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송영의 섬세한 필치 생생한 유고집 '나는 왜 니나…'

입력 2018-03-28 16:59  

소설가 송영의 섬세한 필치 생생한 유고집 '나는 왜 니나…'
러시아 작가대회 연설문 '나의 톨스토이' 담긴 미완성 중편 등 수록



(서울=연합뉴스) 임미나 기자 = 많은 문학도의 존경을 받는 문학평론가 김현(1942∼1990)에게서 "소설로서 거의 완벽한 구성을 가진 뛰어난" 작품이라는 평은 아무나 받지 못했다. 이런 드문 상찬을 받은 주인공은 소설가 송영(1940∼2016). 그의 유고집이 별세 후 1년 반 만에 세상에 나왔다.
요즘 젊은 세대에게는 많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그는 1970년대를 대표한 작가다. 1967년 계간 창작과비평 봄호에 단편 '투계'를 발표하며 등단해 소설집 '선생과 황태자', '지붕 위의 사진사', '비탈길 저 끝방', '발로자를 위하여', '새벽의 만찬' 등을 냈다.
특히 1977년 출간한 장편소설 '땅콩껍질 속의 연가'는 큰 인기를 끌며 베스트셀러가 됐고 이듬해 동명의 뮤지컬 공연과 1979년 신성일, 임예진, 오현경 등 당대 인기 배우들이 주연한 영화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이번에 출간된 유고 중·단편 소설집 '나는 왜 니나 그리고르브나의 무덤을 찾아갔나'(문학세계사)는 작가를 추억하는 오래된 독자들이 우선 반가워할 만한 책이지만, 지금의 젊은 독자들도 읽어보면 그의 다른 작품들까지 찾아보고 싶어질 만한 작품집이다.
이 책에는 표제작인 중편 '나는 왜 니나…'를 비롯해 단편 '화롄의 연인', '라면 열 봉지와 50달러', '금강산 가는 길'까지 네 편의 유작과 작가의 대표작 중 하나인 단편 '투계', 작가 연보, 해설 등이 실렸다.
이 중에서 표제작인 '나는 왜 니나…'는 작가 특유의 섬세한 필치가 잘 살아있는 수작이다. 미완성으로 남아 큰 아쉬움을 남기는데, 완성됐다면 근사한 경장편소설이 됐을 것으로 짐작된다. 작가의 자전적 경험을 토대로 한 소설로 보이는데,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진솔한 고백이 독자의 마음에 와 닿는다.
이야기는 여행기 형식을 취하고 있다. 작가인 주인공 화자가 이전의 러시아 여행에서 마음을 나눴던 친구 '니나'의 묘지를 보러 러시아에 다시 짧은 여행을 와 겪는 이야기다. 특별한 사건 없이 모스크바의 시내 거리를 배회하거나 니나를 소개해준 고려인 러시아 작가 A의 집에 가서 며칠을 머무는 이야기 등을 담담하게 이어가며 그 중간에 과거의 러시아 여행기와 자신의 삶에서 큰 사건이었던 친형의 죽음, 군대 탈영과 수감에 얽힌 이야기도 들려준다.
특히 중간에 끼어든 과거의 러시아 여행기가 인상적이다. 그는 7년 전인 2005년 첫 러시아 여행에서 우연히 고려인 출신 러시아 작가 A를 따라 톨스토이 영지에서 열린 '세계 작가 대회'에 참가하게 됐는데, 행사 말미에 자신이 발표할 차례가 된다. 한국 문학작품이 번역된 것이 거의 전무해 러시아 작가들에게서 시종일관 무관심의 대상이었던 그가 긴장과 걱정 속에 '나의 톨스토이'란 글을 발표한다. 이 글은 송영 작가가 실제로 2005년 열린 그 행사에서 발표해 러시아 작가들의 큰 호응을 얻었다고 한다. 이 글에는 작가가 어린 시절 친형을 잃은 사연과 대학 1학년 때 우연히 톨스토이의 작품을 만나 글쓰기의 위대함을 느끼고 작가가 되기로 결심한 이야기가 담백하게 담겨져 있다. 간결하면서도 삶에 대한 깊은 고뇌와 성찰이 느껴지는 진실한 이야기가 큰 울림을 주는 글이다.
"삶에 대한 진지하고 또 진지한 성찰을 가능케 하는 이 글의 힘이란 어디서 오는가? 그때 이전에 나는 글을 쓴다는 건 다만 재능으로 흥미로운 얘기를 전개하거나 자기 경험담을 멋지게 펼쳐 놓는 일로만 생각했지, 그것이 삶의 자세를 성찰하고 의미를 규명하는 아주 심각한 작업이 될 수도 있다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그것을 그 책은 내게 명백하게 일깨워준 것이다. (중략) -그렇다. 만약 이런 글을 몇 줄이라도 쓸 수만 있다면 한번 생을 걸어 보는 것도 좋다." (본문 112쪽)
이에 더해 이 소설에는 주인공 화자가 왜 니나를 찾아가려고 하는지 명쾌한 답을 내놓지 못한 채 자신의 내면을 탐구해 나아가는 과정이 담겨 있다. 그 여정이 중간에 끊기지만,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소설의 화자, 즉 작가와 점점 더 교감하게 된다. 이 소설 완결을 앞두고 작가는 다른 단편 '금강산 가는 길'을 남북 교류 복원 시점에 맞추기 위해 먼저 서둘러 썼다고 하는데, 이야기의 후반부가 흥미진진하게 전개되려고 하는 시점에 중단돼 못내 아쉬움을 남긴다.
334쪽. 1만4천원.
mina@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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