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무일, 기자간담회서 '검찰패싱'에 강한 불만
"경찰 통제는 필요"…7년 만의 수사권 조정, 접점 못 찾나
(서울=연합뉴스) 안 희 기자 = 청와대가 관계기관으로부터 의견을 수렴해 윤곽을 잡아가고 있는 검경 수사권 조정안에 대해 문무일 검찰총장이 29일 기자 간담회에서 작심한 듯 강도 높게 비판하면서 7년 만에 추진되는 수사권 조정 작업이 다시 고비를 맞았다.
문 총장의 발언에서 수사권 조정 논의 내용에 대한 검찰의 대응 논리가 대체로 드러났다. 수사권 조정을 위해서는 대선공약인 자치경찰제 도입이 전제돼야 하며 경찰의 수사종결권 등 사법통제의 '사각지대'는 인정돼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자치경찰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검찰의 주장은 경찰로서는 당장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경찰 업무의 대대적 개편이 필요한 사안이기 때문이다. 경찰 수사에 대한 사법적 통제장치가 있어야 한다는 주장 역시 수사권 독립을 원하는 경찰과 절충점을 찾기 어려운 사안이다.
이 때문에 정부가 추진 중인 수사권 조정은 검찰의 강력한 반발 속에 또다시 표류하는 게 아니냐는 관측이 뒤따른다.
앞서 수사권 조정은 2011년에 국회가 경찰의 독자적인 수사개시권과 수사진행권을 입법화하는 선에서 그쳤다. 7년 만에 재개된 수사권 조정은 해법을 찾기 어려운 두 기관의 이해충돌 속에 장기화할 가능성이 점쳐진다.
법조계의 한 관계자는 "검찰에 집중된 권한을 분산하자는 취지를 담은 수사권 조정은 각론 하나하나를 두고 검경의 첨예한 입장차가 있다"며 "정부 안을 만든다고 해도 국회 논의에 이르기까지 진통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 "경찰에 수사 종결권, 상상하기 어렵다"
문 총장은 정부가 논의 중인 조정안 내용에서 경찰에 수사종결권을 주는 등 재량을 넓히면서도 민주적 경찰권 통제 방식인 자치경찰제 도입 방안이 검토되지 않은 점을 핵심적 문제로 지적했다.
형사사법 제도를 통한 검찰의 경찰권 통제가 어렵다면 국민이 직접 통제하는 보완책이 필요한 데 이는 거론되지 않는 현실을 지적한 것이다. 결국 경찰이 수사종결권을 갖는 상황에서 검찰은 수사지휘권마저 잃는 최악의 사태를 우려한 것으로 풀이된다.
문 총장은 29일 취재진과 만난 자리에서 최근 청와대에서 윤곽을 잡은 것으로 알려진 수사권 조정안 초안에 경찰에 수사종결권을 주고 검찰의 수사지휘권을 폐지한다는 내용이 골자로 담긴 것을 집중 지적했다.
검찰의 수사지휘권을 폐지하면 경찰이 사건을 송치하기 전에 검찰에 일일이 보고하거나 지휘를 받을 필요 없이 수사할 수 있다. 경찰이 수사종결권을 가지면 수사를 마쳤을 때 무조건 검찰에 송치할 의무가 사라지고, 수사 도중에 검찰 요구에 따라 사건을 넘길 필요도 없어진다.
수사의 최종 목표는 유죄 선고를 통한 처벌이라는 점에서 원래 수사종결권은 현행 형사소송법규상 검사의 기소·불기소권을 의미하지만, 경찰이 독자적으로 수사한 뒤 사건을 검찰에 송치할 수 있다는 의미로도 사용된다.
문 총장은 경찰이 검찰의 사법적 판단을 구하지 않은 채 마음대로 사건 수사를 끝낼 수 있게 된다는 점을 두고 문 총장은 "그렇게 논의하는 것은 상상하기가 어렵다"고 했다.
