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부, 국정화 '청와대 손발' 노릇…"방관 넘어 적극 동조"

입력 2018-03-28 15:43  

교육부, 국정화 '청와대 손발' 노릇…"방관 넘어 적극 동조"
황우여 전 장관, 토론회서 반대의견 압도하자 담당팀장 질책
"중립적 시각서 교육정책 추진 풍토 아직 요원"




(서울·세종=연합뉴스) 공병설 고유선 기자 = 박근혜 정부가 여론을 무시하고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교육부는 철저히 청와대 손발 노릇을 한 것으로 나타났다.
역사과서 국정화진상조사위원회가 28일 발표한 조사 결과를 보면 교육부는 청와대 지시에 적극 동조하거나 침묵으로 일관하면서 국정화 논리를 홍보하고 산하 기관을 동원해 불법 행위도 마다치 않았다.
백년대계인 교육을 책임지는 주무부처가 많은 국민의 반대로 논쟁이 뜨거운 정책을 추진하면서 정당성과 민주성을 확보하려고 노력한 흔적을 찾기 어렵다는 게 진상조사위 전언이다.
진상조사위는 "교육부는 역사학계와 교육계가 전부 좌편향이라거나 국정화 외에는 대안이 없다는 극단적 견해가 잘못이란 점을 알면서도 바로잡으려 하지 않았고 청와대와 여당에 최소한의 문제 제기조차 안 했다"고 꼬집었다.
교육부 공무원들은 '청와대 지시', '장·차관 지시'라는 이유로 많은 위법·부당 행위를 기획하고 실행에 옮겼다.
상명하달식 조직문화를 고려해도 국민에 대한 봉사자로서 공익을 추구해야 할 책무와 교육 전문가의 정체성을 저버린 채 권력 눈치보기에 급급했다는 비판은 피할 길이 없어 보인다.
교육부는 교과서 발행체제 개선 여론조사를 하면서 국정화에 유리한 결과를 끌어내려고 설문 내용에 직접 개입했고, 여론조사 비용도 제대로 지불하지 않았다.
2014년 6월과 9월 각각 한국교과서연구재단과 한국교육과정평가원에 맡겨 진행한 여론조사 때는 비용 지급 없이 조사 대행을 요청했다.
또 국정교과서 홍보 리플릿을 시민단체 명의로 만들어 배포했고 여당 의원에게 국정화 홍보를 위한 발언자료와 방송출연 시나리오도 제공했다.
국정화에 찬성하는 일부 학자와 역사교사 기고문을 언론에 싣도록 유도하는가 하면 교육부 담당자가 기고문을 작성하거나 수정해 전달하는 일도 있었다.
2014년 교과서 발행체제 개선 방안 연구용역을 할 때는 교육부 담당 연구사가 연구진에게 "연구결과가 국정화 반대쪽으로 나오지 않게 해달라"는 요청도 했다.
그해 8∼9월에는 국정화 공론화를 위한 토론회를 두 차례 열었다.
1차 토론회 발표자와 토론자로 참석한 역사연구자와 역사교사 13명 중 3명을 빼고 나머지가 명확한 반대 의사를 밝혔다.
그러자 황우여 당시 교육부 장관은 역사교육지원팀장을 질책했고, 이튿날 '2차 토론회에는 국정화 지지자를 중심으로 참여시켜 긍정적 여론을 조성할 것'이라는 보고서가 작성됐다. 2차 토론회에는 역사교육계와 관련성이 적거나 교육부에 우호적인 단체 관계자 등이 주로 참석했다.
교육부는 또 국정교과서 개고본(改稿本) 현대사 부분을 검토해 국사편찬위에 수정·보완을 권고했고, 편찬위원장은 집필진 협의 없이 해당 내용을 대부분 수정해 집필진의 반발을 불러왔다.



일각에서는 무리한 국정화 시도가 이처럼 물거품이 된 뒤에도 중립적 시각에서 교육정책을 추진하는 풍토가 아직 마련되지 않았다는 시각이 있다.
박근혜 정부가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추진한 것이 '교육 적폐'로 규정됐지만 정권 철학에 따라 교과서를 뜯어고치려는 시도는 여전하다는 것이다.
한 예로 초등학교 사회교과서 집필책임자였던 박용조 진주교대 교수는 최근 교육부와 출판사가 교과서 속 '대한민국 수립' 표현을 본인 동의 없이 '대한민국 정부 수립'으로 바꾸는 등 수정했다며 이의를 제기했다.
'대한민국 수립'과 '대한민국 정부 수립'은 역사교과서 국정화 추진 당시를 포함해 진보와 보수 진영에서 논란이 이어지는 문제다.
올해 초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새 검정 역사교과서 집필기준을 마련하는 과정에서도 정책연구진이 집필기준 시안을 만들며 6·25가 북한의 남침으로 발발했다는 표현을 빼 논란이 일기도 했다.
kong@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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