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통상학회 간담회…"불리했지만 선방" vs "처음부터 끌려갔다"
"車 양보로 피해 줄였지만 픽업트럭 관세 연장 아쉬워"
(서울=연합뉴스) 김동현 기자 = 통상 전문가들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개정협상 결과에 대해 기업들에 큰 부담이 되는 '불확실성'을 조기에 제거한 점을 높게 평가했다.
다만 미국의 통상압박에 일방적으로 끌려가는 바람에 수입규제에 대한 충분한 안전장치를 확보하지 못한 채 자동차를 양보하는 등 아쉬운 부분이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김영한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는 한국국제통상학회가 27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한미FTA 개정협상,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를 주제로 개최한 간담회에서 "가장 평가할 만한 대목은 비교적 조기에 한미FTA 개정협상과 철강 부문 협상을 마무리 지어 시장에서의 불확실성을 제거했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박천일 한국무역협회 통상지원단장도 "한미FTA 개정협상과 철강 관세 면제를 신속히 일괄 타결함으로써 불확실성을 조기에 해결한 것이 가장 큰 성과"라며 "기업들은 이제 대미 수출과 투자전략을 보다 안정적이고 체계적으로 마련할 수 있게 됐다"고 평가했다.
참석한 전문가들은 불확실성 제거가 성과라는데 대체로 동의하면서도 픽업트럭 관세 20년 연장 등 이번 협상에서 양국이 주고받은 내용의 득실에 대해서는 평가가 엇갈렸다.
표인수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는 "이번 협상은 정상적인 협상이 아니라 트럼프식의 힘을 배경으로 한 전방위 압박이라는 '협상 프레임' 때문에 매우 불리한 협상이었다"면서 "힘을 배경으로 한 트럼프식 협상 프레임에서 비교적 선방했다"고 밝혔다.
박 단장은 "자동차 관세 재부과와 미국산 부품 의무사용, 역내 부가가치 기준 상향 등 업계 우려가 컸던 내용이 빠져 선방했다"면서도 "픽업트럭은 관세 철폐 시기가 20년 뒤로 미뤄지면서 신규시장 진입 기회를 놓친 게 아쉽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철강 면제와 연계해 자동차와 의약품 부문에서 미국 요구를 수용한 내용은 단순히 협상 결과의 득실만 따진다면 '지는 게임(losing game)'으로 볼 수 있는 측면도 있다"고 지적했다.
정부가 미국의 통상압박에 세계무역기구(WTO) 등 다자체제가 아닌 양자협상으로 대응한 게 안 좋은 선례를 남겼다는 주장도 나왔다.
김도훈 전 산업연구원 원장은 "자유롭고 공정한 국제무역질서 존중을 통상기조로 삼는 우리나라가 미국의 대부분 무리한 문제 제기에 부응해 양보한 협상이 되고 말았다는 점은 앞으로도 나쁜 선례로 남을 수 있다"고 말했다.
표 변호사도 "철강 분야의 쿼터 합의는 국제 통상 규범상 인정되지 않는데, 스스로 인정함으로써 다자간 통상 규범의 틀을 깨는 좋지 않은 선례를 남겼다"며 "타 국가들과의 협상에서도 동일한 적용을 요청받을 경우 거절할 명분이 없다"고 지적했다.
정인교 인하대 대외부총장도 "쿼터의 문제점을 그다지 제기하지 않고 있는데, 쿼터는 보호무역 수단 중에서도 가장 안 좋은 제도"라며 쿼터를 언제까지 하는지 기간에 대한 언급이 없는 점을 문제 삼았다.
김 교수는 "가장 우려되는 대목은 향후에도 기존과 같이 WTO 규정을 무시한 일방적 반덤핑 규제와 세이프가드, 미국의 안보위기를 빌미로 한 일방적 보호무역조치를 억제할 구체적인 제도적 틀을 이번 협상에서 전혀 마련하지 못했다는 점"이라고 밝혔다.
정부가 미국의 힘의 논리에 끌려가기만 하는 등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는 지적도 나왔다.
최병일 이화여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협상을 끝내고 개선장군처럼 무용담을 늘어놓고 있는데, 이번 협상에 대한 학점을 주면 C+"라며 "최악을 피한 차악을 선택한 것이지 차선이 아니며 처음부터 끝까지 끌려간 협상"이라고 비판했다.
최 교수는 이번 협상이 트럼프 행정부와 문재인 정부의 첫 통상갈등이라면서 "철강 면제를 받기 위해 너무 올인해서 '한국은 밀면 밀리는구나'라는 인식을 주면서 앞으로 엄청난 대가를 치를 수 있는 단추를 끼웠다"라고 주장했다.
최 교수는 "처음부터 양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는 점에 일부 동의하지만 '기울어진 운동장'을 평평하게 하려고 시도했을지 의문"이라며 "최소한 칼집을 보여주면서 날카로운 모습을 보여줄 수 있지 않았을까"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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