그는 "경찰이 재판에 넘길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면 검찰에 기록을 안 보내겠다는 것 아니냐"며 "사법적 판단을 해야 할 부분인데, 과연 그런 논의가 가능한지 이해가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수사는 인권침해적 요소가 뒤따르므로 엄격한 법리적 판단이 뒷받침되지 않고 운용되면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취지로 받아들여진다.
더 나아가 수사권 조정 논의에 참여하는 관계기관을 두고 "법률을 전공한 분이 과연 그런 생각을 할까 하는 생각을 한다. 그런 논의가 이뤄지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의구심마저 표시했다.
◇ "수사지휘권 폐지 전제는 자치경찰제 도입"
문 총장은 검찰의 수사지휘권 폐지 방안에 대해서도 일단 수긍하는 입장을 취하면서도 전폭적인 도입에는 사실상 반대 입장을 밝혔다.
그는 "검찰의 사법통제는 경찰이 사건을 송치한 이후에 기소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 필요한 범위로 최소화하는 방안을 적극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이에 더해 자치경찰제 도입이 선행돼야 한다는 '강력한 전제 조건'을 걸었다.
자치경찰제는 지역 주민이 뽑은 지방자치단체장 아래 자치경찰을 두는 것이다. 지자체장이 지역 경찰청장을 임명하고 신규 경찰을 충원할 수 있다. 그만큼 지역 밀착형 경찰 업무가 가능하며 수사에 대한 책임도 지게 된다.
지역 경찰의 업무는 검찰의 지휘를 받지 않으면서 주민의 민주적 통제를 받도록 하고, 국가 단위의 업무를 맡는 국가 경찰이 범죄를 수사할 때는 지금처럼 검찰의 사법통제를 받아야 한다는 게 검찰의 주장이다.
이 제도가 도입되면 일선 경찰서가 수사하는 민생범죄 수사의 98.2%는 자치경찰의 자율과 책임 하에 이뤄진다고 설명했다.
경찰은 수사 외에도 치안·교통·정보 등 다양한 기능과 업무를 하기 때문에 검찰의 사법적 통제가 어렵다면 주민에 의한 통제장치라도 마련돼야 한다는 게 검찰 시각이다. 검찰의 경우 수사 및 공소유지만 맡는 준사법기관이므로 자치경찰과 같은 개념에서 접근하는 게 아니라 관할 지역별로 법원에 대응해 설치, 운용되고 있다.
문 총장은 자치경찰제 도입이 현 정부의 대선공약이었는데도, 최근 수사권 조정 논의 과정에서 전혀 언급되지 않는 상황을 두고 꼬집어 반발했다.
그는 "민주국가라고 할 나라에서 자치경찰제를 시행하지 않는 나라가 없다"며 "국가 경찰 단일체제로 운영하는 곳은 우리나라뿐인데, 여기에는 식민지 시대의 잔재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이날 출입기자들에게 보낸 문자메시지에서 "문 총장이 말씀한 자치경찰 부분에 대해서는 더 논의가 필요하다"며 "자치경찰제 문제는 자치분권위원회가 다룰 문제로 시간이 필요하며, 자치경찰제를 순차적으로 확대해나가면서 수사권 조정도 병행해 함께 진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 "검사의 영장심사는 인권 보호 장치"
문 총장은 수사권 조정안 초안에서 다뤄진 경찰의 영장 이의제기 절차와 관련, "검사가 영장을 기각했을 때 사법경찰이 이의를 제기하는 방안 등을 심도 있게 검토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경찰이 반발하는 '검사의 영장심사'는 "50년 이상 지속해 온 인권보호 장치이므로 꼭 유지돼야 한다"면서 존치 입장을 고수했다.
경찰이 신청한 영장을 검찰이 심사해 법원에 영장청구 여부를 결정하는 것은 준사법기관인 검찰에 주어진 사법통제권의 핵심이며, 경찰에 넘길 수 없는 권리라는 뜻이다. 문 총장은 "경찰이 구속 절차에 관여하는 나라는 우리나라가 유일하다"며 '불가 입장'을 분명히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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