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거 당시 동아태차관보, 韓에 "어떠한 경우도 군사적 방법 회피 희망"
(서울=연합뉴스) 김효정 기자 = 1987년 6월 민주화 항쟁의 바람을 타고 그해 7∼9월 벌어졌던 노동자 대투쟁 당시 미국 정부가 한국 정부의 군(軍) 동원 가능성을 강력하게 경계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30일 공개된 1987년 9월 외교문서에 따르면 미국은 당시 노동쟁의에 대응하는 데 있어 어떤 경우에도 군사적 방법은 피하라는 메시지를 한국 정부에 전달했다.
개스턴 시거 당시 미 국무부 동아태 담당 차관보의 그해 9월 13∼15일 방한을 앞두고 외무부 미주국이 작성한 '참고자료'를 보면 시거 차관보는 9월 4일 김경원 당시 주미대사에게 "노사문제 해결을 위한 한국 정부의 노력 및 어려움을 이해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시거 차관보는 노사 간 대화를 통한 정상적 방법으로 사태 수습을 기대한다며 어떠한 경우도 군사적 방법 회피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군 사용시 민주 발전 의지에 대한 미 조야의 오해 초래가 우려된다고 덧붙였다.
당시는 7월 울산 등 대규모 공장 밀집지역에서부터 일기 시작한 노동쟁의의 물결이 8월을 거치며 확산하던 상황이었다. 정부는 9월 4일 울산 현대중공업과 대우자동차 부평공장에 경찰력을 투입해 170명 이상의 노동자를 연행하기도 했다.
시거 차관보는 이후 방한해 정호용 당시 국방장관을 만났을 때도 군 동원 가능성에 대한 우려를 거듭 피력했다.
그해 9월 14일 시거 차관보와 국방장관의 대담기록에 따르면 시거는 "이유 여하를 불문하고 군이 동원(군의 정치개입)된다면 미국에서는 한국군에 대해 매우 좋지 못한 인식(unfortunate perception)을 갖게 될 것이 분명하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국방장관은 "그간 군이 사용될 수 있었을 상황이 없었던 것은 아니나 인내하고 자제해 왔다"며 "좌경화를 방지하는 일을 제외하고 군이 개입하는 것은 모두 원치 않고 있다"고 주장했다.
시거 차관보는 6월 항쟁의 한복판이던 그해 6월 23일에도 방한해 한국 내 상황을 살폈다. 당시 '외무장관 시거 차관보 면담 보고' 자료에 따르면 그는 최광수 당시 장관에게 "보다 폭넓은 지지를 받는 정치제도로의 변천이 필요하다"는 뜻을 밝혔다.
kimhyoj@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