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치치 세르비아 대통령 "코소보 폭력 사태 관련, 푸틴에 조언 구해"
(로마=연합뉴스) 현윤경 특파원 = 1990년대 후반 불거진 참혹한 내전의 후유증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여전히 적대 관계에 놓여 있는 세르비아와 코소보의 갈등이 고조되고 있다. 양국의 반목을 틈타 발칸 반도에서 러시아가 영향력 확대를 꾀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도 일고 있다.
알렉산다르 부치치 세르비아 대통령은 최근 코소보를 방문한 세르비아 고위 관리가 코소보 경찰에게 무자비하게 연행된 뒤 추방된 사건과 관련, 28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게 전화해 조언을 구했다고 세르비아 대통령궁이 밝혔다.
세르비아 정부 산하 코소보 담당관실 대표인 마르코 주리치는 지난 26일 세르비아계 주민이 다수를 차지하는 코소보 북부 미트로비차를 코소보 정부의 허가 없이 방문했다가 코소보 경찰에 연행된 뒤 추방됐다.
주리치 대표는 연행 과정에서 코소보 경찰에 폭행과 모욕을 당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코소보 내 세르비아계 시위대 역시 최루탄과 섬광탄 등을 동원한 코소보 경찰의 진압으로 30여 명이 다친 것으로 알려지며 세르비아는 물론, 코소보 내 세르비아계 주민들의 분노가 들끓고 있는 상황이다.
세르비아 대통령궁은 이날 발표한 성명에서 "코소보의 알바니아인들이 10년 전 선언한 일방적인 독립에 대해 서방의 광범위한 지지를 얻고 있는 게 명확하기 때문에 부치치 대통령은 푸틴 대통령의 조언을 듣고자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대통령궁은 양국 정상이 이날 통화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대화를 나눴는지는 공개하지 않았으나, 부치치 대통령은 이후 세르비아 TV에 출연해 "푸틴 대통령과의 통화 후 세르비아는 러시아로부터의 완전하고, 결정적인 도움에 의존할 수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강조했다.
부치치 대통령의 이 같은 발언은 향후 세르비아가 코소보의 독립을 인정하지 않는 러시아와 좀 더 긴밀한 관계를 추구할 것임을 암시하는 것으로 읽혀, 서방의 중재로 진행되고 있는 세르비아와 코소보의 관계 정상화 작업이 쉽지 않을 것임을 예고했다.
부치치 대통령은 총리로 재직하던 시절부터 EU 가입을 정식으로 희망하며 서방에 손을 내밀었으나, 한편으로는 세르비아를 매개로 발칸 반도에 계속 영향력을 행사할 의도를 지닌 러시아와 정치적, 군사적으로 긴밀한 관계를 계속 발전시켜 나가며 서방의 의혹의 눈초리를 받아 왔다.
세르비아의 일부이던 코소보는 1998년 알바니아계 반군이 독립을 요구하면서 세르비아에 저항한 것을 발단으로 알바니아계 주민 1만여 명을 포함해 1만3천여 명의 희생자를 낸 참혹한 내전을 겪었다.
세르비아가 주로 알바니아 분리 독립 활동가들을 무차별적으로 학살한 이 내전은 나토(북대서양 조약기구)가 1999년 5월부터 78일에 걸쳐 세르비아를 폭격하며 가까스로 막이 내렸고, 코소보 의회는 이후 유엔의 보호를 받다가 미국과 유럽연합(EU) 등 서방의 지지를 등에 업고 2008년 2월17일 일방적인 독립을 선포, 세르비아에서 갈라져 나왔다.
현재까지 110여 개국이 코소보를 독립국으로 승인했으나 코소보를 여전히 자국의 일부라고 여기는 세르비아는 물론, 러시아와 중국, 스페인, 그리스 등은 코소보의 분리 독립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나란히 EU 가입을 원하는 세르비아와 코소보는 EU의 중재로 2013년 관계 정상화를 위한 협약을 맺고 EU 가입의 전제 조건인 상호 화해를 타진해왔으나, 해묵은 갈등으로 인해 양국 관계는 좀처럼 진전을 보이지 못했다.
양국 간 분쟁이 이번 사건으로 더욱 격화될 조짐을 보이자 EU는 페데리카 모게리니 외교·안보 고위대표를 세르비아로 급파, 중재에 나섰다.
모게리니 대표는 코소보와 세르비아 양측 모두에 평정과 자제, 지도력을 보여줄 것을 촉구하며 "안정과 평화를 유지하고, EU 가입을 위한 행보를 진전시키는 것이 세르비아의 이익에도 부합한다"고 설득했다.
미국 국무부도 성명을 내고 "미트로비차 사건으로 갈등이 불필요하게 고조되고, 역내 안정이 위협받고 있다"며 "모든 당사자들이 자제력을 발휘해 평화롭게 갈등을 해결하라"고 당부했다.
한편, 코소보 내 소수민족인 세르비아계 주민들은 이번 사건의 책임을 물어 코소보 내무장관과 경찰청장을 해임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또한, 그동안 줄기차게 요구해온 코소보내 세르비아계가 다수를 차지하는 도시로 구성된 연합체의 발족을 3주 안에 승인해주지 않으면, 별도의 독립적인 행정조직을 출범시킬 것이라고 으름장을 놓고 있다.
ykhyun14@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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