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념 지켜온 중국 내 사제들 반발 확산
(로마·홍콩=연합뉴스) 현윤경 안승섭 특파원 = 교황청과 중국이 양국 관계 정상화의 가장 큰 걸림돌로 여겨지던 주교 임명권과 관련한 합의안에 곧 서명할 것이라는 중국 언론의 보도가 나왔지만, 교황청은 이를 부인했다.
교황청은 29일(현지시각) 성명을 통해 교황청과 중국이 주교 서품에 관한 협약 서명이 임박했다는 보도는 사실이 아니며, 양국 사이에 대화가 계속 이어지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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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청의 이 같은 성명은 "주교 임명권과 관련해 중국과 교황청의 협의가 '마지막 국면'에 도달했으며, 이르면 이달 말에 양측이 공식 합의를 체결할 것"이라는 중국 관영지 글로벌 타임스의 기사가 나온 직후 발표된 것이다.
이 신문은 중국 천주교 주교단의 궈진차이(郭金才) 비서장을 인용해 이같이 보도했다.
그렉 버크 교황청 대변인은 "교황청과 중국 사이에 협정 서명이 임박하지 않았다"며 "프란치스코 교황은 중국 문제와 관련해 협력자들과 계속 연락을 취하며, 양측 사이의 진행되고 있는 대화의 추이를 주시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중국이 공산화된 직후인 1951년 외교 관계가 단절된 양국은 3년 전부터 관계 회복을 위한 협상을 개시했다. 양측은 누가 중국 가톨릭 주교를 임명하느냐를 둘러싼 문제를 놓고 좀처럼 의견차를 좁히지 못했으나, 작년 말 큰 틀의 타협점에 도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교황청이 교황의 승인을 받은 중국 천주교 지하교회의 주교 대신 중국 정부가 임명한 주교들을 인정하는 대신에, 향후 중국 내 주교 서품에 개입할 여지를 확보했다는 게 현재 회자되는 양측 타협안의 골자다.
지난해 12월 교황청은 중국 당국의 감시를 피해 비밀리에 서품한 광둥(廣東) 성의 좡젠젠(莊建堅) 주교와 푸젠(福建) 성의 궈시진(郭希錦) 주교에게 퇴임과 함께 천주교 애국회 주교들에게 교구를 양위하라고 요구했다.
천주교 애국회는 중국 공산당이 통제하는 관영 가톨릭 교회로서, 이는 중국이 천주교 성직자를 독자 임명하는 '자선자성'(自選自聖) 원칙을 교황청이 사실상 인정했음을 뜻한다.
일부에서는 중국 정부가 내세우는 주교를 교황의 재가를 거쳐 승인하는 타협안이 마련됐다는 관측도 나온다.
교황청과 중국이 가장 큰 쟁점이던 주교 임명 합의안에 서명하면 양측의 수교 협의도 급물살을 탈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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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관계가 복원되면 중국내 1천만 명이 넘는 지하 가톨릭 신도들을 합법적으로 보호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중국 지하교회와 중국 관영 천주교 애국회의 분열을 봉합할 수 있고, 더 나아가 중국에서 가톨릭 교세를 확장할 수 있게 되는 터라 교황청은 프란치스코 교황 즉위 이래 중국과의 관계 정상화에 부쩍 공을 들여 왔다.
중국 가톨릭은 교황청 인가를 받은 지하교회 신도 1천50만 명과 중국 관영의 천주교 애국회 신도 730만여 명으로 나뉘어 있다.
하지만 교황청과 중국과의 관계 개선 움직임에 홍콩 대주교 출신 조지프 쩐(陳日君) 추기경이 "가톨릭을 중국에 팔아넘기는 처사"라고 반발하고, 중국 지하교회 신자 일부도 교황청이 중국 정부와 타협할 경우 지하교회의 신앙의 자유가 줄어들 것이라고 지적하는 등 비판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
유럽에서는 유일하게 교황청과 공식 외교 관계를 맺고 있는 대만 역시 중국과 교황청의 수교 시 교황청과의 단교가 불가피해지는 만큼 외교적 고립을 우려하며, 양측의 움직임에 촉각을 세우고 있다.
한편, 중국 정부가 임명한 주교와 부활절 미사 공동 집전을 거부했다는 이유로 경찰에 구금된 것으로 알려진 중국 지하교회의 궈시진 주교는 연행 하루 만에 풀려났다고 AFP통신이 보도했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중국 정부의 간섭을 거부해 투옥되거나 괴롭힘을 당하는 등 탄압을 견뎌온 중국 내 가톨릭 사제들이 교황청의 이러한 '타협'에 반발하고 있다고 전했다.
중국 당국의 탄압으로 인해 30년 동안이나 투옥됐던 마태 신부는 "성직자의 길로 들어선 후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지만, 최근의 소식은 내 마음을 찢어놓는다"며 "실망스럽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으며, 조용히 은퇴하고자 할 뿐"이라고 말했다.
마태 신부와 그의 가족이 감옥에서 보낸 기간을 모두 합치면 150년을 넘는다고 SCMP는 전했다.
중국의 시골 마을에서 지하교회를 운영해 온 안네 수녀는 "전체주의 국가와 친분을 맺기 위해 지하교회를 포기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이는 아버지가 자식을 악한의 손에 넘기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비판했다.
그는 "바티칸은 우리의 삶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른다"며 "전체주의 국가에 굴복하느니 지금처럼 탄압 속에서 신앙을 유지하는 것이 더 나을 것"이라고 말했다.
ykhyun14@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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