽기도 하고 비전임 교수라서 그런가 심한 자괴감마저 든다"고도 했다.
또 "지난 2월 26일 A 교수에게 본인과 C씨 사과문을 보내 줄 것을 요청했는데 A 교수가 이제 와서 C씨 사과를 받아내기가 쉽지 않다고 하는 답변을 들었다"며 "이달 초에도 A 교수와 마지막 메시지에서 C씨의 사과를 받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말만 되풀이했을 뿐 아직 사과를 받아 주거나 이에 특별한 조처를 한 것이 없다"고 주장했다.
이밖에 "A 교수를 비롯해 저를 동료 교수가 아닌 성적 대상으로 보거나 고용 불안정을 악용해 선심 쓰는 척하면서 무료 봉사를 시키는 등 사적인 이익을 취하려는 분들에게 '저는 당신 접대부가 아닌 당신 직장 동료입니다'라고 말하고 싶다"며 "사회생활을 하며 누구나 한 번쯤은 겪을 법한 사소한(?) 것일 수 있으나 학내에서 다시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이기에 저의 아픔을 포스텍 구성원과 공유하기 위해 이 글을 올린다"고 말했다.
포스텍 관계자는 "익명의 제보는 대응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지만 사안 중대성을 참작해 대학 차원에서 즉시 조사에 들어가 진상을 규명할 방침이다"고 밝혔다.
shlim@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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