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방 혼란 책 계속할 경우 월드컵 반쪽 대회 될 수도
(서울=연합뉴스) 유영준 기자 = 서방의 전례 없는 대규모 외교관 추방조치에 맞서 상응하는 보복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일단 엄포를 놓았지만 막상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취할 수 있는 실제 보복조치는 그렇게 많지 않을 것이라고 영국의 일간 텔레그래프가 27일 분석했다.
푸틴 대통령을 비롯한 러시아 지도부가 이전에는 유야무야 넘어갔던 스파이 독살 시도가 이처럼 초대형 파문으로 번질지 미처 예상치 못했던 만큼 현재 매우 곤혹스러운 상황에 부닥쳤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그리고 이번 사건은 우크라이나 동부 내전이나 미국 대선 개입 등 그동안 푸틴이 추진해온 서방 혼란작전이 결국 제 발목을 잡는 역효과로 돌아오기 시작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현명한 계획을 수립해 수십 년간 쇠퇴에 빠진 조국을 재건하는 대신 서방을 혼란에 빠트리는 말썽꾸러기 게임을 펼쳐온 푸틴의 자업자득이라는 것이다.
푸틴 등 러시아 지도부는 당초 서방 진영 한복판에 치명적인 신경작용제를 살포함으로써 과연 브렉시트로 분열에 빠진 유럽이 단결할 수 있을지를 시험했을 것이라는 게 서방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자신들의 책임을 전면 부인하면서 적들의 반응을 테스트하는 것은 푸틴 작전 스타일의 전형적인 특징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러시아 개입에 대한 결정적 증거가 아직은 없다는 일부 회원국들의 주장에도 불구하고 미국과 유럽연합(EU)이 150명의 러시아 외교관을 추방하는 예상외의 단결력을 과시함으로써 푸틴의 당초 예상이 완전히 빗나간 셈이다.
특히 캐나다와 헝가리, 호주 등 광범위한 국제사회가 러시아의 무책임한 개입을 비난하는데 동참함으로써 푸틴의 국제적 고립이 더욱 악화하고 있다. 여기에 영국 노동당 등 평소 러시아에 동정적인 세력들의 내부 입지도 약화하고 있다.
외교관으로 위장한 정보요원들이 주요 서방국들로부터 대거 추방됨으로써 러시아의 대외 첩보망이 사실상 해체된 것이나 다름없다는 게 서방의 집단 대응을 주도한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의 주장이다.
미국은 자국 주재 60명의 러시아 외교관을 추방하면서 잠수함 기지와 보잉 항공사와 인접한 시애틀 주재 러시아 영사관의 철수를 요구했다.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도 기존 외교관 추방과 신규 부임 저지를 통해 30명 가운데 10명을 축소했다. 서방의 핵심 시설이나 기관에 대한 정보 수집활동이 타격을 받게 된 것이다.
러시아는 서방의 집단 조치에 상응하는 보복을 다짐했지만 실제 그가 취할 수 있는 대응 조치는 그렇게 많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특히 국제사회에서 사실상 고립상태에 처한 만큼 서방처럼 동조에 나설 우군이 거의 없는 상황이다.
이란이나 시리아 같은 우군에 도움을 요청할 수 있지만 알다시피 이들은 지금 도움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다.
자국으로부터 미사일 기술을 전수해 간 북한도 러시아 편이기는 하나 북한의 김정은은 현재 미국과 직접 대결을 피하는 데 전력을 집중하고 있다.
러시아가 인접 발트 해 연안국에 군사적 위협을 가하는 군사 모험주의나 서방에 가짜 뉴스를 퍼뜨리는 사이버 공격을 계속할 경우 이는 자칫 러시아에 최악의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
바로 얼마 남지 않은 월드컵 축구대회이다.
이미 일부 EU 회원국들이 대회 보이콧을 거론하고 있는 상황에서 만약 러시아가 상황을 악화하는 조치에 나설 경우 국제사회에 보이콧 여론이 급속히 확산할 수 있다.
월드컵을 통해 러시아의 대외 이미지 개선과 자신의 통치기반을 강화하려던 푸틴의 구상이 큰 차질을 빚을 게 분명하다.
그동안 막대한 국력을 소진해 준비해온 월드컵이 반쪽 대회로 전락할 경우 압도적 대선 승리를 안겨준 푸틴에 대한 국내의 여론도 반전할 것이 분명하다.
적의 내부에 혼란을 조장하는데 탁월한 기량을 과시해온 푸틴은 서방과의 대립을 국내 정치에 이용해 대선 등에서 큰 성공을 거뒀다. 그러나 과유불급이랄까, 너무 나아가는 바람에 위기를 자초하고 있는 셈이다.
yj3789@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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