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장 면적 56배 산림 소실…10시간 넘게 확산해 피해 속출
(고성=연합뉴스) 이종건 양지웅 기자 = "대피방송 듣고 나와 보니 어느새 불이 집 앞까지 와있더라고. 집에 불이 붙을까 호스로 물을 뿌리고 난리였어."
28일 오전 매캐한 연기가 가득한 고성군 죽왕면 가진리에서 만난 김모(56)씨는 30여 분 전에 있었던 일을 떠올리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김씨는 "다행히 마당까지 내려온 산불이 집을 비켜가 화는 면했다"며 "살다 살다 이런 일은 처음 겪는다"고 손사래를 쳤다.
이날 오전 고성군 간성읍 탑동리에서 발생한 산불은 때마침 불어닥친 강풍을 타고 손 쓸 새도 없이 퍼졌다.
바닷가 쪽으로 번진 산불은 순식간에 7번 국도를 넘어 가진리를 덮쳤다.
대피방송을 듣고 집 밖으로 나온 주민들 가운데 노약자와 어린이 등은 인근 초등학교를 비롯한 대피장소로 몸을 옮겼다.
남은 주민들은 혹시라도 집에 불이 붙을까 봐 주변에 물을 뿌리며 소방대원들을 도와 진화작업을 펼쳤다.
대피소로 지정된 인근 초등학교와 체육관에는 노인과 어린이 등 주민 60여명이 불길과 연기를 피해 모여들었다.
이들은 함께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고 서로를 위로했다.
일부 노인들은 급하게 대피하느라 혈압·당뇨·심장약 등을 챙기지 못해 부랴부랴 보건소 직원에게 부탁해 약을 받기도 했다.
고성 공설운동장에 딸과 함께 대피한 이선자(72)씨는 "아침에 바닷일을 나갔다가 집으로 돌아오는데 마을에 연기가 자욱해 숨도 못 쉴 지경이었다"며 "큰길 건넛집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고 말했다.
이어 "마침 집에 있던 딸이 급히 옷가지와 약을 챙겨 피신하게 됐다"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소방대원들은 주택가 곳곳에 소방차를 대기시키고 산불이 집 가까이 접근하면 그 즉시 물을 뿌려 진화했다. 덕분에 가진리를 덮친 산불은 주택이나 인명 피해 없이 마무리됐다.
하지만 산불이 시작된 곳에서 가까운 죽왕면 향목리 일대는 피해가 심각했다.
고성군 공공시설인 환경자원사업소는 완전히 폐허가 됐다.
폐기물분리시설 등 4채의 건물은 뼈대만 남은 흉물스러운 모습에 희뿌연 연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앞마당에 놓인 압축재활용품 더미에 붙은 불은 손을 쓸 수 없을 정도로 시뻘건 불길을 토해내고 있었다.
주변 30여m 정도에서도 열기를 느낄 수 있었다.
한 직원은 "인근에서 난 산불이 순식간에 덮치는 바람에 그야말로 속수무책이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직원은 "사업소가 국도에서 한참 떨어진 곳에 있고 진입로 주변으로 산불이 번지는 바람에 제시간에 출근할 수도 없었다"며 "산불에 소실된 건물들을 보니 참담하다"고 안타까워했다.
고성군 산림양묘장도 산불에 무사하지 못했다.
화염에 녹아내린 철골조 건물 내부는 산불이 수 시간 전 지나갔지만, 여전히 꺼지지 않은 불씨가 이글거리고 있었다.
환경자원사업소 인근에 있는 한 축산농가도 가슴을 쓸어내렸다.
미처 대피시키지 못한 소 60마리가 있는 축사 주변으로 산불이 접근하면서 위급한 상황이 연출됐다.
농장 주인은 어찌할 바를 몰라 발을 동동 구르며 주변 사람들을 붙잡고 도와달라고 애원했다.
축사 안에서는 위기를 느낀 소들의 울음소리가 밖으로 흘러나와 주위를 안타깝게 했다.
다행히 산불은 축사 주변만 태운 채 건물로 옮겨붙지는 않았다.
소방차와 진화대원들이 때마침 도착해 위기를 가까스로 모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인근 한 주택에서는 미처 대피하지 못한 개들이 불에 타 폐사하고, 산과 가까운 도로에서는 털이 그을린 개들이 갈 곳을 잃고 배회하는 등 안타까운 장면이 이어졌다.
이날 산불은 오후 5시 현재 축구장 면적(7천140㎡)의 56배에 달하는 40㏊ 산림을 태우고 10시간 넘게 이어졌다. 현재 산불 진화율은 90%를 보이나 산세가 험하고 강한 바람이 불어 진화에 애를 먹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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